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한문덕 목사] 이런 교회 가지마라 – 2021년 3월 21일
사무엘하 6장 20-23절, 시편 70편 1-5절, 디모데전서 4장 1-10절
[교회의 명암과 최소한의 분별]
오늘 설교 제목을 이렇게 정할 수밖에 없었던 저의 심정을 여러분들이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에게 교회는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한 곳이고, 용기를 주는 터전이며, 새로운 깨달음과 도전의 장소였습니다. 제 인생에서 교회를 만나지 못했다면, 저는 지금까지 누리는 하나님의 은총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비그리스도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믿음의 형제자매들의 공동체인 교회 덕분에 더 높은 가치들을 추구하고, 삶의 참된 의미를 찾아 나설 수 있었으며, 목사까지 되었습니다. 교회는 저에게 여전히 희망이며, 삶의 가장 소중한 보금자리이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능성입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를 자신의 삶의 가장 중요한 동반자로 삼으라고 말하고, 그런 예수님을 잘 소개하는 교회에 소속될 것을 추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대하여 이렇게 마냥 좋은 평가만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최근에 전 세계적으로 클럽하우스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매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서로 육성으로 대화할 수 있는 카카오 톡이라고나 할까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편하게 다양한 주제를 놓고 얘기할 수 있는 앱입니다. 줄여서 ‘클하’라고 부르는 이 앱의 방들에 기독교 관련 주제들도 많이 올라옵니다. “개신교는 망했어요” “교회가 사회에 더 이상 해를 끼치지 않는 방법은?” “신학 전공하면 뭐해 먹고 살아요?” “교회의 미래” 등등. 여기에 들어가서 대화를 나누다보면 교회를 통해 삶이 풍성해진 사람들도 있지만, 교회 때문에 인생을 망치고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들도 다수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역사를 가볍게 훑어보기만 해도 모든 다른 종교나 집단처럼 명과 암이 있습니다. 밝은 면이 있는가 하면 어둡고 부끄러운 것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가 저지른 범죄들만 모은 책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세속 권력과의 야합, 무지와 미신의 끊임없는 유포, 성직자들의 범죄와 탈선,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행된 전쟁과 폭력, 그리고, 억압과 마녀사냥 등 실로 어두운 과거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사회에서도 목사와 교회의 타락은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한 명의 목회자로서 입에 담기 어려운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기에 최소한 교인들이 올바르게 분별하기를 바라며 오늘 설교를 합니다.
가톨릭 교회가 부패의 늪에 빠졌을 때, 하나님은 루터를 사용하셔서 개혁을 하셨습니다. 종교개혁 500년이 지난 지금 제3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가장 빠른 종교개혁은 바로 성도들이 나쁜 교회에 가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참된 진리의 말씀을 찾는 성도들이 부패한 교회에서 빠져 나와 올바른 교회로 간다면 나쁜 교회는 점점 소멸되고 자연스럽게 교회는 정화되고 개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도 많은 교인들이 참 교회를 구분하는 분별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고, 또 분별력이 있어도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를 떠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공동체든지 정을 붙이고 오랜 시간 함께 하면 그 공동체로부터 쉽게 빠져 나오기가 힘듭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의 운동을 하는 교회가 아니라 그저 친교를 기반으로 한 동호회 정도의 수준에서 한국 교회가 멈춘 지도 오래되었지만, 그 정도에 만족하고 그냥 신앙생활, 교회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이런 이유 때문에 종교개혁은 더디고, 교회는 변화하지 않으며 알게 모르게 점점 썩어가는 것입니다.
[속이는 영과 악마의 교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디모데전서의 말씀은 초기 교회를 위협했던 여러 가지 사상들에 대하여 올바른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 사회에 유행하던 영지주의 사조에 물든 사람들이 교회에도 흘러 들어왔고, 이들은 물질의 세계와 일상의 삶을 경시하며, 결혼도 금하고 특정 음식도 먹지 말아야 한다면서 금욕을 강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디모데전서 저자는 선하신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긍정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감사하게 받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는 가르침으로 이단 사설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가르침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은 신앙의 핵심을 부정하는 이단 사설도 있지만, 본질적인 것을 무시하고 비본질적인 것을 마치 중요한 것인양 오도하는 것도 있습니다. 기존의 한국교회의 잘못은 바로 비본질적인 것이 복음의 참된 진실을 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회의 공공의 영역들의 변화를 가져오는 사랑과 정의, 평화와 평등을 위한 삶을 강조하기보다 술과 담배 금지와 같은 개인 경건에만 치중했고, 가정과 사회에서 성숙한 시민으로 사는 것보다 교회의 종교행위에만 충실할 것을 강조했던 한국교회의 모습은 마냥 한국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어린아이 신앙에 머물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복음의 진수를 말하지 않고 주변적인 것들을 강조하면서 오히려 복음을 가로막는 일들에 대해 경고하고, 그런 것을 행하는 교회는 가지 말라고 말하려고 합니다.
