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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목사] 세번의 질문과 기회 – 2024년 12월 1일
창세기 22:15-18; 요한복음 21:15-17
방금 교독한 요한복음서 21장 15-17절은 설교나 말씀 묵상을 통해 자주 들었던 본문입니다. 부활 후 예수님께서 제자인 요한의 아들 시몬, 베드로에게 던졌던 세 개의 질문입니다. 언뜻 읽기에 세 질문은 똑 같은 질문으로 생각되지만, 세 번에 걸칠 예수님의 질문은 조금씩 다릅니다.
첫 번째 질문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것들보다(τούτων, 토우톤) 나를 더(πλέον, 플레온) 사랑(ἀγαπᾷς με, 아가파스 메)하느냐?”입니다. 여기서 동사는 아카페 사랑이고, 비교급을 사용했습니다. 새번역 한글성경은 πλέον τούτων(플레온 토우톤)을 “이사람들보다”로 번역했지만 비교되는 대상은 본문에서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것들에 해당하는 것이 주변에 있는 배, 그물망 등의 소유물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고 보는 주석가들도 많습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소유물이든 예수님을 향한 상대적인 사랑을 묻는 질문으로 풀이하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ἀγαπᾷς με, 아가파스 메)?”입니다. 동사는 같은 아가페이지만 비교급이 빠졌습니다. 예수를 향한 절대적인 아가페 사랑을 묻습니다.
세 번째 질문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φιλεῖς με, 필레이스 메)?”입니다. 여기서의 차이는 첫 번째와 달리 비교급이 빠졌고, 두 번째와 달리 동사가 아가페 사랑에서 필레오 사랑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세 번에 걸친 예수님의 질문이 달랐지만, 17절에 따르면 베드로는 예수님이 세 번 모두 동일하게 필레오 사랑하느냐고 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때에 베드로는, [예수께서] ‘네가 나를 사랑(φιλεῖς, 필레이스)하느냐?’하고 세 번이나 물으시므로, 불안해졌다 (요한 21:17) |
제가 요즘 <Listening, 경청>이라는 소책자를 번역하고 있는데, 이 책은 내가 듣고 싶은 데로 듣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말하는 것을 듣는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요한복음 21장 15-17절의 대화에서도 경청의 중요성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세 번에 걸친 질문은 베드로가 세 번에 걸쳐 예수님을 부인했던 인생의 트라우마를 치유해주시려는 배려였다고 많은 설교자들이 설명합니다. 그러한 연결점은 예수님이 부활 후 베드로를 아끼시는 사랑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익합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두 가지에 관심을 기울여봅니다. 첫 번째, 질문에 따라 다른 소명의 크기입니다.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보면, 예수님은 이것들보다 나를 아가페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는 데, 이 질문은 예수님에 대한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사랑보다 너가 나를 위해 친구, 배, 고기 등 소유를 버릴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그러한 상대적인 아가페 사랑에 “네”라고 대답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내 어린 양 떼(μου ἀρνία, 무 아르니아)을 먹이라(Βόσκε, 보스케)”는 소명을 주십니다.
두 번째 소유물과 비교없이 그냥 나를 아가페 사랑하느냐?는 질문에서는 예수님은 내 양 떼(μου πρόβατά, 무 프로바타)를 돌보라(Ποίμαινε, 포이마이네)는 소명을 주십니다. 사랑의 성숙과 함께 소명의 범위와 강도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세 번째 질문에서 예수님은 페레오 사랑을 물으십니다. 아가페 사랑이 헌신적인 사랑을 말하고, 필레오 사랑은 형제적 사랑을 말한다는 구분에 근거하면 필레오 사랑으로 고백하는 자에게 내 양 떼(μου πρόβατά, 무 프로바타)를 먹이라(Βόσκε, 보스케)는 소명을 주십니다. 소명의 범위가 어린양에서 성장한 양으로, 소명의 강도가 두번째 돌보라는 소명에서 먹이라는 소명으로 조정되고 있음을 봅니다. 베드로가 예수께서 물으실 때, 그 질문을 경청했더라면 그에게 주신 소명의 크기가 달라지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소명을 알려 주십니다. 그 때 내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리에 귀기울여 경청하면 애초에 주님께서 주신 크기 만큼의 소명을 감당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주목하는 다른 하나는, 처음 두 번에 걸친 질문에서 베드로가 아가페 사랑을 고백하지 못함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질문을 아가페 사랑에서 필레오 사랑으로 동사를 바꾸시는 따뜻한 배려의 모습입니다. 아울러 그에게 적절한 소명의 범위와 강도도 조율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에게 적절한 소명의 범위와 소명을 우리 신앙의 성숙도를 살피시며 맡겨주시는 분입니다. 간혹 우리가 하나님의 목소리를 잘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예수님이 우리에게 맞는 맞춤옷으로 바꿔주시는 세심한 분이시니 큰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그러나 때로는 바꿀 수 없는 소명을 맡게 되는 때도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그 소명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도록 기다리시며 또 다른 기회를 주십니다. 오늘의 구약 본문인 창세기 22장의 아브라함은 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소명과 축복을 제대로 경청하지 못함으로써 아픔의 경험을 하고 난 뒤에야 소명을 성취하는 모습을 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일곱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요, 그 중의 하나 키가 크고요 나머지는 작대요~”라고 흥얼거리며 각인되었다시피 한 아브라함에게 붙여진 대명사는 “믿음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인으로 인정받는 영광을 얻은 믿음의 조상이 되기까지 그에게는 세 번의 기회 혹은 위기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신약성서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믿음의 표본으로 극찬하는 대목이 두 곳에 나옵니다. 로마서 4장 3절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에 관해 바울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여기셨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인용한 구약성서는 창세기 15장 6절입니다. 반면, 야고보서 2장 21절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고서 행함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고 강조하면서 창세기 22장을 인용합니다. 바울과 야고보서 저자의 평가가 다른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땅과 후손의 약속을 받아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고, 의롭다 칭함을 받는 과정에서 세 번의 기회를 얻는데, 두 저자가 주목한 지점이 다르기 때문에 평가가 엇갈려 보이는 것입니다. 세 번의 기회란, 바울과 야고보가 인용한 구약의 두 본문, 창세기 15장과 22장과 여러분도 잘 아는 창세기 12장 1-3절에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에 있어서 대전환점이 되었던 첫 번째 기회는 12장 1-3절에 나옵니다.
1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친척]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3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
아브람의 소명은 다른 소명기사(출 3장; 삿 6장; 렘 1장)와 달리 소명받는 자의 거부가 나오지 않습니다. 소명받는 사람이 자신의 부족함을 들어 재차 거부하는 패턴이 소명기사의 전형적인 양식이고 모세는 네 번이나 거절합니다. 그러나 다른 소명기사와 대조적으로, 아브람은 아무런 거절 없이 즉각 부르심에 응답합니다. 이런 아브람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그대로 실천한 믿음의 조상이었을까? 바로 이어지는 4-5절은 이를 의심하게 합니다.
4 아브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길을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나이는 일흔다섯이었다. 5 아브람은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재산과 거기에서 얻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길을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이르렀다. |
4절은 아브람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고 하는 데, 5절은 주님께서 “친천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말을 어기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엄격히 말하면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경청하지 않았거나, 온전히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제대로 경청하지 못한 결과, 모든 민족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소명의 성취는 지연됩니다.
두 번째 기회는 창세기 15장에서의 후손에 대한 약속을 받는 현장입니다.
4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 아이는 너의 상속자가 아니다. 너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이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5 주님께서 아브람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가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그리고는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자손이 저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 6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