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한문덕 목사] 생명의 빛을 얻으려면 – 2020년 7월 26일
민수기 22장 31-35절, 시편 23편 1-6절, 요한복음서 8장 12-19절
[눈 밝은 나귀, 눈 어두운 예언자]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성서의 말씀은 한 이방 예언자, 신의 음성을 듣는 주술사에게 일어난 하나의 에피소드입니다. 자유로운 삶과 차별받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게 지내는 나라를 꿈꾸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나와 긴 여정을 가게 됩니다.
한편 거대한 무리가 애굽으로부터 가나안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들은 주변 나라들을 술렁거리게 했습니다. 거대한 떠돌이 무리들이 자신들의 나라에 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모리 족속의 땅을 지날 때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이니 잠시 길을 내어 달라고 말했지만, 아모리 왕 시혼의 경우는 이스라엘의 요청을 거절하고 오히려 군대를 이끌고, 가나안으로 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막고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아모리 족속의 땅에 어떤 피해도 끼칠 생각이 없던 이스라엘 백성은 원하지 않게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으나, 하나님의 도움으로 오히려 아모리 족속을 물리치고 안전하게 그 땅에 머무르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아모리 족속을 물리쳤다는 소문이 나자, 모압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모압 왕 발락은 당시 유명한 주술사이자 신의 말을 대언한다는 발람을 불러와 이스라엘 자손을 저주하는 의식을 행하려고 했습니다. 발람은 아람 사람으로 이름의 뜻이 ‘백성을 파멸시키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의 예언과 주술은 상당한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발람은 메소포타미아 부돌 지방(유프라테스강 서쪽 96km지점) 사람이었는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 야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압의 장로들과 미디안의 장로들이 발락의 명령을 받고 발람을 부르러 왔을 때는, 사신들과 함께 가지 말고, 저주하지도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이 두려웠던 발람은 사신들을 돌려보냅니다.
그런데 모압 왕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보내고, 더 많은 보상으로 발람을 꼬드깁니다. 계속 되는 꼬드김에 발람은 조금씩 마음이 흔들립니다. 만약 발람이 이전에 하나님께서 하셨던 명령을 기억하고 있고, 그것을 충실하게 지키려고 했다면 누가 오든지 곧바로 되돌려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발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신들에게는 모압 왕이 금과 은을 준다해도 하나님의 명을 어길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께 한 번 더 물어 보겠다고 합니다. 발람의 마음이 이미 기운 것입니다. 후한 물질적 보상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분명 하나님의 명을 어기면 안 되는 것도 알고, 그래서 높은 직위의 사람들이 와서 아무리 더 큰 보상을 약속한다 해도 단칼에 거절해야 하는 것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반복해서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바뀌기를 은근히 기대하면서 말이지요.
이런 발람의 마음을 아셨는지, 아니면 떠 보려고 하신 것인지 이제 하나님께서 그렇게 흔들리는 발람에게 갈 테면 같이 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허락한 말만 하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러나 발람은 같이 가라는 말에 마음이 들뜬 나머지 모압 왕 발락이 원하는 대로 이스라엘 자손을 저주할 마음을 먹고 길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천사를 보내어 그가 가는 길을 막습니다. 그런데 발람은 주님의 천사를 보지 못하고 오직 발람을 태운 나귀만이 칼을 빼어 들고 길 한 가운데 서 있는 천사를 봅니다. 그래서 나귀는 천사를 피해 밭으로 들어갔는데, 발람은 이 사실을 모르기에 나귀에게 채찍질을 하여 다시 길로 들어서게 합니다. 그러자 천사가 또 양쪽에 담벼락이 있는 좁은 골목을 막습니다. 그러자 나귀가 천사를 피하려다가 그만 발람의 발이 한 쪽 담장에 긁히게 되는 일이 생기고, 그러자 발람은 또 나귀를 때립니다. 그럼에도 천사가 비켜서지 않자, 나귀는 발람을 태운 채로 땅바닥에 주저앉습니다. 그러자 발람이 또 나귀를 때립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나귀의 입을 열어 주셨고, 그러자 나귀가 발람에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제가 주인어른께 무슨 잘못을 하였기에, 저를 이렇게 세 번씩이나 때리십니까?” 나귀와의 대화 중에 발람 또한 눈이 열려 드디어 천사를 보게 되었고, 그 때에서야 자기가 잘못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이야기에서 눈 밝은 나귀는 천사를 보고 피하는데, 신의 뜻을 대변하고, 그의 뜻에 따라 축복과 저주를 내린다는 발람은 오히려 물질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계시를 우습게 여깁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를 따라 어둠을 벗어나 생명으로 들어가라]
오늘 구약의 말씀을 길게 한 것은 사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발람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진지하게 하늘의 지혜와 삶의 의미, 존재의 가치를 묻는 사람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압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예 묻지 않고 땅만 바라보며 살겠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하늘의 뜻을 찾는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그 분의 뜻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의 유혹과 또 다른 욕망이 솟아오르면 자신도 모르게 거기에 넘어가는 일이 생깁니다. 단호하게 죄악의 싹을 끊고,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하지만 마음이 흔들립니다.
