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한문덕 목사] 너는 무엇을 보고 있느냐? – 2022년 10월 9일
예레미야서 1장 11-19절, 누가복음서 12장 54-56절
[목사 안수를 받던 시절]
올 11월 말이 되면 아마도 강미희 전도사님께서 목사 안수를 받게 될 것입니다. 작년에는 육성한 전도사님께서 목사 안수를 받았고, 지난 8월 11일에는 송실 전도사님이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목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신학도 공부하고 목사 수련생 과정도 이수했지만, 막상 목사가 될 때는 두렵고 떨립니다. 때때로 주님께서 펼치실 일에 기대를 걸고 희망찬 내일을 바라보며, 주님의 종에게 내리시는 놀라운 은총의 순간을 짜릿하게 맛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답 없는 길 앞에서 의심의 구름 한복판에 서기도 합니다. 목회자가 감당해야 할 사역들이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마다 가슴 한구석에서 끊임없이 주어진 소명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생겨납니다.
목사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어떻게 목회를 해 나가야 하는가? 목회 전반에 대해 가장 깊은 고민을 할 때가 바로 목사 안수를 받을 때가 아닐까 합니다. 겉모양만 보면 목사 안수 전이나 목사가 된 이후나 달라진 것이 없고, 일상의 삶도 비슷하게 이어지지만,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의 내면에서는 태풍이 휘몰아치기도 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물음이 묵직해집니다.
저도 2008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기 나흘 전 주일예배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저는 설교 제목을 “무당과 예언자”라고 했습니다. 보수적인 그리스도교인들은 무속에 대해서 매우 배타적이고 없애야 할 대표적인 미신이라 생각합니다만, 실제로 진실한 무속인들의 삶을 보면 배울 점도 많습니다. 무속인들은 자신을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을 지극정성으로 대합니다. 그를 위해 성심껏 기도하고, 그의 한(恨)을 풀어 주기 위해, 그에게 생길지도 모르는 재앙을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저는 한 사람의 목사로서 누군가 고통과 상처, 아픔과 근심, 불안과 두려움을 가지고 저를 찾아올 때 최소한 무당 이상은 되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설교 제목에 넣은 것입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분별하고,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책임을 맡은 사람입니다. 예언자들도 무속 전통의 샤먼처럼 위로의 말을 전하기도 하지만, 한편 하나님께 등을 돌려 불행을 자초하고 파멸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는 냉정하고 엄중한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신앙이 식어가고 흔들릴 때, 회개하라고 외치며 주님께로 돌아올 것을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모든 사람이 “괜찮다”고 말할 때, “평안하다”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합니다. 불꽃 같은 눈으로 숨어 있는 위기를 알아채며 닥쳐올 재난을 예상하면서 끙끙 앓아눕고, 어떨 때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예민하게 굽니다.
