Project Description
[한문덕 목사] 하나님의 날개 밑 – 2023년 1월 29일
룻기 2장 5-13절
[2023년 1월을 보내며]
2023년 새해가 시작되고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1월 1일에 마음에 새겼던 다짐들, 설날에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며 ‘잘 해 보자’ 했던 계획들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요?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있듯이, 새해가 될 때마다 굳게 마음을 먹어보지만 계획한 일들을 성실하게 그리고 차근차근 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듯합니다. 살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만 하면 좋겠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 대부분이고,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다를 수 있고,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이 또한 다를 수 있습니다. 잘하면서도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있다면 작심삼일은 되지 않겠지만 주어진 일들,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들 속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세웠던 계획들은 어느새 흐지부지되고 맙니다. 하루 24 시간은 정해져 있고, 사람이 할 수 있는 능력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젊어서는 거뜬히 해낸 일도 나이가 들수록 몸이 따라주지 않기도 하고, 언제나 욕심이 과하여 해낼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 계획을 세우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도 작년 안식년 6개월을 보내면서 참으로 많은 계획을 세웠었습니다. 반드시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 중에 하나가 책을 쓰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시작만 하고 진도가 나가지 못했고, 좀 더 폭넓은 독서를 하고 몇 가지 주제에 대해서는 정리를 하고 싶었지만 충분하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전국을 다니며 온라인 성도와 동료 선후배 목회자들을 만나 신앙 이야기, 목회 이야기를 나눈 것은 교계 현실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가족들과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은 그동안의 부채를 조금이나마 탕감할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교회에서는 안식년이 주어졌지만, 노회와 총회, 학교 등에서 요청하는 것들을 하다 보니 6개월의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와서 제2기 목회를 준비하는 가운데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도 저에게는 많은 주어진 일들이 있고, 또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한 단계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해서 해야 할 사역들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1년의 시간 동안 사역의 경중을 따지고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 각자가 알아서 할 일과 함께 할 일들을 잘 정하고 실천해서 올해도 우리 주님께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맺은 결실을 드리고 싶은 것이 제 마음입니다.
오늘 예배 직후에는 공동의회가 있고 2023년 목회계획 보고를 통해 구체적인 사역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설교를 통해 우리 생명사랑교회 성도들 전부가 함께 나아가야 할 큰 방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하는 많은 사역이 일관성을 지니고 한 방향을 지향해야 합니다. 목표에서 벗어나거나 동떨어지지 않도록 우리는 늘 목표를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일을 하다 보면 왜 하는지 잊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목표는 저와 여러분 각자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지녀야 할 삶의 태도에 관련된 것이며, 동시에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한 몸처럼 풍겨야 할 분위기이며 고유한 특징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목표를 오늘의 본문인 룻기의 말씀을 통해서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올 한 해 오늘 드린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면 우리 교회는 분명히 성령의 능력으로 희망이 넘치는 교회가 될 것이고, 또 그러하기에 작은 겨자 덩굴이 온갖 새들이 깃들이는 하나님 나라의 안식처가 된 것처럼, 작은 우리 교회도 쉴 만한 물가, 따스한 복음의 보금자리가 될 것입니다.
[룻기의 배경]
룻기에는 중요한 세 인물이 등장합니다. 룻기라고 쓰였으니, 룻이 주인공인데, 이에 못지 않게 룻의 시어머니인 나오미와 또 다윗왕의 증조 할아버지가 되는 보아스도 주연 배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룻기의 줄거리는 이러합니다. 기근으로 말미암아 고향 땅 베들레헴을 떠난 엘리멜렉과 아내 나오미, 아들 말론과 기룐은 모압에 정착하는데, 여기서 두 아들은 모압 여인 룻과 오르바와 결혼했지만 그 땅에 10년 동안 거주하는 사이 엘리멜렉과 말론과 기룐은 모두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며느리만 남게 됩니다. 베들레헴에 기근이 끝나고 다시 양식이 풍성해졌다는 소문을 듣고 나오미는 고향으로 가면서 며느리들에게 각각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룻은 끝내 시어머니를 따라 낯선 땅인 베들레헴에 오게 됩니다. 모압 여인 룻은 타지에서 정성스레 시어머니를 모시며 이삭 줍는 일로 목숨을 연명합니다. 그러다가 시아버지 엘리멜렉의 친족인 보아스의 밭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그 인연으로 보아스와 친밀하게 되고, 보아스는 엘리멜렉 가문의 기업 무르기 절차를 통해 룻을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오벳이라는 아들이 태어났는데 바로 이 오벳은 다윗왕의 할아버지가 됩니다.