우선 교회 공동체에서 가장 영향력을 많이 미치는 목사와 장로들과 관련된 것들부터 말씀 드립니다. 어느 교회이든지 하나님과 예수님이 아니라 목사와 장로가 신격화되고 우상화 되어 주인 행세 하는 곳에는 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교인들의 의견이 골고루 반영되지 않고, 목사나 장로, 당회가 모든 것을 제 맘대로 결정하는 교회, 목회자의 정년이 없이 계속 전권을 휘두르는 교회, 교회 재정이 투명하지 않고, 목회자의 목회비 사용이 불투명한 교회는 가지 말아야 합니다. 목사가 시대의 구원자라고 자칭하거나 자신만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성서해석의 독점권을 지니고, 교인 치리의 전권을 행사하면서 목사에 대한 맹목적인 순종을 요구하는 교회는 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 목사가 범죄를 저질렀다면 무조건 그 교회에서 나와야 합니다. 한 인터넷 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전국의 6만명 정도 되는 목사 가운데, 지난 10년간 목사가 사회법원에 유죄판결을 받은 횟수가 1만 2천건이라고 하는데, 이 정도면 목사의 5분의 1이 범죄자라는 얘기입니다. 지난 2015년부터 2018년 7월까지 3년 7개월 동안 유죄판결을 받은 서울‧경기지역 목사들은 도합 531명인데, 죄명별 분포를 보면 전체 범죄 중 사기가 18%(97명)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그 다음으로는 주거침입(68명), 성범죄(32명), 상해(31명), 명예훼손(29명), 폭행(28명), 횡령(26명), 교통사고(20명), 문서위조(20명), 업무방해(18명), 무고(11명) 등이었습니다. 공무집행방해와 건축법위반, 위증, 공직선거법위반, 모욕도 상당했으며, 살인 등 기타 죄목도 112명이나 됐습니다. 목사의 자질 문제도 심각한데, 제대로 신학교육을 받지 않고, 목회 훈련을 받지 않은 목회자들을 특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시한부 종말론이나 심판의 하나님을 강조하면서 교인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공포심을 조장하는 교회는 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만을 강조하면서 이에 대한 충분한 신학적 설명 없이 하나님 제대로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말로 공갈 협박 설교를 계속하는 교회에도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반대로 하나님 믿으면 만사형통이고 무엇이든 다 잘된다면서 세속주의적 욕망을 부추기고 자본주의식의 성공을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가르치는 교회도 가시면 안 됩니다. 주님의 것을 떼어먹으면 벌을 받는다는지, 헌금을 하면 넘치는 복을 주신다는지 하는 설교들을 하면서 헌금을 강요하며 교인들의 재산을 갈취하는 교회도 가지 마십시오. 복음을 왜곡하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넷째, 교회의 모든 활동을 비밀에 붙이고, 안과 밖의 내용이 다른 교회는 가지 마십시오. 교회에서 하는 얘기와 밖에서 하는 이야기가 같아야 합니다. 코로나 19시대에 온라인 대면 예배를 드리면 교회의 설교와 예배와 신앙 교육 등 다양한 영상이 모두 세상에 공개됩니다. 그렇게 공개해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야 합니다. 속 다르고 겉 다른 교회는 건강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교회에서 배운 내용을 외부에는 비밀로 하라고 말하는 곳이 있다면 이단일 확률이 높습니다. 교회 재정 상태를 투명하게 밝히지 못하고, 대외적으로도 보이지 못하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섯째, 비상식적인 설교를 하거나, 성경은 온 데 간 데 없고 정치선동을 하는 설교, 정부를 일방적으로 대변하거나 정부를 무조건 비난하는 설교, 성경 이외에 다른 책을 성경과 동일한 경전처럼 떠받드는 곳, 666, 144000, 등 요한계시록의 상징적 숫자와 언어들을 가지고 베리칩이니 바코드니 하면서 음모론을 펼치는 설교를 하는 곳에는 가지 마십시오. 세상을 마귀와 동일시하면서 귀신을 쫓아낸다는 등의 의식을 치르고, 하나님과 세상을 이원론적으로 과도하게 구분하는 교회,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교회 또한 위험합니다. 자연과학적 상식을 함부로 무시하며 고대의 미신을 문자 그대로 믿는 것도 어리석은 짓일 뿐입니다. 원인 모를 불행을 귀신의 소행으로 여기거나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하면서 저주 섞인 언어들이 남발되는 교회는 가지 마십시오.