[예언자 예레미야의 운명]
예언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북쪽으로 5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 아나돗의 제사장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이스라엘 백성에게 닥칠 재앙을 예언해야 했기에 장가들어 자녀를 두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매우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예언자적 삶을 살도록 요청했는데, 백성들은 가혹하고 무자비한 예레미야의 지적과 경고에 거칠게 반항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사무쳤으나, 거역하는 백성들의 저항과 박해로 인해 예레미야의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치고 망가져 갔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울지 않을 수 없었고, 절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눈물의 예언자”라는 별명은 이런 이유로 붙은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함께 읽은 구약성서의 본문은 예레미야가 주님으로부터 소명을 받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묻습니다. “예레미야야, 너는 무엇을 보고 있느냐?” 예레미야가 대답합니다. “저는 살구나무 가지를 보고 있습니다.” “네가 바로 보았다. 내가 한 말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내가 지켜 보고 있다.” 알쏭달쏭한 이 대화는 히브리어를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살구나무는 히브리어로 “샤케드”(שָׁקֵד)입니다. 우리말로 살구나무라고 번역했지만, 사실은 아몬드 나무입니다. 그런데 이 아몬드 나무를 뜻하는 샤케드는 잠을 자지 않고 깨어서 지켜본다는 의미의 “쇼케드”(שֹׁקֵד)와 발음이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소명을 내리시면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전해질 말씀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해 주시면서 아몬드 나무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몬드 나무는 겨울철의 우기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꽃을 피웁니다. 덥고 건조한 날씨에 앙상하게 가지만 남았다가, 우기가 시작되면 다른 나무들은 겨울잠에 빠져들지만, 유독 아몬드 나무만은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면서 깨어납니다. 그래서 겨울에도 잠을 자지 않고 지켜보는 나무로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은 샤케드와 쇼케드라는 말놀이를 통해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기까지 지켜보겠다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보여주신 두 번째 환상은 물이 끓어 넘치는 솥이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닥쳐올 엄청난 재앙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활동했던 시기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주전 587년 유다가 멸망하기 직전 수십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활동했습니다. 다섯 명의 왕이 유다를 차례로 다스리던 시절을 모두 겪었는데, 이때는 여러 가지로 엄청난 정치 변혁의 폭풍이 몰아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사야가 조심하라고 그렇게 간절히 경고했던 나라,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앗시리아 제국의 세력이 이제는 무너져 내렸지만, 잔인하고 가혹하기로는 앗시리아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새 강대국 바벨론이 부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활동 말기에 결국 바빌론에 의해 예루살렘은 쑥대밭이 되고, 많은 유다 백성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예언자답게 이런 모든 정치적 상황들을 신앙의 눈을 가지고 읽어 냅니다. 이런 재앙이 내린 이유는 유다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서 다른 신들에게 향을 피우고, 손으로 우상을 만들어서 그것들을 숭배하는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백성들에게 전해야 했습니다. 제대로 망해야 다시 세울 수 있다고, 그러니 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오히려 이번에 폭삭 망해야 한다고 말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런 예레미야의 예언은 수많은 반대와 저항에 부딪힙니다. 그 누구도 망한다는 이야기를 좋아할 리가 없고, 망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재난과 고통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너는 무엇을 보고 있느냐?]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저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하셨던 두 번의 질문이 계속 마음에 꽂혔습니다. “너는 무엇을 보고 있느냐?” 여러분은 요즘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뉴스만 틀면 들려 오는 소식들에서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이 시대를 어떻게 읽으며, 또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신약의 말씀도 맥을 같이 합니다. 주님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소나기가 오겠다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그런데 그대로 된다. 또 남풍이 불면, 날이 덥겠다고 너희는 말한다. 그런데 그대로 된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왜, 이때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과연 우리는 이때를 어떻게 분간해야 할까요?