매우 간단하고 별것 아닌 이야기로 보이는 룻기가 거룩한 성서 안에 들어 있고, 이 이야기는 특별히 보리와 밀을 추수하는 맥추절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읽혔습니다. 이 책은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사사시대는 중앙집권적인 행정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왕도 없었기에 늘 위기와 긴장으로 가득 찼던 시대이고, 사사기가 스스로 전하는 바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사사 21:25), 즉 제 멋대로 살았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늘 이민족의 침입으로 혼란을 겪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을 다스려 줄 왕을 간구했습니다. 사사시대가 지나고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칭송받는 다윗이 등장하는데, 룻기는 바로 이 다윗의 등장을 예고하는 역할을 합니다.
룻기가 주목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어떤 가문에서 위대한 임금 다윗이 나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왕정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저나 여러분은 고대 사람들에게 왕이 어떤 존재였는지 잘 떠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왕이라 하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제멋대로 하는 나쁜 왕을 떠올리기 쉽지만, 왕정 시대의 왕은 한 국가의 생존과 연결되어 매우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왕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어 백성들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대 왕들은 모두 전사였습니다. 다윗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 중에 하나가 바로 전사(戰士)라는 것입니다. 그가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이긴 것, 그가 죽인 적군의 숫자가 수만 명에 이르렀다는 이야기, 목동 시절부터 곰이나 사자로부터 양을 구해냈다는 이야기는 모두 이것과 연결됩니다.
왕이 전쟁에서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문제는 곧바로 백성들 한 명 한 명의 생명이 유지되는가, 아니면 죽는가, 백성들이 평범한 일상을 누리며 사는가 아니면 남의 노예가 되어 평생 죽도록 개돼지 취급받으며 사는가를 결정하는 문제였습니다. 다윗은 백성들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길 줄 아는 장군이었고, 왕이 되어서는 폭넓은 국제 외교와 강력한 중앙집권 정치를 통해 이스라엘의 영토를 가장 크게 넓혔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 하면 이스라엘은 언제나 주변 강대국들 사이에서 생존의 위협을 받던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다윗 시절에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고, 그래서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나라가 된 것이며, 그래서 백성들은 전쟁의 위협 없이 안정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늘 떠돌아 다니며 제대로 몸 붙일 곳 없이 지낸 이들(신명 26:5), 간신히 터를 잡았지만 언제든 쫓겨 나가고 죽을 수도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윗은 최초로 안정된 국가의 모습을 보여 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다윗 왕의 증조 할머니가 바로 모압 여인 룻이라는 사실입니다. 모압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늘 긴장감이 감도는 관계였습니다. 큰 틀에서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아들이기 때문에 이스라엘과는 친척관계이지만,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십볼의 아들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발람을 사주하였고, 사사시대에는 모압 왕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을 모아 이스라엘을 쳐서 여리고를 점령하고 18년 동안이나 이스라엘을 괴롭히기도 했습니다(사사 3:12-20).
이런 이유 때문에 신명기 23장 3절에 의하면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주님의 총회 회원이 되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 자손들은 십대가 아니라, 영원히 주님의 총회에 회원이 되지 못한다고 못 박아 놓았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과 모압의 관계는 심히 좋지 않았고, 서로 적대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압 여인인 룻은 홀로 된 시어머니 나오미를 지키기 위해 자기에게 적대적인 이스라엘 베들레험으로 온 것이고, 그것도 남편도 없이 시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그 험한 길을 걸었습니다. 고대에 남편 잃은 여성은 가장 밑바닥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어떤 보호 장치도 없었고, 경제적 후원을 받을 만한 그 무엇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역 간의 이동과 교류가 별로 없던 시대에 한 사람이 자기가 태어난 집안과 장소를 떠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혈연과 지연은 개인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받으며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치였습니다. 그곳을 떠난다는 것은 모든 안전장치를 풀고 모든 위험에 자신을 내맡기는 어리석은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고대 사회에서 최고의 형벌은 사형이었지만, 그다음으로 가혹한 형벌은 살고 있던 지역과 혈연공동체로부터 추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룻은 원수 국가의 마을로 들어가는 위험천만한 길을 갔던 것입니다.
