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한문덕 목사] “살아지고 살아내는 삶” – 2021년 12월 5일
이사야서 1장 10-17절, 시편 127편 1-2절, 고린도전서 14장 26-33a절
[목회란 무엇일까?]
내년은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10주년을 맞이하고, 저는 담임목사로서 첫 안식년을 갖게 됩니다. 교회는 교회대로 저는 저대로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시간들을 보내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회에 처음 부임했을 때는 우리 교인들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지 못했기에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에 따라 목회 계획도 수정해야 했습니다만, 이제 제게 주어지는 안식년 6개월 동안은 지난 6년의 목회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근 지난 목회를 돌아보며 묵상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앞으로의 목회를 어떻게 하면 좋은 지 새로운 생각을 주셨습니다. 오늘부터 삼 주 동안 지난 목회와 앞으로의 목회와 관련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그 첫 시간입니다.
최근에 육성한 목사의 임직식에 참여하고, 부목사 부임식을 진행하면서, 제가 2008년 목사 안수를 받을 때와 향린교회에 부목사로 부임할 때, 그리고 2015년 우리 생명사랑교회의 담임목사로 취임할 때를 떠올렸습니다. 육성한 목사님이 목사 안수를 받을 때나, 부목사로 부임할 때 어떤 마음이셨는지 잘 모르지만, 저는 목사 안수를 받고, 부목사로 부임할 때 매우 떨리고 동시에 ‘과연 내가 목사로 내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맞는가?’, ‘목사에게 맡겨진 사명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번민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당시 서울노회 노회장이셨던 김병국 목사님께서 목사 안수하기 전, 임직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대를 사도의 전통과 권위를 이어받은, 거룩한 목사직에 부르셨음을 믿습니까?”라고 물으셨을 때, “예”라고 대답은 했지만, 그 때까지도 제 머릿속은 매우 복잡했습니다. 제가 매우 존경하는 당시 향린교회 조헌정 담임목사님이 계시지 않고, 55년의 역사 속에서 참다운 교회가 되고자 노력했던 향린교회에서 목회할 수 없었다면, 아마도 저는 다른 길을 갔을 수도 있습니다.
평신도로 20년, 신학생과 파트타임 전도사로 7년, 목사수련생 과정으로 2년, 부목사로 6년, 신촌교회의 설교목사로 14개월을 보내고 생명사랑교회의 담임목사로 부름 받았을 때도 저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었습니다. 머뭇거리고 주저하면서 “주님, 죄송합니다. 제발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던 모세처럼 저는 늘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역할 수는 없기에, 정말 하나님의 발길에 채여서 지금 우리교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벌써 6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주님의 목회를 감당하기에는 늘 부족하지만, 제가 목회를 하면서 지니고 있는 최소한의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가장 큰 원칙은 사람 눈치 안보겠다는 것입니다. 담임목사 취임사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제가 생각하는 목회란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총으로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교인들과 함께 삶을 나누며 세상을 온전히 치유하는 것”입니다. 목회는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총으로 하는 것입니다. 목회의 현장에서 직접 사역을 감당하는 것은 목사와 교인들이지만, 그 일의 총 책임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목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되어야지, 사람 좋으라고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마음도 모르고 하는 목회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오늘 이사야 예언자의 입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기가 지겹고, 나는 이제 수송아지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싫다. 너희가 나의 앞에 보이러 오지만, 누가 너희에게 그것을 요구하였느냐? 나의 뜰만 밟을 뿐이다! 다시는 헛된 제물을 가져 오지 말아라. 다 쓸모 없는 것들이다. 분향하는 것도 나에게는 역겹고, 초하루와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으며, 거룩한 집회를 열어 놓고 못된 짓도 함께 하는 것을,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나는 정말로 너희의 초하루 행사와 정한 절기들이 싫다. 그것들은 오히려 나에게 짐이 될 뿐이다. 그것들을 짊어지기에는 내가 너무 지쳤다. 너희가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 하더라도,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겠다.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를 한다 하여도 나는 듣지 않겠다. 너희의 손에는 피가 가득하다.”