2022년이 석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곧 2023년이 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흘러가는 이 시대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긍정적으로 보십니까? 아니면 부정적으로 보십니까? 우리들의 미래는 낙관적일까요? 아니면 비관적일까요? 제가 안식년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저를 만나는 많은 이들이 제게 좋겠다고 하면서 부러움을 표시합니다. 그러나 사실 저는 이 시대를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김칫국 없이 고구마만 잔뜩 먹은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매우 복잡한 심경이 됩니다. 제 마음이 이런 것은 지금의 시대가 총체적으로 위기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바탕을 이루는 지구가 몸살을 앓고,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사회가 어지러우며, 자연과 사회를 성찰하게 하는 영적인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설교할 때마다 말씀드리지만 지금 우리는 정말 심각한 기후 비상사태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 정부협의체(IPCC)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이후 파괴적인 홍수와 폭풍으로 인해 매년 2000만 명 이상이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1961년 이후 아프리카의 작물 생산성은 3분의 1로 줄어들었고,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적어도 1년에 한 달 이상 물 불안정에 직면해 있습니다. 현재 33억에서 36억의 인구가 기후 재앙에 매우 취약한 국가에 살고 있고, 이들 국가는 기후 재앙으로 인한 사망률이 북반구의 잘사는 나라들에 비해 무려 15배나 높습니다. 기후 비상사태에 대한 전망은 너무나 불확실성이 큰데, 극단적으로는 2030년에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재앙에 휩싸일 것(WMO[세계 기상 기구] 보고, 2026년까지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48%, 2015년에는 0%)이라는 전망에서부터 2100년이 되면 결국 파멸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전부가 다 비관적입니다.(WMO[세계 기상 기구] 보고, 2021 이산화 탄소 농도, 해수 온도, 해수면 높이, 해양 산성도 최고치 참조)
이 파국적 위기를 조금이라도 늦추고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전 세계의 정부와 기업을 중심으로 전격적으로 생태적 회심을 하고 탄소중립에 전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지난 9월 14일 프랑스 언론인들은 “환경 및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저널리즘 헌장”을 발표했습니다. 기후 위기를 한정된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횡적인 방식으로 연결해서 다룰 것, 대중에게 엄밀하게 검증된 관련 지식을 제공할 것, 정확한 사실 전달을 위해 사용된 어휘와 이미지를 확인할 것, 환경 및 기후 문제 대응 방안을 철저히 조사하고 이미 제시된 해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것, 언론 스스로 저탄소 저널리즘을 실천할 것 등을 비롯해 13가지 선언을 담고 있는데, 이런 언론들의 노력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인류의 전방위적 노력이 요청됩니다.
지금 뜻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매월 첫째 주일 오후 4시에 성공회 대성당 앞에 모여서 “기후 위기 걷기 기도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를 깨우는 하나의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저도 지난주에 참석했고, 앞으로 우리 생명사랑교회의 주요 활동으로 지속되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로 저를 답답하게 하는 것은 현 정부의 무능과 오만과 실책입니다. 뉴스를 챙겨 보시는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하루가 멀다 않고 사건들이 터지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탄생부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고 용산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겼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천문학적 돈을 낭비하고 있는데, 이를 메꾸려고 민생 관련 예산은 줄줄이 줄이고 있습니다. 노인 일자리 예산을 삭감하여 6만 1천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고, 지역 화폐도 전액 삭감하여 지방 소상공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게 하고, 군장병들의 복지 예산도 삭감하여 청년들의 사기를 꺾어 놓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세금을 줄여 주었습니다. 정부 요직에 전문가를 등용하지 않고 자기 수하들인 검찰들을 전부 깔아놓았기에 잦은 실수가 있는데, 사과는커녕 언론과 국민을 겁박합니다. 지지율이 폭락할 때마다 전 정부 탓을 하고 보복 수사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합니다. 지금 우리 정부의 외교와 국가 안보와 경제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습니다. 국군의 날 행사에 가서 “부대 열중 쉬어”를 잊어버리고, 아나바다가 뭔지도 모르면서 보좌진들이 제공하는 자료들도 제대로 보지 않는 듯 합니다. 이런 태도와 무성의함 속에서 강릉에서는 현무 2 미사일이 비정상으로 비행하여 다시 떨어지는 위험천만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공정과 상식을 내세웠지만 비속어를 쓰는 대통령과 정부의 계속되는 거짓말, 무지와 무능, 오만함과 천박함이 날이 갈수록 드러나고 있습니다. 손바닥에 “임금 왕(王)”자를 새기고 선거를 치를 때 어느 정도 눈치는 챘지만 ‘정말 이 정도일 줄이야’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날들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서 생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고, 힘들고 부끄러운 건 오로지 국민 몫입니다.
지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이 길게 늘어지고, 코로나 이후에 전 세계적인 물가 상승과 금리 상승, 환율의 폭등이 지속되는 데다가, 기후 재앙으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는데, 자국 이기주의만이 판치는 국제 정세에서 지금 우리는 계속 무시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연속 6개월째 우리나라의 무역수지 적자가 되고 있고, 지금 당장의 우리 삶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이 무척 답답합니다. 나라 꼴이 어떻게 될지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전국 곳곳에서 시민들이 다시 촛불을 들고 있고, 10월 22일 토요일에는 전국의 시민들이 광화문으로 모인다던데, 저도 한번 나가볼 생각입니다.