아마도 일반적 상황이었다면 룻은 베들레헴에서 고생만 하다가 일찍 저세상 사람이 되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 이런 룻이 한 사람의 선의와 환대, 호의로 인해서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됩니다. 바로 그 주인공은 보아스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보아스]
성서는 보아스를 재력 있는 사람(룻기 2:1)이라고 소개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재력 있는 사람은 대체로 어떤 모습을 보이나요? 저나 여러분은 재력이 없어서 잘 모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엄청난 재력의 소유자가 된다면 어떻게 바뀔 것 같습니까? 오늘날처럼 자본주의 시대에 재력은 곧 힘이고 권세입니다. 오늘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갑질의 밑바탕에는 돈이 있습니다. 돈은 사람에게 유사 전능감을 부여하여 마치 자신이 하나님이나 된 듯이 행동하게 만듭니다.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순간 사람도 인격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처럼 여기게 만듭니다. 그래서 졸부들은 인생을 망치기가 쉽고, 돈을 버는 것도 힘들지만 돈을 품위 있게 쓰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보아스는 재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 땅이 있고, 거기에서 일꾼들을 부릴 수 있고, 일꾼들을 감독하는 사람까지 둘 정도이니 재력이 보통은 넘는 것입니다. 보아스는 타작마당에 둔 곡식을 지키기 위해 거기에 잠자리를 펴는 철저한 사람(룻기 3:2-4)이면서 동시에 일하는 곳으로 직접 나아가 일하는 일꾼들을 격려하는 사람(룻기 2:4)이기도 합니다.
그가 모압 여인인 룻에게 보인 호의는 그야말로 상상 이상입니다. 그는 룻이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는 것을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젊은 남자들이 이방 여인에게 해코지를 할 것을 예상하고 그것도 막아 줍니다. 일할 때 힘들까 봐 물 단지의 물을 채우게 하고, 그것도 마음껏 마시게 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식사 때에는 빵을 소스에 찍어 먹도록 해 주고, 볶은 곡식도 내 줍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곡식단을 치우지 않은 곳에서까지 이삭을 줍게 하고, 곡식단을 치우는 젊은 일꾼들에게는 일부러 이삭을 뽑아 흘리라는 명령까지 내립니다. 그러면서 또 여인을 괴롭히지 말라고 말까지 합니다.(룻기 2:14-16) 이런 호의 덕분에 룻은 하루 사이에 15kg(한 에바)에 해당하는 보리를 주울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열흘 정도 먹을 양이었습니다.
누군가는 보아스의 이런 행동을 보고 첫눈에 반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그렇게 말할 수 없도록 성서는 다른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우선 룻이 보아스 앞에 엎드려 말하기를 “저는 한낱 이방 여자일 뿐인데, 어찌하여 저 같은 것을 이렇게까지 잘 보살피시고 생각하여 주십니까?”라고 했을 때, 보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을 잃은 뒤에 댁이 시어머니에게 어떻게 하였는지를 자세히 들어서 다 알고 있소. ~ 중략 ~ 댁이 한 일은 주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오.”(룻기 2:11-12)
룻이 보아스에게 받은 은혜를 시어머니에게 알렸을 때 나오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틀림없이 주님께 복 받을 사람이다. 그 사람은, 먼저 세상을 뜬 우리 식구들에게도 자비를 베풀더니, 살아 있는 우리에게도 한결같이 자비를 베푸는구나.”
우리는 이런 구절들을 통해서 보아스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됩니다. 더군다나 나오미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룻으로 하여금 자기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적이었던 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받아들여 기업 무르기를 하려고 할 때, 보아스의 행동은 그야말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여 줍니다. 고대 이스라엘은 여인들의 권리와 복지를 위하여 형제가 죽었을 경우 다른 형제가 죽은 형제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삼는 법이 있습니다. 형사취수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침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친척이었고, 나오미는 그것을 이용하려고 해서 룻에게 보아스와 함께 잠자리를 하라고 권합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자기 옆에 룻이 누운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정확한 율법에 따라 기업 무르기를 먼저 할 엘리멜렉의 집안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정확한 모든 절차를 통해서 보아스는 자신의 재산을 내놓아 엘리멜렉에게 주어졌던 유산을 사서 기업 무르기를 함으로써 이스라엘 신앙 유산의 전통인 평등한 땅 분배를 유지하고, 엘리멜렉의 이름이 대대에 남을 수 있도록 합니다.(룻기 3-4장)
