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한문덕 목사]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 – 2021년 12월 19일
이사야서 11장 1-9절, 시편 135편 5-6절, 고린도후서 6장 1-10절
[생명사랑교회의 삼대 목표]
여러분과 제가 다 아시는 내용이지만, 우리 생명사랑교회의 삼대 목표는 “작으나 건강한 교회”, “평신도 중심의 사역”, “선교 사명에 충실한 교회”입니다. 저는 이 세 가지 삼대 목표가 참으로 잘 정한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 지원하기로 결정할 때에도 이 목표에 담긴 비전이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제가 목회하면서 많은 유혹에 시달릴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겠지만, 그 때에도 저는 더욱 힘차게 목회를 해 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목회하면서 만약 이 세 가지 목표가 담고 있는 정신이 변질되고 왜곡되거나, 이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어떤 방법을 찾지 못해, 목표가 목표로만 기능하고 달성될 가능성이 소멸된다면 저는 아마도 목회할 힘을 잃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우리 생명사랑교회의 목표는 중요하고, 잘 만들어진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의 세 번째 목표와 연결되고, 제가 은퇴하기 마지막까지 반드시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는 끌어 올려야 하는 선교 목회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흔히들 ‘선교’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성경구절은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일 것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지난 2000년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선교는 이 말씀을 근거로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전 세계 각지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으로 이뤄져 왔습니다. 지난 100년의 한국 개신교의 눈부신 성장과 발전은 해외 세계 선교의 영역에 있어서도 큰 성과를 가져왔고, 우리나라는 100년 만에 선교를 받던 곳에서 선교사를 파송하는 곳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그런데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고, 한국 사회가 서구에서 수입된 민주주의를 실행하면서, 부수적으로 많은 부작용들이 생겨난 것처럼, 한국교회의 세계 선교의 사역에서도 심심치 않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나라의 문화와 사회 전통, 종교적 분위기를 무시하는 문화제국주의적 행태로부터 시작해서, 선교를 빌미로 한 교회 재정의 횡령, 여행을 깃들인 단기 선교 형태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들 등 선교 신학에 대한 성찰 없이 벌인 선교로 인해 만만치 않은 외교적 갈등과 비리들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옛날 방식의 노방 전도는 오늘날 무용지물이 되었고, 그럼에도 각종 상품을 걸면서 하는 전도 부흥집회 등은 세속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서, 사람들은 보험회사나 다단계 회사와 교회가 무엇이 다르냐고 힐문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비판하신 그 비판이 오늘날 한국 교회에 들려져야 할 말씀이 된 것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개종자 한 사람을 만들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하나가 생기면, 그를 너희보다 배나 더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먼저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선교 사명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필요가 있고, 장기적으로 선교 사명에 충실한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선교의 주체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저와 여러분이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선교의 주체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에서 저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는 알고 있다. 주님은 위대하신 분이며, 어느 신보다 더 위대하신 분이시다. 주님은,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바다에서도 바다 밑 깊고 깊은 곳에서도, 어디에서나, 뜻하시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하시는 분이다.”
시편 저자가 이렇게 우리에게 위대하신 하나님을 알려 주는데도 우리는 하나님을 교회 안에 가두어 놓고, 전도와 선교를 교회 안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것이라고 오래도록 착각해 왔습니다. 구원의 방주 모형에 따라 죄악된 세상에서 방황하는 영혼들을 교회로 불러 모아 구원에 이르게 하겠다는 것이 지난 세월의 전도와 선교 모형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부르던 찬양이 있지요. “나는 구원열차 올라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죄악역 벗어나 달려가다가 다시 내리지 않죠. ~” 위와 같은 선교신학을 반영하는 찬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죄악역이라 벗어나야 하고, 구원열차인 교회에서는 다시 내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구원의 주체는 교회처럼 들립니다. 노래 가사에서는 차표도 필요 없고 주님께서 차장이 되신다고 했지만, 실제로 교회는 차표가 필요하다고 하며 헌금을 강조했고, 주님이 아닌 목사와 사제가 차장이 되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 나라를 실현해야 할 세상을 떠나야 한다고, 그래서 다시는 세상에 내려서는 안 된다고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한발짝만 더 잘못 나가면 세상과 담 쌓고 자신들만의 폐쇄공동체를 만드는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선교는 이와 전혀 다릅니다.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과 저 세상, 지구와 우주 전체를 당신의 나라로 만드실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 예언자 이사야가 전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영을 받아서 주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고, 이 땅에 공의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억눌린 사람의 한을 풀어 주고 잔인하고 사악한 자들은 몽둥이로 몰아내며 사형에 처합니다. 정의로 허릴 동여매고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고, 이리와 사자, 표범을 붙잡아 풀을 뜯게 하여 새끼 염소들과도 어린 양들과도 함께 지내게 하며, 젖뗀 아이가 마음껏 독사굴에 손을 넣어도 어떤 상함이나 해함도 없는 곳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교입니다. 이 선교는 선교를 행하는 자들이 주님을 아는 지식으로 가득 찰 때 가능하게 됩니다.