자연과 사회가 모두 어려운 이때 저의 마음을 또 어렵게 하는 것은 한국 개신교의 상황입니다. 교회가 시대의 변화에 역행하는 일들을 자행하고,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 이후 한국 교인들의 얕은 신앙은 바닥을 드러냈고, 떠돌이 신자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예수님을 믿지만 교회에는 나가지 않겠다는 이들도 많아졌습니다. 한편 현대인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으로 인해 교회에서의 공동체적인 활동도 약화 되고 있습니다. 갑자기 다가온 4차 산업혁명과 플랫폼 기반의 세계가 교회로 하여금 온라인과 오프라인 목회를 동시에 해낼 것을 요청하지만, 이에 준비된 교회는 많지 않습니다. 기술적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새로운 변화에 잘 대응하는 일군이 부족한 것도 문제이지만, 새로운 변화를 이해하고 이끌어갈 신학도 부재한 상황입니다. 우리 생명 사랑 교회는 나름 선방을 했지만, 교계 전체로 보면 한국 교회의 현실은 여전히 답답하기만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대세가 이러하니 한 개인이 뭘 할 수 있냐면서 그냥 두 손 두 발 놓아두고 가만히 있어야 할까요?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작고 약한 교회이니 그저 구경꾼으로만 남아 있어야 할까요? 우리가 예레미야서를 읽으면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예루살렘이 망하는 상황에서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바벨론에 의해 유다가 폭삭 망하리라는 것을! 그것을 알리는 예언자 예레미야가 어떤 고통과 고난을 겪으리라는 것을!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비관적 말씀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그들이 너에게 맞서서 덤벼들겠지만, 너를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보호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나 주의 말이다.”
당면한 과제를 잘 풀어가려면 그 과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정직하게 대면해야 합니다.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가거나 거짓말로 대충 때우려고 하면 더더욱 문제는 심각하게 꼬이게 되고, 완전히 얽혀버린 이후에는 정말로 극복할 수 없게 됩니다. 문제가 어디로부터 어떻게 시작되고, 그래서 지금의 상태가 어느 정도로 나쁜지를 안다면 바로 거기로부터 그 문제를 풀어가고 회복할 수 있는 길이 보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그것을 시키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에서 저에게 안식년 기간을 주신 동안 저는 우리 사회와 교계와 교단의 현실에 대해 폭넓게 살필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교회 목회는 쉬었지만 노회와 총회 목회는 더 많이 하였고, 온라인 교우들과 동료 선후배 목회자들, 신학생들을 만나면서 지금 우리가 처한 위기에 대해 분석할 수 있었습니다. 산적한 문제들과 과제들을 저 혼자서 다 풀어낼 수는 없지만, 우리 생명사랑교회의 목회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우리가 할 사역들은 무엇인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진단 속에서 11월 첫 주에 2023년 목회 계획을 가지고 공청회를 할 것입니다. 우리 교우들 모두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하면 됩니다. 우리가 할 일을 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를 보호하시며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 누구도 우리를 이길 수 없고, 그 어떤 역경도 이겨내리라 생각합니다.
바벨론의 침략과 유다 왕국의 멸망이라는 엄청난 재앙 앞에서 하나님의 심판 예언을 해야 했던 예레미야 또한 비관적 전망만을 얘기한 것은 아닙니다. 예레미야서 31장 2절에 보면 전쟁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역경과 고난을 뚫고 남은 자들은 다시 일어설 것이고, 소구를 들고 흥에 겨워 춤을 추며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고국으로 돌아올 때 너무 기쁜 나머지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고, 주님께서는 이들을 평탄한 길과 물이 많은 시냇가로 인도하실 것이라 말합니다. 유다는 다시 정의의 보금자리가 되고, 거룩한 산 예루살렘은 주님의 복을 받게 됩니다. 지친 이들은 새 힘을 얻고, 굶주려 허약해진 이들은 배부르게 먹을 것입니다. 그때가 오면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었기 때문에, 자식들의 이가 시게 되었다는 말은 들리지 않을 것이며, 이제 하나님은 모든 이들의 가슴 속에 하나님의 율법을 심어 주고 새로운 언약을 세워서 그 누구도 하나님의 백성에서 소외되는 자가 없게 될 것입니다.