룻기는 이 이야기를 3장과 4장에 걸쳐서 한 다음에 곧바로 족보를 나열하며 보아스와 룻 사이에서 이새가 나왔고 이새가 바로 다윗의 할아버지라고 명시합니다(4:17). 룻기는 참으로 이상하고 괴이한 작품입니다. 유대 민족의 가장 자랑스런 왕 다윗이 이방 여자의 혈통이라는 것은 사실 스캔들인데도 그것을 만천하에 드러냅니다. 그런데 룻기의 이야기는 더 깊은 진실을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룻과 보아스의 행동이 민족을 넘어서 하나님의 선택한 왕을 탄생시킬만했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말씀 드린 대로 룻은 시어머니를 모시려고 자신의 고향과 집과 국가의 신을 버립니다. 그리고 시어머니의 고향과 집으로 오고 시어머니의 하나님을 섬깁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룻기 1:16) 룻은 새로운 신앙의 길로 접어드는데, 모압의 주신인 그모스(Chemosh)를 버리고 야훼 하나님에게로 귀의합니다. 모압 사람들은 그모스가 정의로운 신이고, 강한 신이기에 모든 전쟁에서 자신들을 승리로 이끌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모스는 아내도 있는데, 이쉬타르 그모스입니다. 또 동시에 모압 사람들은 그모스 뿐만이 아니라, 바알도 숭배하고, 엘도 숭배했습니다. 즉 모압 사람들은 고대에 가장 일반적인 특징을 보이는 다신교적 종교를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다신교적 전통은 대체적으로 자기중심적 사고를 갖게 합니다. 즉 자기의 삶을 중심으로 해서 벌어지는 온갖 재앙을 피하기위해 다양한 신들을 보험 들듯이 모시고 섬기는 것입니다. 이런 사례가 예수님께서 이방인들처럼 기도하지 말라고 하는 것에 드러나는데, 다신을 섬기는 이방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닌 동일한 문제를 이 신 저 신에게 다니면서 계속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반면 고대의 유일신교는 다신교보다 훨씬 더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게 됩니다. 즉 내 중심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랑과 자유, 자유와 평등 같은 가치를 따르려고 했습니다. 당장의 내 문제만을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맞추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즉 고대의 다신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종교이지만, 고대의 유일신교는 보편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를 위해 헌신하게 하는 종교였던 것입니다.
자기중심이 아니라 보편적 사랑, 인간으로서 차마 시어머니를 홀로 보내지 못했던 그 양심의 소리를 따르는 룻이 섬겨야 할 신은 마땅히 야훼 하나님이었고, 그 하나님을 찾아온 룻을 보아스는 하나님의 환대와 호의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하는 말을 다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남편을 잃은 뒤에 댁이 시어머니에게 어떻게 하였는지를, 자세히 들어서 다 알고 있소. 댁은 친정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고, 태어난 땅을 떠나서, 엊그제까지만 해도 알지 못하던 다른 백성에게로 오지 않았소? 댁이 한 일은 주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오. 이제 댁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날개 밑으로 보호를 받으러 왔으니, 그분께서 댁에게 넉넉히 갚아 주실 것이오.”
그렇습니다. 보아스는 모든 인류를 보편적으로 사랑하시기 위해 먼저 약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알았고, 바로 하나님의 날개 밑으로 온 룻을 돌보았던 것입니다. 계급구조를 만들고, 계층을 나누어 가진 자, 힘센 자가 자기중심대로 사는 세상을 박차고 나온 룻과 그 여인을 어떤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품어서 하나님의 넉넉한 평등 세상을 구현하는 보아스 사이에서 바로 다윗 왕이 탄생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삽니다. 백성이 주인이고, 백성이 왕인 시대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검찰이 백성 위에서 군림하고, 기득권 언론이 감싸주고, 재벌은 이것을 기회 삼아 돈 벌 생각으로만 가득하고, 미숙한 대통령은 가는 곳마다, 하는 일마다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국민의 비판에는 전 정부 탓을 하고, 당신들이 오해했다며 어떤 책임도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는 사이 억울하게 시민들은 목숨을 잃고, 난방비는 올라가고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올해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하는 모든 목회 활동, 예배와 선교, 교육과 친교는 모두 우리가 넉넉히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닮아 조건 없이 주시는 그 사랑을 함께 하기 위함입니다. 자기중심적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헌신하기 위함입니다. 돈이 있는 이는 돈으로, 힘이 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이 있는 이는 지식으로, 기술이 있는 사람은 기술로,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자신의 시간을 내어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넉넉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서 애쓰고 수고하려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지녀야 할 삶의 태도요, 우리 생명사랑교회의 목표입니다. 보아스는 이것을 위해 민족의 경계를 넘어섰습니다. 돌싱이라는 사회적 편견도 넘어섭니다. 사회적 약자가 당할 수밖에 없는 서러움과 억울함에 공명합니다. 자신은 재력가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뽐내지 않고 선한 일에 사용합니다. 그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차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손하고, 차분하게 배려합니다.