너무나도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했는데도, 주님께서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고 말씀하실 것이라는 예수님의 경고처럼, 오늘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은 너무나 처절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러 오는 이들에게 지겹다고 말씀하시고, 주님께 드리는 예물도 다 쓸모없다고 하시며, 우리들이 하는 모든 목회 활동이 짐만 될 뿐이고, 나에게 오는 백성들이 나의 뜰만을 밟을 뿐이라는 이 말씀은 정말로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다. 결정적인 한마디는 이것입니다. “너희가 나의 앞에 보이러 오지만, 누가 너희에게 그것을 요구하였느냐?” 하나님조차도 요구하신 적이 없는 것을 하면서 하나님 핑계를 대는 모든 이들에게 내리치는 벼락과도 같습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의 목회가 이런 목회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말이지요. 목회란 “하나님의 은총으로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교인들과 함께 삶을 나누며 세상을 온전히 치유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세상을 치유하기는커녕 불법을 행하면서 손에 피가 가득한 채로 하나님께 나올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예언자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씻어라. 스스로 정결하게 하여라. 내가 보는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버려라. 악한 일을 그치고,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
오늘 이사야의 말씀은 사회 윤리적으로 올바로 서지 못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종교행위는 위선이고 타락이며,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운운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 줍니다. 저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이 오늘날 한국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타락한 교회의 모습을 언론에서, 동료 목회자들에게서, 비그리스도인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들을 때마다 속이 뒤집히고,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역겨움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목회 현장의 현실]
그런데 지난 6년간 목회를 하면서 저는 한국교회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조금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지금의 교회가 소금과 빛이 되기는커녕, 부패하고 불의한 권력 집단이 된 데는 매우 여러 가지 원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첫째 원인은 한국인들의 심성 깊이 녹아 있는 샤머니즘적 종교의 욕망입니다. 당장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고, 더 나은 현세적 물질적 복을 얻는 것이 삶의 전부인 양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 개신교가 이 땅에 들어올 무렵 가장 크게 대결했던 종교는 바로 무속입니다. 교회는 무당 종교와 대치하면서 한국인들 속으로 파고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무당 종교의 모습을 닮아가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말하면서도 사실은 세상의 불의에 맞서지 않고, 교인들이 당면한 급한 불부터 끄고, 세상과 동일하게 경제적 부와 사회적 지위를 얻게 해 주는 일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정의를 찾으라고 이사야 예언자는 말하지만, 복을 비는 기도가 훨씬 더 많고, 참된 신앙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박수갈채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가 하는 간증에 사람들이 더 많이 몰린다는 사실이 그것을 반증합니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자유와 평등, 정의를 찾고 외치기보다 내 한 몸의 안위가 더 급한 사람들이 된 이유는 지난 100년의 근현대 한국 역사가 혼돈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친일파 무리는 승승장구하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쓴 이들의 후손은 가난을 면치 못한 역사, 권력과 유착해서 뒤로 뇌물 주면서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사업하는 이들이 잘되고, 올바로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은 바보 소리를 듣게 되는 현실 앞에서 그리스도교 신앙도 왜곡되었던 것입니다. 기복종교화 된 한국교회가 번영신앙과 교회성장신학을 중심으로 지난 4-50년간 해 온 목회는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님의 참 제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교회 건물의 크기와 교인 숫자의 많고 적음을 따지는 것이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타락한 둘째 원인은 신학과 목회현장에서 모두 탁월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목회자를 양성하지 못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교인들이 진짜 그리스도교가 무엇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비인가 신학교도 난립했지만, 학부 4년, 대학원 2년, 수련생 과정 2년이라는 꽤 긴 시간의 신학 수업, 목회 수업을 받아도 열악한 목회현장을 새롭게 거듭나게 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의 귀를 즐겁게 해 주고, 다 잘 될 것이라는 긍정의 마인드만 적당히 심어주면 교회가 커지던 시절에, 목사들의 설교에서는 도무지 그리스도교의 정신이 깊이 녹아든 말씀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또 교인들은 위로와 축복을 강조하는 설교에 중독되고, 하나님의 심판을 내세우는 설교 앞에서 두려워합니다. 이런 심리를 이용해 먹는 교회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의 귀가 높아지고 눈이 커진 시절이 되었는데도, 그들의 양심과 삶을 파고드는 설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예언자적 목소리는 정말 찾기가 어렵습니다.
목회를 해보면 목회자는 매우 다양한 분야를 종합적으로 그러면서도 균형 있고 심도 있게 지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목회자에게는 기본적인 성서와 신학 지식에서부터 목회 행정과 인간의 삶과 마음에 대한 이해,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과 예배와 목회의 기획력 등 정말로 종합적인 실력이 요청됩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목회의 과제도 늘어납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는 영성이 깊고 목회의 전문성을 지닌 목회자를 양성하는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제대로 가르치는 교사가 없고, 잘 배우려는 학생도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발전하는데 교회는 뒤처집니다.