저는 작금의 우리 시대가 매우 어둡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어둠의 터널 끝에는 밝은 빛이 비친다는 것도 압니다. 문제는 이 어둠의 터널을 뚫고 갈 굳센 신앙의 용기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만을 믿고 한 걸음 내딛는 자에게는 하늘의 지혜가 쏟아져 내릴 것입니다. 주님께서 베푸시는 지혜로 문제를 해결한 이는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으며, 세상의 어떤 강요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무엇을 보고 있느냐?” “겨울에도 깨어 있는 아몬드 나무처럼 우리는 깨어 있어서 주님의 말씀을 봅니다. 두 눈 부릅뜨고 주님께서 펼쳐가시는 놀라운 일들을 봅니다. 여기저기 주님께서 남겨 놓으신 이들이 활약하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사건에서, 모든 것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숨결을 느낍니다.” 주님의 물음에 모두 이렇게 답변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빕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끓는 물이 넘쳐흐르는 재앙을 예견하기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지도자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교계 현실에 답답함도 느낍니다. 그러나 위기는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불러일으키고, 모험하는 자에게 값진 보물과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도 잘 압니다. 두손 두발 늘어뜨리고 나 몰라라 하지 않게 하시고, 갈 길을 보여주시는 주님의 손가락에 집중하여 우리가 할 일들을 하게 하여 주소서.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며 도약하기를 기대하는 생명 사랑 신앙 공동체에 함께 하여 주소서. 곁에서 우리를 이끌어 주소서. 우리가 나아가겠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하나 되게 하시고, 이전과 같은 열정으로 헌신하게 하여 주소서. 전국의 성도들을 불러 모아 주시고, 하늘의 지혜를 가지고 각자 삶의 자리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힘을 주소서. 주님께서 맡기신 사역을 잘 감당하리라 다짐하여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감사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우리가 주님을 송축하고, 우리의 입술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지난 세월 주님께서는 우리의 겪는 어려움들을 이겨내게 하시고, 우리가 때로 주님께 소홀할 때에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새 시대에 적응하며 또 다른 내일을 다시 꿈꾸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10주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도약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변화된 시공간 속에서 하나님 나라 선교를 잘 감당하게 하여 주소서. 오늘도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삶과 예물을 드립니다. 꼭 필요한 곳에 써 주소서. 일용할 양식이 필요한 곳에, 생명을 살리고 사랑을 넘치게 하는 일에, 복음의 소식을 전하는 곳에 쓰이게 하소서. 새 시대를 열어가는 생명사랑교회의 모든 사역을 통하여 우리 믿음이 굳세어지고 더욱 더 주님과 가까워지게 하여 주소서. 모든 것에 감사하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어떤 역경 속에서도 주님만을 바라보십시오. 한눈팔지 마십시오. 세속적인 것들에 마음을 주지 마십시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올곧게 걸어가십시오.
* 축도
하늘의 따뜻한 바람이 여러분의 가정 위로 부드럽게 불기를, 거룩한 영이 여러분의 집에 들어가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여러분이 가는 길마다 여러분들의 어깨 위로 늘 무지개가 뜨기를 빕니다. 이제는 지난 10년의 세월을 지켜 주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은총이 주님만을 바라보고 오직 한길 걸어가는 생명사랑 모든 믿음의 지체들 위에, 함께 예배하고 선교하는 전국의 모든 성도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길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