저는 어릴 때 “나는 구원열차 올라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라는 찬양도 잘했지만, “저 하늘 먼 곳에 천국이 없어도 좋아요.”라는 노래도 좋아했습니다. “주님 뜻대로 사는 하루 바로 천국에요”라는 가사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노래가 있었지요.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사막에 꽃이 피어 향내 내리라. 주님이 다스릴 그 나라가 되면은 사막이 꽃동산 되리.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놀고, 어린이도 함께 뒹구는 참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제 가슴은 한없이 쿵쾅쿵쾅 뛰었습니다. 이 노래의 핵심은 참 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가 속히 이 땅으로 온다는 것입니다. 구원열차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가 이 땅에 임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를 통해 참된 선교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시옵소서.”
[다시 선교를 생각한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생명사랑교회가 해야 할 선교 사명에 대해서 다시 분명하게 짚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교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 통해서 보여주신 그 하나님 나라 운동을 우리 삶의 전 영역에서 펼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바로 이것을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 교회가 하는 모든 예배와 활동, 교육과 친교, 봉사와 구제는 모두 이 하나님 나라의 선교로 모아져야 합니다. 초점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은 나사렛 예수에게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신 하나님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근대 세계가 열린 이후 인간의 능력과 이성과 욕망으로 만들어 낸 세상 그 자체에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보다는 내 자신이 중요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보다는 세상이 알려주는 가치에 더 관심을 둡니다. 바울 사도가 육체에 따라 살지 말고 거룩한 영에 따라 살라고 조언했지만, 그 조언이 유명무실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런 사회를 만드는데 바로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일조했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무지했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지 않고, 그저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도구나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사마리아나 땅 끝은 저 먼 나라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의 마음, 우리 가족, 내 주변 친구, 우리가 당장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 세상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증인이 되어서 가야 할 곳은 배 타고 비행기 타고 가야하는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외부에서 강의를 할 때마다, 저는 반드시 앞부분에서 먼저 우리들의 삶의 자리를 성찰합니다. 우리 인간은 물질적인 몸을 가지고 있고, 의식주를 통해 육신의 생명을 유지합니다. 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형성하고, 또 사회적 관계도 유지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들만의 문명과 사회를 일구고 역사도 이끌어 왔습니다. 물리적 환경, 심리적 상황, 이 사회의 관계와 구조 그리고 변화의 역사 모두가 우리가 선교해야 할 자리이고 대상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개신교에 대해서 비관적인 전망을 합니다. 저도 일정부분 동의합니다. 이제 막 목회를 시작하는 목사 초년생들을 바라보는 눈길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합니다. 얼마나 힘들겠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지금이 은혜가 필요한 때요, 참된 구원의 소식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때입니다. 바울 사도가 편지를 썼던 고린도교회가 바로 오늘날처럼 가치의 혼란과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사람들은 허무에 빠지고 향락에 빠지고 온갖 죄악에 물들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 “신은 죽었다” 아니 “우리가 신을 죽였다.”라고 외친 교만한 인간들이 일군 세상은 잘난 소수가 모든 것을 독점하여, 다수가 더 가난해지고 힘들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오징어 게임이라는 드라마가 잘 보여 주었듯이, 게임 속에서는 일정한 돈을 두고 서로 차지하려고 죽고 죽이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데, 게임을 설계한 사람들과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목숨 값을 자신들의 놀이로 즐기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21세기 기업주의적 자본주의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기에 전 세계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하였던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은혜가 필요하고, 구원이 요청되는 때인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절실하게 추수할 일꾼을 부르십니다. 그런데 준비된 일꾼이 많지 않습니다. 자신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도 벅찰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과 함께 선교에 참여한 사람들을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이들은 무슨 일에서나 아무에게도 거리낌거리를 주지 않습니다. 무슨 일에서나 하나님의 일꾼답게 처신하는데, 그래서 많이 참으면서, 환란과 궁핍과 곤경과 매 맞음과 옥에 갇힘과 난동과 수고와 잠을 자지 못함과 굶주림을 겪었습니다. 지금 교인들이 이런 수난에도 과연 복음을 전파하려고 할까요? 여름에 에어콘이 나오지 않는다고, 겨울에 춥다고 불평하며 TV 앞에서 온라인 예배를 하는 것 정도로 신앙생활을 충분히 다했다고 생각하는 신앙인들이 과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바울 사도와 함께 선교했던 이들은 이런 고난 속에서도 순결과 지식과 인내와 친절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일들을 해냈습니다. 오른손과 왼손에 의의 무기를 들고, 영광을 받거나, 수치를 당하거나, 비난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이들은 일관되게 하나님 나라의 선교를 감당합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바울 사도의 편지에 사용하고 있는 한 마디 한 마디를 곱씹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순결함이 있는가? 우리에게 하늘나라의 지식이 있는가? 우리에게 인내와 친절과 성령의 감동이 있는가? 우리에게 거짓 없는 사랑이 있는가?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이 있으며, 과연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가? 우리라고 말하기 전에 나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내 손에는 의의 무기가 들려져 있는가? 나는 영광을 받거나 수치를 당하거나, 비난을 듣거나 칭찬을 받거나 일관되게 하나님 나라의 선교를 하고 있는가?