발람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모압 왕이 보낸 사신을 따라가서도 안 되고, 가서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을 향한 저주의 말을 퍼부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재물 때문에 발람은 마음이 흔들립니다. 갈등이 생기고 마음이 두 갈래로 왔다갔다 합니다. 분명히 가지 말아야 하는데, 혹시 하나님의 마음이 바뀌지는 않으실까 생각하여 자꾸 하나님께 되묻습니다. 한 번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인데, 미련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빈틈을 보이시는 것같이 느껴지자 바로 고관들을 따라 나서고, 그러는 사이 하나님의 경고와 명령은 희미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천사까지 보내셨는데, 눈이 어두운 발람은 나귀가 알아보는 천사도 못 알아보고, 애꿎은 나귀만 때리게 됩니다.
저는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이 진정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다면 분명 유한한 자신을 넘어서는 초월자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말하는 유혹이 만만치 않기에 자꾸 거기에 마음이 쏠립니다. 간혹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생기다가도, 세상의 온갖 미혹들에 마음이 기울어 버리면 이제 하나님의 천사마저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제 고민은 다른 데 있습니다. 오늘날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그리스도인들마저도 하나님의 명령을 너무 우습게 여기고 하나님의 뜻을 찾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보증하시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를 따르면 어둠에서 벗어나 생명의 빛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백번 옳은 말씀이며,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고집과 생각으로 가득했던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는 눈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알아보는 눈이 없기에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들을 책망합니다.
이 책망의 말씀은 오늘 한국 개신교 교인들과, 교인들을 어둠의 구렁텅이로 이끌고 가는 눈 먼 목사들에게 가장 필요한 말씀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시고, 믿음의 백성들을 불러 모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교회에서조차도 하나님의 뜻을 진실하게 묻고, 기도하고, 성경의 말씀을 깊이 상고하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습관이 더 앞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뜻보다는 이전에 했던 자신의 경험이 더 핵심적인 기준으로 작동합니다. 복음의 말씀 대신 이데올로기가 들어서고, 진리에 대한 진지한 추구 대신 맹목적인 미신이 판을 치고, 사랑과 은혜 대신 혐오와 배제, 저주의 언어들이 난무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분명 세상의 공동체와는 다른 지점이 있어야 합니다. 그 부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성령의 공동체인 교회가 바라보고 지향해야 할 비전 없이 교회들이 당면한 과제 앞에서 그저 교인들 각자가 생각하고 느끼고 주장하는 것들만 난무할 때가 많습니다. 코로나 19 상황에서 더 그런 일들이 많아지고 있고, 오늘 신약의 말씀에서 책망 받은 바리새파들처럼,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라, 사람의 기준이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오늘 시편의 말씀, 너무나도 유명한 시편 23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내게 부족함 없어라!” 오늘 시편의 저자가 부족함 없다고 확신에 찬 찬양을 드리는 이유는 바로 주님께서 우리들의 목자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니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어떨 때 부족함 없다고 노래를 부를까요? 세상 사람들의 삶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제가 2016년 5월 22일 설교에서도 인용했지만, 중산층에 대하여 한국 직장인들에게 설문 조사를 했는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대학교 4년제를 졸업해서 빚 없이 30평짜리 아파트는 하나 있어야 하고,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에 취직하여 매월 500만원 이상은 받아야 하고, 자동차는 최소한 2,000CC급 중형차를 소유해야 하며, 통장에는 현찰로 1억원 이상 보유하고 있고, 1년에 한번 정도는 해외여행을 다녀올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자산이 10억원은 있어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고, 충청도, 전라도 지역은 한 5억만 있어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고, 제주도나 강원도는 한 3억만 있어도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이 예배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온라인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언제 “내게 부족함 없어라!”라고 고백하십니까? 한국 직장인들이 생각하는 중산층 정도는 되어야 “내게 부족함 없어라”라는 고백이 나올까요? 그리스도인들은 오로지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고, 주님의 뜻을 세상에 펼쳐 나갈 때, 그래서 세상의 빛으로 존재할 때 내게 부족함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시편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이어지는 이 고백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착각합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때문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 푸른 풀밭을 제공해 주시고,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부족함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시편의 노래를 그렇게 읽는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야훼 하나님 자신이 푸른 풀밭이며, 쉴만한 물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 물든 그리스도인들은 실제로 푸른 풀밭이 제공되고, 쉴 만한 물가가 있어야 하고, 위에 말한 대로 물질적 경제적 풍요가 제공되어야만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이 나의 목자”인 것이 아니라, 주님이 제공하는 그 혜택이 목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수단이 되고, 주님이 허락하신 안정된 삶이 목적이 됩니다. 목적과 수단이 뒤바뀔 때 그리스도교 신앙과 진리는 타락하고 훼손되게 됩니다.