철학자 김영민 선생이 지적한 것이지만, 한국 교인들 중에는 차분히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진리의 내용을 공부하고 나서, 그것을 또 삶에서 적용도 해보고 그리스도교에 입문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우선 어떤 상황에서, 특별한 계기를 통해 제 맘대로 믿은 다음에, 그 이후에는 그런 자신의 신념을 변호하기 위해서 성서와 교리와 조직과 제도를 끌어다 붙이는 본말이 전도된 현상이 한국 교회에 가득합니다. 뿌리는 비옥한 땅에 내리고, 줄기와 가지는 하늘로 향해야 하건만, 한국교회는 엉뚱한 곳에 뿌리를 내려서 세상의 욕망을 향해 줄기와 가지를 뻗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를 다시 뽑아내어서 다시 말씀의 땅에 심고 줄기와 가지를 바로 잡아가는 일은 정말 어렵고 지난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 없이 한국교회의 갱신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단 안에는 교회를 바르게 하기 위한 노력에 뛰어든 뜻 있는 목회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 전체가 사회적 비난을 듣고 있는 지금의 목회 현장은 너무나 열악합니다. 다른 일로 생계를 유지하며 목회를 해야 하는 작은 교회의 목회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교회가 부자가 되어서 세상의 욕망을 탐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너무나 열악해서 예배만 간신히 드리고 비실비실하여 언제 문 닫을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뜻 있는 목회자들마저도 목회의 의욕을 상실해 버리고 맙니다.
건강한 육체에서 건강한 정신과 활동이 나오듯, 교회도 최소한의 물적 토대와 예산이 확보되어야 목회와 선교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 처음 부임했을 때,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작고 약하고, 조금은 위태위태한 상황이었습니다. 분열의 아픔과 상처도 남아 있었고, 월세를 내는 지하 예배실에서 단단한 뿌리를 내리는 교회로 안착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했습니다. 목회자에게 사택을 제공할 수도 없었고, 2015년 일년 예산은 1억이 조금 넘는 정도였습니다. 2016년 저의 연봉은 2,400만원이었고, 전도사님들을 포함하여 목회자들 사례비를 드리고, 예배실 임대료와 노회 상회비를 내고 나면 남는 5천만원 정도를 가지고 선교비와 애찬, 친교, 봉사 등등을 해야 했습니다. 경제관념이 별로 없었던 저인데도, 이대로는 목회가 매우 힘들겠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부임했다고 해서 교인이 폭발적으로 늘고, 교회가 부흥하여 재정이 급격히 늘어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제가 생명사랑교회에서 목회를 계속하려면 제 스스로 방안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당시 우리교회를 방문했던 한 교우의 말에 따르면 우리 교회를 중심으로 사방 150미터 내에 교회가 100개도 더 된다고 하고, 띠를 띠고 거리에 나가서, 휴지나 물티슈를 주면서 교회를 홍보하는 옛날 방식으로는 전도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목회를 해야 할지 매우 난감했습니다. 교육 목회를 늘 표방했지만, 바쁜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 예전처럼 교회에 자주 모여 성성공부를 하고 기도회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종종 하수관이 터져서 목회실과 유치부실이 물난리가 나고, 여름 장마철 2시간마다 제습기에 가득찬 물을 빼내는 것쯤이야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같은 지하 공간에 세 들어서 옷 수선을 하시던 아주머니가 목을 매어 자살을 하시고, 제가 그의 시신을 내려야 했을 때, 우리 아이들이 서울의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매우 힘들어 했을 때, 제가 사는 아파트 옆집에 정신이상이 있는 부부가 들어와서 매일 밤, 술을 마시고 몇 개월 동안 밤 열시부터 새벽 5시까지 부부싸움을 하는 소리에 잠을 잘 수 없었던 시절에는 멘탈이 갑이라고 자부하는 저 자신도 견디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 때 당시 술 마신 옆집 사람이 종종 우리 집 문을 쾅쾅 두드리곤 했는데, 아직까지도 누가 우리집 문을 두드리면 가슴이 벌렁거립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의 삶은 살아지게 마련입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면 우리는 주님이 주신 생명과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생명(生命)은 살라는 명령이며 따라서 우리는 열심히 살아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삶은 우리를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생존의 목회]
지난 6년의 목회를 돌아보면, “생존의 목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종 황덕형 장로님께서 구체적인 목회의 목표를 세우고 모든 교인들에게 비전을 보여주고 그렇게 이끌어 가시라고 제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동안 저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을 생각하면서도 숫자로 저의 목회 계획을 말씀드리지는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라도 주님의 말씀 가운데 올바로 서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황 장로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최소한 교회가 생존하기 위한 기본적인 토대를 마련할 필요는 있고, 그에 따라 목회자가 구체적인 것들을 제안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는 정관에 따라 재적교인 200명이 넘어가는 순간부터 분가를 위한 준비를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우리 교회가 앞으로 재적교인 200명을 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200명 전부가 매주 출석하긴 어려우니, 153명의 교인이 평균적으로 출석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교회의 1년 예산은 약 3억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1억 5천 정도는 목회자들 사례비와 교회의 모든 운영에 사용하고 나머지 1억 5천 정도로 이 세상을 치유하고 정의를 선포하고 복음을 전하며 이웃을 구제하는데 사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는 목회자들을 위한 사택도 마련해야 합니다. 