여섯째, 사랑의 언어 대신 정죄와 혐오, 배제의 언어가 가득한 곳은 가지 마십시오. 한국교회는 사랑의 능력을 키우고, 이 사회의 공공영역에 보탬이 되는 방식보다는 이웃종교를 거짓 종교로 폄하하는 종교적 배타주의, 남을 죄인으로 규정하는 반공주의, 반이슬람주의, 반동성애 등을 신앙의 이름으로 내세우며 자신들의 결속을 도모했습니다. 급변하는 사회와 복잡한 세상의 현실을 차분하게 분석하고 공부하지도 않으면서 성서의 언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곧바로 타자를 자신의 기준에 따라 죄인으로 낙인찍는 행위를 하는 교회는 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참된 신앙은 넉넉한 사랑의 능력에서 증명되는 것입니다.
일곱째,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서를 읽으면서, 설교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들을 하지 못하게 하는 교회는 가지 마십시오. 목사가 공부하지 않고, 아무런 교육도 하지 않고, 교인들이 물으면 얼렁뚱땅 넘기거나 신앙이 부족하다는 등의 엉뚱한 소리를 하는 목사는 멀리 하십시오. 그런 사람을 쫓아갔다가는 어둠의 구렁텅이에 빠질 뿐입니다. 교회를 수십 년 다녔는데도 어떤 신앙의 성숙도 도모할 수 없는 그런 교회는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현대의 신학적 흐름, 변하는 세상에 따라 그리스도인은 어떤 윤리적 선택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교인과 함께 참된 신앙인의 길을 걸어가려는 어떤 노력도 없는 교회는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되는 교회입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교회활동이 온전히 자신의 교회의 성장과 보존만을 위해 있는 교회는 가지 마십시오. 교회의 정체성은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일구기 위해 세상을 섬기고 봉사하는 데 있습니다. 불의한 세상을 바꾸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의 소식이 전해지며, 눈 먼 자들이 새로운 깨달음으로 눈을 뜨며, 억압에 시달리는 이들이 자유를 얻고, 미움과 시기 질투 가득한 곳에 넉넉한 마음으로 사랑을 전달하고 보여주기 위해 교회는 존재합니다. 즉 교회는 하나님 나라 선교의 기지이며 하나님 나라 선교를 위해 존재하는 곳입니다. 타자를 위해 자신을 조금도 내어 준 적이 없는 사람은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교회의 구성원일 수 없고, 하나님의 자녀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 가지 마라’고 이렇게 많은 말을 하고 나니, 제 마음이 무척 슬퍼집니다. 왜 한국 교회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마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 우리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니 그전에 온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말 것입니다.
[다윗의 신앙고백]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구약의 말씀은 부부 싸움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부부 싸움이 아닙니다. 한 나라의 왕과 왕비의 말다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이 너무 기쁜 나머지 다윗은 자신의 맨살이 다 드러나는지도 모르고 춤을 추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사울의 딸이자 다윗의 아내인 미갈은 영 못마땅합니다. 왕의 체면이 구겨졌다고 느꼈고, 왕으로서의 품위와 격이 실추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자기 아버지와 남편 사이에서 벌어지는 권력 투쟁의 현장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미갈이 부모와 형제를 잃고 홀로 남은 그 상황에서 다윗을 보았을 때, 매우 복잡한 심경이 그런 언어로 표현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일개 목동인 자신을 선택하시고, 왕의 시기와 질투 속에서 여러 번 목숨이 날아갈 뻔한 위기도 넘기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도 끝을 내고 이제 드디어 이스라엘와 유다 전체의 유일한 왕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는 순간이 되었으니, 그 기쁨을 무엇으로 다 표현할 수 있었을까요?
다윗과 미갈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며 대화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둘은 가시 돋힌 말로 서로를 대하고 있습니다. 미갈은 왕 답지 못하다고 비난하고, 다윗은 하나님은 당신의 집안을 택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택해주셨다면서 서로 건드리면 안 되는 아킬레스건에 상처를 내며 싸웁니다.
그러나 오늘 대화를 잘 분석해 보면 은연 중에도 누가 진정한 신앙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가가 드러납니다. 다윗도 한 인간으로 보면 실수가 많고, 하나님 앞에서 절대 저지르면 안 되는 범죄도 저지른 나약한 존재이지만, 그래도 그 안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자신이 스스로를 보아도 천한 사람이라고 하는 그 고백 속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열등감과 나약함, 부족함과 심리적 결점들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하기에 그런 자신을 돌보아 주시고 택해 주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녹아 있습니다.