세상에 나가 보면 사람들이 참으로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금방 느끼게 됩니다. 중고등학생들도 새벽부터 밤까지 이 경쟁 사회에서 지지 않으려고 정말 애쓰고 수고하고 노력합니다.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더 빨리 승진하고 집 한 채 장만하려고 영혼까지 끌어 모은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그만큼 하고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너희의 올바름이 바리새파나 율법학자들보다 낫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마태 5:20)고 하셨는데, 과연 우리의 무기와 투쟁과 결단은 얼마만큼이나 강하고 굳센가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특징]
제가 우리 생명사랑교회에 바람직한 목회자 청빙에 관련하여 강의를 하려고 왔을 때, 강의를 마치고 청빙위원회 위원들과 만나 질의응답 및 간담회 시간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제가 여쭌 것이 있습니다. 과연 여러분들이 만든 여러분들 교회의 목표 중 두 번째와 세 번째가 얼마나 대단하고 높은 이상인 줄 알고 만드신 것인지요? 두 번째와 세 번째 목표! 평신도 중심의 목회와 선교 사명에 충실한 교회가 되는 것! 이것은 포기할 수 없는 목표이고, 포기해서도 안 되는 목표이고 반드시 이뤄내야 할 목표입니다. 되든 안 되는 결과를 미리 재단할 필요 없이 지금 당장 작게라고 시작하고 계속 더 키워가야 할 목표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 3주 동안 “생존의 목회”, “안전의 목회”에 이어 “선교 목회”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사마리아와 땅 끝이 여러분의 마음 안에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마음 그 깊은 곳까지 주님의 복음이 전달되지 않으면 바깥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 일은 요원하게 됩니다. 내면의 질적 변화 없는 외부의 도전, 성숙한 신앙 없는 선교의 열정은 상처와 분열, 아픔과 고통을 동반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 각자는 자신의 깊은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모든 공부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갑자기 몇 계단을 오르고, 단계를 뛰어넘는 속성반 같은 것은 없습니다. 특히 신앙은 더 그러합니다. 진중하게 참된 신앙인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애쓰고 노력할 때 저는 기꺼이 여러분 곁에서 이끄미와 도우미가 되겠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 되길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기 때문에 속이는 사람 같아 보이나 진실하고, 세상의 이름은 없는 자여도 하나님께는 유명하고, 죽음에서 부활하고, 가장 약한 것에서 어느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강함을 일구어 냅니다. 어떤 고난과 어려움이 찾아온다 하여도 그것이 그 사람의 생명이나 삶을 파멸시키지는 못합니다. 근심해야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고, 가난한 것 같지만 많은 사람을 오히려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것 같지만 실로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이 그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께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이끌어 주고, 하나님과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먼저 함께 일하기 시작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핑계 대지도 마십시오. 안된다고 미리 선을 긋지도 마십시오. 오늘 시편 저자가 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위대하신 분이며, 어느 신보다 더 위대하십니다. 주님은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바다에서도 바다 밑 깊고 깊은 곳에서도, 어디에서나, 뜻하시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하나님! 우리가 온전히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소서. 야훼 하나님만으로 즐겁다던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이 곧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하여 주소서. 보이고 들리는 것 뒤에 없이 계신 하나님을 볼 줄 아는 눈을 지니게 하소서. 주님을 아는 지식이 온 세상에 충만하길 빕니다. 주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이 사회의 계급질서의 윗자리를 차지했을 때, 우리가 남과 다른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소서. 자기의 것을 내어주고, 약자들과 함께 하는 이가 되게 하여 주소서. 우리들의 선교가 주님의 사역을 재현하고, 그리하여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일구는 것이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우리가 주님을 송축하고, 우리의 입술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물어가는 한 해의 끝에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한없는 은혜를 기억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겪는 어려움들을 이겨내게 하시고, 우리가 때로 주님께 소홀할 때에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새 시대에 적응하며 또 다른 내일을 다시 꿈꾸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주님께 예물과 함께 우리 자신을 드립니다. 받아 주소서. 오늘 예배를 통해 천국의 기쁨을 누리고 저 세상으로 나아가 주님께서 감당하라 명하신 소명을 이어나가겠습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펴시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주님은 위대하십니다. 주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선교 사명을 감당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빕니다.
*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의 거룩한 친교가 하나님 나라의 선교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애쓰고 수고하고 노력하는 생명사랑교우들과 이 시간 전국에서 함께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