시편의 말씀을 가만히 읽어보면 시인은 죽음의 그늘 골짜기도 경험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불의한 세상에서 정의를 외치고, 억압하는 자에게 자유를 요구했으며, 악을 선으로 갚으려고 했고, 참고 기다리며 묵묵히 사랑하는 연습을 했기 때문에 악의 세력들이 자신들의 더럽고 추한 모습이 드러나서 이 사람을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몰아넣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우리의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그런 상황에서 지팡이와 막대기가 되어 주십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자신을 내어 맡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움으로 가득합니다. 도전하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돈에 기대려고 합니다. 보이지 않지만 주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갈 줄 모릅니다. 안정과 평안만을 지향하지 약속의 땅을 향해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광야의 길을 걸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바른 길로 이끄실 때, 많은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예’라고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눈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일반 사람들과 비교해서 어떤 도덕적인 면도 발견할 수 없다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진지한 신앙인이 되라!]
저는 비그리스도인 집안에서 태어나 거의 홀로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리스도교에 우호적이지 않은 집안 분위기에서 내 신앙을 변호하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세상 사람들보다 못한 그리스도인들의 못난 모습들을 보면서 참된 그리스도교의 모습을 찾고자 무던히 애를 썼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왜곡할 때, 주님이신 예수님과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욕망의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때, 저는 목사이기 전에 한명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모욕을 느낍니다. 특히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모습을 하며 뻔뻔하게 복음을 왜곡할 때 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생각이나 헤아림으로 헤아려질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매우 진지하게 자신의 삶의 의미를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철저하게 찾고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인들은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에 별 관심이 없고, 오히려 비본질적인 것에 너무나 많이 오염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복음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함께 모이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이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목말라하고, 굶주린 사자와 같이 진리를 찾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요? 우리 생명사랑교우들도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고 있나요?
제가 신앙과 관련된 내용들을 영상으로 찍어서 유튜브 채널에 올려 놓으면 저도 모르는 분들이 종종 댓글을 달아 주십니다. 그 댓글 중에는 진지한 물음들이 있습니다. 그런 물음들을 만날 때 저는 매우 반갑고 뿌듯합니다. 우리 생명사랑교우들께서도 유튜브 채널에 올리는 다양한 영상들을 보시고 스스로 질문하며 주님의 뜻을 찾고 주님의 인도하시는 길로 가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심판하실 때, 우리 모두는 야훼 하나님의 저울에 우리의 신앙을 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핑계할 수 없습니다. 주님 앞에 설 때 과연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서게 될지 지금보다 더 진지하게 신앙을 붙드셔야 합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그냥 친교 공동체, 적당히 관계를 맺고 적당히 생활하는 그런 공동체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정확하게 우리 신앙 공동체가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 주님께 부름 받는 자로 나 자신은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할지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일꾼이 필요합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주님의 뜻을 펼치려는 진지한 신앙이 일꾼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따르려면 매 순간 과감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 결단을 할 때만이 우리는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생명의 빛으로 나갈 수 있으며,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노래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여러분의 인생이 잘 풀리지 않고, 뭔가 답답하고, 뭔가 어렵다면 진정으로 내 자신이 주님을 따르려고 했는가를 물어 보셔야 합니다. 주님 때문에 받는 고난이라면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만, 세상을 좇다가 세상의 가치관에 휘둘려서 고생하는 것이라면 다시 한 번 자신의 신앙을 성찰해야 합니다. 애꿎은 나귀를 때렸던 발람처럼 어리석게 행동하지 말고, 눈을 열고 귀를 열어 우리 앞에 서 계신 하나님의 천사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체험했던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은총, 그 무한하신 사랑은 정말로 놀라운 것입니다. 그 능력의 하나님을 만나시고 생명의 빛으로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기원합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생명의 하나님! 우리가 이 어려운 시대에 우리들 뿐만 아니라 모두를 살리는 일에 나서게 하여 주소서. 결연한 의지와 더욱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서 허락하신 기회를 꽉 붙들게 하여 주소서.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게 하여 주소서. 어둠에서 벗어나 생명의 빛으로 들어가게 하시고, 세상 유혹에 넘어지지 않게 하여 주소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주님이시며, 그 주님께서 나의 목자이시니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주님을 송축하고, 우리의 입술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방황을 이겨내게 하시고, 우리가 반항할 때에도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사랑할 사람들을 주시고, 아름다움은 누리게 하시며, 고요히 머물 장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삶의 놀라운 선물들, 우리가 배운 진리와 성취할 수 있던 선한 일들에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시간 주님께 우리 자신을 드립니다. 받아 주소서. 오늘 예배를 통해 받은 천국의 기쁨을 간직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바쁜 세상에서도 주님께서 허락하신 평안을 누리며, 주님께서 감당하라 명하신 소명을 이어나가겠습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으로 주님께 찬양을 드리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세상의 빛이신 예수만을 따르십시오. 어둔 그늘에서 벗어나,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십시오.
* 축도
이제는 부를수록 새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깊은 은혜와, 생명의 주인이시며 희망의 원천이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만날수록 따스한 성령님의 숨결이 주님만을 우리의 목자로 여기고 따르는 생명사랑 성도들과, 온라인을 통해 함께 예배하는 모든 믿는 이들에게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길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