앞으로 목회자를 구하는 일이 매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실력 있는 목회자를 모시기 위해서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해야 합니다. 지금의 예배 처소도 바뀌어야 합니다. 교육부와 다른 부서들이 소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조금 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열 살이 되는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이제 생존할 수 있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고 한 발 더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바울사도는 고린도 교회에게 편지를 쓰면서 교회 안에는 다양한 은사를 지닌 교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잘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평화의 하나님께 배워 교회의 질서를 잡아가고 서로 협력할 수 있다면 우리 교회는 앞으로 더욱 튼튼해지고, 주님의 선교 사역을 감당하기에 합당한 교회로 발돋움 할 것이라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지난 세월 저는 우리 생명사랑 교우들께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고 또 교회를 위해 애쓰고 수고하셨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각자 자리에서 믿음을 지니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셨고, 자신이 받은 그 은사를 충분히 사용하셨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들은 지난 6년 전보다 훨씬 더 발전하고 나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또 여러분들의 수고에 박수갈채를 보내 드립니다.
그러나 우리 명심합시다. 주님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을 세우는 사람의 수고가 헛되며, 주님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된 일이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먹고 살려고 애써 수고한다 해도, 주님께서 하시지 않으면 모든 일이 헛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려 한다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헛된 일을 꿈꾸지 말고, 오히려 주님의 일을 제대로 해 낸다면, 주님은 또 주님의 방식으로 놀라운 일들을 우리에게 보여 주실 것입니다. 저는 그런 주님의 뜻이 우리 생명사랑교회에서 펼쳐지기를 기대하고 또 기대합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우리가 너무 애쓰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셔서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게 됩니다. 살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사명과 소명을 주시고 살아내라고도 하십니다. 삶의 걱정과 염려를 내려놓으십시오. 다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비전과 주님의 뜻 가운데서 우리 모두 열심히 살아냅시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에서 이탈하지 말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친다 해도, 세상 모두가 주님의 뜻을 거역하고 심지어 믿는 자들까지도 유혹에 넘어진다 해도 우리는 주님의 뜻을 살아내야 합니다. 그 생명의 길에 저와 여러분이 함께 하시고, 우리 주님께서 영원히 동행하실 것입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지난 세월 우리 생명사랑교회를 지켜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생명을 허락하시고 우리들의 삶을 이끌어 주신 은혜 감사드립니다. 우리 생명사랑교우들이 주님의 뜻에 따라 주어진 삶을 살아낸 세월을 기억해 주소서. 작은 교회이지만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랐습니다. 이제 더 밝은 미래를 기대하며 꿈꾸는 우리들의 소망 또한 주님의 원대한 계획 속에 넣어 주소서. 그리하여 우리들의 모든 삶이 주님께 영광이 되고 주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우리가 주님을 송축하고, 우리의 입술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물어가는 한 해의 끝에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한없는 은혜를 기억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겪는 어려움들을 이겨내게 하시고, 우리가 때로 주님께 소홀할 때에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새 시대에 적응하며 또 다른 내일을 다시 꿈꾸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주님께 예물과 함께 우리 자신을 드립니다. 받아 주소서. 오늘 예배를 통해 천국의 기쁨을 누리고 저 세상으로 나아가 주님께서 감당하라 명하신 소명을 이어나가겠습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펴시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우리 모두는 주님께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언제나 주님의 뜻을 생각하며 한 걸음 한걸음 나아갑시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고 언제 어디서든지 주님의 뜻을 이뤄 가시기 바랍니다.
*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의 거룩한 친교가 더 나은 신앙인이 되고, 더 나은 하나님의 공동체를 꾸리기 위해 애써왔고 지금도 애쓰고 있는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들과 이 시간 전국에서 함께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