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성탄절/한문덕 목사] 어둠 속의 빛 -2021년 12월 25일
요한복음서 1장 1-18절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작년 성탄절에는 대면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코로나가 아직까지도 심각하지만 그래도 올해는 대면 예배도 가능하고, 성가대가 마스크를 쓰고 찬양도 할 수 있고, 세례식도 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오늘은 아기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코로나 시대 성탄절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코로나와 함께 한 시간들이 쌓여가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코로나 대처법을 습득하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기본적인 방역수칙을 잘 지킬 뿐만 아니라, 감염이나 전파의 위험이 있을 때마다 선별 검사소를 방문하고, 검사 결과를 지켜보며 늘 조심합니다. 코로나 전파의 위협은 항상 존재하지만, 조금만 주의하면 큰 피해 없이 잘 지낼 수 있습니다. 물론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 사회적 약자들의 어려움은 매우 절박한 것이고, 이 부분은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경우는 인구가 1300만이나 되는 도시 시안을 완전 봉쇄했습니다. 전 세계는 대체로 중국처럼 상점이나 기업, 공장을 정지하는 셧다운(shut-down)이나 사회 전체의 폐쇄를 뜻하는 락다운(lock-down)을 하였지만, 우리는 코로나 발생부터 지금까지 일상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대처하고 있습니다.
K-방역과 K-문화의 전 세계적 유행에 따라 최근 2-3년 사이에 한국의 위상은 순식간에 상승했고 이것이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한껏 부풀어 올랐다가 그냥 꺼지는 거품이 아닙니다. 지난 세월 우리 국민 전체의 노력과 능력으로 이뤄 낸 성과이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는 매우 밝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몇 가지 과제만 풀어간다면 우리는 분명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남북의 교류입니다. 종전협정과 평화협정을 통해 다시는 전쟁의 위험이 없다는 것을 전 세계에 공표하고 이후 남북이 교류할 수 있다면 우리는 평화 속에서 확실하게 번영의 미래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기후 위기에 대한 적극적 대처입니다. 내년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지 간에 차기 정부는 기후 위기에 대한 정확하고 신속한 대응을 해야 합니다. 환경 관련 문제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익과도 매우 밀접하게 연결될 것입니다. 세 번째는 내부적으로 풀어야 할 가장 심각한 과제인데, 바로 언론의 개혁입니다. 자본과 권력에 기대고, 자신들의 사적 이익만을 생각하는 기존의 대형 언론사들의 편향된 기사들과 각종 1인 매체나 유튜브의 거짓 뉴스와 가십거리 기사들이 국민의 판단을 흐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국민의 안전이나 삶에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발목을 붙잡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에 대한 우리 국민 전체의 비판적 안목이 높아져야 되는 부분이라 단기간 내에 이루기가 쉽지 않지만,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하여 자신들만의 이익을 챙기려는 기득권 세력들의 권력을 해체하여 온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코로나 시대에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심각한 양극화를 해결하고, 불평등을 조장하는 불의한 세력에 맞서 평등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주일에 설교했던 우리 교회의 선교 목회도 이러한 과제에 대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매우 실질적으로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한창 임상 단계에 있는 코로나 치료제들이 전 인류에게 사용될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코로나는 분명히 정복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코로나를 통해 깨달은 것을 가지고, 코로나와 함께 사는 세상, 그리고 코로나 이후에 몰아닥칠 세상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처럼 지금의 코로나 상황은 분명 어둠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빛이 숨겨져 있고, 그것을 발견하는 이들은 어둠도 어둠만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비치는 빛]
2,000년 전에도 어둠 속에서 비치는 빛을 발견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많은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오히려 거부하였습니다. 성탄절은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누게 합니다. 말씀이 육체가 된 사건, 하늘의 은총이 사람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그것을 모르고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성탄절은 결단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여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사람의 혈통을 고집하며 세상의 육정에 사로잡혀 살 것인가?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요한복음서의 말씀은 출애굽기 33장 모세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 이야기를 떠오르게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가야 했습니다. 율법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오른 모세는 주님께 아뢰어 자신에게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간구하고, 주님의 영광을 자신에게 보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모세는 야훼 하나님에 대해서 깊이 알고 싶었고, 주님이 품으신 뜻과 계획 모두를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때 야훼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요구에 응답하셨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고, 바위틈에서 야훼 하나님의 등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등판만 본 모세의 얼굴에서도 빛이 났고, 모세는 야훼 하나님께서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노하기를 더디 하고, 한결같은 사랑과 진실이 충만한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율법을 받으러 갔다가 하나님의 뒷모습만 살짝 본 모세가 이와 같았다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전한 하나님의 본성이 드러납니다. 태초에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지혜의 말씀이 사람에게 빛이 되어 내려옵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 빛을 증언하였고, 그 빛을 수용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외아들의 영광 속에서 충만한 은혜와 진리를 얻습니다. 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지만 바로 독생자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주시는 그 빛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고, 모든 만물을 창조한 빛이었으니, 그와 함께라면 죽음도 극복하고 좌절과 허무의 순간에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빛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맞아들이는 사람은 어둠 속에서도 빛이 빛나게 됩니다.