올해도 다양한 곳에서 제게 많은 요청을 해 왔습니다. 노회와 총회, 학교, 사회단체 등에서 제게 무언가를 해 달라고 부탁한 곳을 세어 보면 무려 18곳이나 됩니다. 강의와 글쓰기, 행정 업무와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내는 일 다양한 자리에서 저를 부릅니다. 그 일 중에는 신학교와 교회를 이어주어 우리 교단의 목회자들을 양성하는 일,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과 정신을 이어가는 일, 강의와 글을 통해 전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을 고취시키는 일, 제 자신의 영성을 성숙시키고, 다양한 분야의 선교사들에게 재정적 후원을 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을 감당하려고 하다 보니 저는 쉬는 날이 없고,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랍니다. 그러나 계획한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을지라도, 이런 노력을 통해 보아스가 보여 준 선의와 호의, 약자들에 대한 환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공동의 노력이 더 많은 이들에게 퍼져 나가기를 소망합니다. 이 모든 일이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은 아닙니다. 제게 많은 시간과 돈이 주어진다면 저는 아마 집에 틀어박혀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고 또 책을 쓰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저를 부르시고, 여러 일로 섬기라고 하십니다. 계속해서 저를 불러내십니다. 주님께 순종하며 나서는 일들이 미래의 참된 지도자를 길러내고 주님의 뜻을 이루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님은 저만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도 부르십니다. 지금도 세상에는 하나님의 날개 밑에서 참된 쉼과 진정한 평안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바로 하나님의 날개 밑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보아스에게서 배워야 하고, 룻에게서 결단과 용기를 얻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계묘년 새해에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실 일들에 기대를 겁시다. 세상 사람 모두를 하나님의 날개 밑으로 품을 때까지 멈추지 맙시다. 새 시대는 새 일꾼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모두 그런 일꾼이 됩시다. 저는 저와 여러분이 주님으로부터 이런 칭찬을 듣기를 원합니다. “잘했다.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나와 함께 기쁨을 누리자”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암탉이 자기 날개 아래 병아리들을 모으듯, 세상의 모든 생명을 품으시는 하나님! 올 한해 우리가 모두 주님의 날개 밑에 모이길 원합니다. 주님의 품 안에서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리며 지친 몸과 닫힌 마음이 치유되길 원합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의 백성이 되고 주님의 사자가 되어 보아스처럼 약한 자의 이웃, 눈물 흘리는 자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과 함께 우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작지만 세상을 품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차별을 없애고, 불의와 싸우며,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가길 원합니다. 길을 내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언제나 사라지지 않는 믿음과 소망, 사랑의 길을 만들길 원합니다. 우리의 발걸음에 함께 해 주시고, 주님의 능력과 지혜로 우리를 이끌어 주소서. 늘 우리 곁에서 스승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우리의 깊은 곳까지 아시는 하나님! 지난 한 주간 우리를 지켜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의 자녀로 담대하게 살겠다고 매 주일 다짐하지만 정글 같은 세상에서 살다 보면 어느새 흐트러진 우리 자신을 보게 됩니다. 주님! 우리 마음에 불어오는 파도를 잔잔케 하소서. 몰아치는 광풍과 내리치는 폭풍을 진압하여 주소서. 주님 안에서 우리 영혼이 온전히 평화를 되찾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쉬시도록 우리 영혼이 고요함을 되찾게 하여 주소서. 오늘 주님 앞에 나올 때 감사의 예물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립니다. 우리의 생명과 삶과 이 감사의 예물을 받아주소서. 주님께 봉헌한 이 예물이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 왕성하게 일어나는데 쓰이게 하시고, 우리의 구체적인 사랑의 행동을 통하여 오직 하나님만 영광을 받으소서. 우리가 나누어 줌으로써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의 날개 밑으로 이끄십시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 땅에서 주님의 날개가 됩시다.
* 축도
2023년 새해에는
여러분 손에 언제나 할 일이 있기를,
여러분 지갑에 언제나 한, 두 장의 5만원권 지폐가 남아 있기를
여러분 발 앞에 언제나 길이 나타나기를,
바람은 언제나 여러분의 등 뒤에서 불고
여러분의 얼굴에는 태양이 비치기를
가끔 여러분의 길에 비가 내리더라도 곧 무지개가 뜨기를,
불행에 대해선 가난하고,
축복에 대해선 부자가 되기를,
적(敵)을 만드는 것에는 느리고 친구를 만드는 데에는 빠르기를,
이웃들은 여러분을 존경하고,
불행은 여러분을 아는 체도 안 하기를
여러분이 죽을 것을 악마가 알기 30분전에
여러분은 이미 천국에 들어가 있기를
앞으로 겪을 가장 슬픈 날이,
지금까지 겪은 가장 행복한 날보다 더 나은 날이기를
그리고 하나님께서 늘 당신 곁에 함께 계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성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