그러나 미갈은 이스라엘 최초의 왕의 딸로서, 공주로서 가져야 하는 품격과 품위에 더 익숙하고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 앞이지만, 거룩한 분의 약속의 말씀이 예루살렘으로 들어오고 있지만, 미갈의 눈에는 왕의 체통이 더 중요한 것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신앙 전통에서 진정한 왕은 오로지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 달라고 할 때, 사무엘은 허락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고, 왕을 세울 때 벌어질 온갖 부정적인 일들에 대해 얘기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열두 지파 부족 동맹은 외국의 침략에 취약한 구조였기에 어쩔 수 없이 이웃 제국과 비슷한 왕정제도가 이스라엘에 도입되고, 사울이 최초의 왕이 됩니다. 그 뒤를 이어 더 싸움을 잘하는 다윗이 왕이 된 것이고, 이로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전체 백성들은 외국의 침략에 맞서 훨씬 더 단단한 국가 안보를 확립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다윗-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은 가장 큰 영토를 확보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모두가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에서 비롯된 것임을 기억합니다. 주님 앞에서라면, 주님의 능력을 찬양하는 일 때문이라면, 이보다 더 낮아지고 싶다는 그의 고백은 솔직한 고백이고 심경입니다. 바로 이런 자세가 다윗에게는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은 자기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공했을 때, 때때로 실패하고 넘어졌을 때에도 우리는 주님 앞에서 진정으로 더 낮아지고 겸손하게 되는 경험을 했던가요? 오늘날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주님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건물을 자랑하고 돈을 자랑하고 권력에 기댄 모습을 보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없습니다. 오늘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을 낳지 못했던 것처럼 오늘날 한국교회가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지 못하고 사울 딸의 길을 걸어간다면 교회의 미래는 없습니다. 그리고 미래가 없는 것이 나은 것입니다. 그건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난 1세기 동안 한국교회가 승승장구 했던 것은 바로 주님께서 우리들을 그런 자리에 세워 주셨기 때문이며,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봉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교회가 어느새 자신의 존재를 망각하고 주님 앞에서 교만해졌고, 주님의 이름을 내세우면서 자신의 욕망을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지금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려고 세상을 사용하시는 것이고, 우리 모두는 한국교회 전체를 생각하며 그 모든 비난의 말들을 겸허히 들어야 합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고칠 수 있는 것들은 고쳐야 합니다.
제가 이런 교회 다니지 마라고 설교했지만, 우리 생명사랑교회도 정신 차리지 않으면 그런 교회가 될 수 있고, 그런 삯군 목사들이 청빙되어 올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들도 디모데에게 준 바울 사도의 권면에 따라 저속하고 헛된 꾸며낸 이야기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 무엇보다도 경건함에 이르도록 몸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운동선수가 금메달을 따기 위해 일분일초를 아껴가며 훈련하듯, 우리의 삶의 경건 훈련 또한 매 순간 지속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훈련된 사람은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은 참말이요,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말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다윗처럼 진실로 주님 앞에 섭시다. 믿는 사람의 구주이신 살아 계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둡시다. 우리 믿음의 공동체가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사고 다니고 싶고 소속되고 싶은 공동체가 되도록 애쓰고 노력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오늘의 훈련이 내일의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주님의 법궤는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지하게 따르려는 전 세계 모든 이들의 마음에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담은 법궤를 마음에 간직하고 오늘도 내일도 꾸준히 훈련하여 모든 면에서 유익을 얻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오늘 우리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나옵니다. 우리들이 주님을 사랑하는 첫 마음을 회복하게 하여 주소서. 복음의 말씀을 듣고 가슴 뛰던 시절을 기억하며 주님께서 주신 소명을 잘 감당하게 하여 주소서. 주님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온전히 회복하게 하시고,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드러나게 하여 주소서. 주님 앞에서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며, 늘 겸손하면서도 진지하게 살아가게 하여 주소서. 하나님의 거룩한 음성을 듣게 하소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통하여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에 찬양을 드리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감사기도
사랑의 하나님! 코로나 19가 길어지면서 우리들의 삶은 지쳐갑니다. 답답하고 언제 끝나는가 하며 깊은 한숨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와 함께 해 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사순절을 보내며 매일 아침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초대교인들의 믿음의 열정과 선교 사역들을 살핍니다. 우리 또한 이 시대에 알맞은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여 주소서. 오늘 주님께 나올 때 땀 흘려 일한 우리의 정성을 드립니다. 주님께서 받으시고, 하나님 나라의 귀한 사역에 쓰이게 하여 주소서. 우리의 삶 속에서 감사가 끊이질 않게 하여 주소서. 자족하는 마음도 허락하셔서 탐욕을 물리치고 주어진 것을 통해서도 참된 기쁨을 누리게 하여 주소서.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우리들 자신이 주님의 거룩한 성전임을 기억하십시오.
*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의 거룩한 친교가 경건의 훈련을 통하여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받아 누리는 생명사랑교우들과 이 시간 전국에서 함께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 위에, 아픈 세상에서 구원을 갈망하는 모든 존재들에게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