[살덩이가 된 말씀]
2,000년 전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요한공동체 교인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요한복음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한 문장으로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을 요약하는데, 사실 이들의 체험은 실로 깊고도 진한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에서 육신이라고 번역된 것은 “싸륵스”(σάρξ)라는 그리스어인데, 이것은 ‘살덩어리’라는 뜻입니다. 바로 바울 사도께서 성령을 따라 사는 삶과 비교하면서 육체에 따라 살지 말라고 할 때 비판하던 그 단어입니다. ‘싸륵스’는 고기 덩어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땅의 것, 허무한 것, 결국은 썩어 없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이스라엘과 고대 근동 사회의 종교 전통에서 살덩어리는 영원하신 하나님 즉 영적 존재로서의 하나님과 정확하게 구별되고 대척점에 서 있는 단어입니다.
한편 “말씀”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로고스’(λόγος)는 그리스 철학에서 이 우주를 창조하고 지탱하는 원리, 인간의 사유능력의 핵심 등으로 사용되었고, 고대 근동에 넓게 퍼져 있던 영지주의 종교 전통에서는 ‘신령스런 지식’(靈知)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구약의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는데 바로 그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성서에 하나님의 지혜와 동일시되었고, 만물을 지어내고 이끌어가는 주체로 표현됩니다.
지금 요한복음서는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두 단어, ‘로고스’와 ‘싸륵스’를 붙여 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덩이가 되셨다는 말은 고대 근동사회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 사상일 뿐만 아니라 비웃음을 사고 조롱거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낮고 천한 것에서 가장 고귀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 거룩한 신성이 물질적 차원으로 내려와서 그들과 함께 거하고 그들을 구원한다는 생각은 그리스-로마 세계의 모든 종교에서 거부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서는 이 사실을 노골적으로 표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는 말씀 중에 우리 가운데 사셨다고 번역된 것의 원뜻은 ‘장막을 넓게 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교만한 인간들은 자신들의 위력을 드러내고, 하나님과 같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늘 높이 바벨탑을 쌓았지만, 하나님은 그 바벨탑을 보시기 위해서 저 하늘에서 내려 오셔야 했고, 또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찾아오셔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거하셨습니다. 이런 유대전통을 이어서 요한복음서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는 곳은 인간 세계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너희가 천시하고 하대하고 멸시하는 살덩어리,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신다.” 이 주장은 엄청난 역설을 품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저 높은 곳을 추구하며, 잘나기를 원하며, 온 세상에 자신의 이름이 드날리기를 원합니다. 따라서 낮은 데 처하기를 싫어하며, 못난 것을 부끄러워하며, 성공한 잘난 이들 앞에서 열등감과 수치심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보고, 거짓 속에서도 진리를 캐낼 줄 알며, 율법 속에서 은혜를 누리고, 실패에서도 희망을 보며, 죽음 속에서도 생명을 얻습니다.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빛을 만나기 위해서는 깊은 어둠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을 알기 위해서는 부패하고 냄새나는 인간, 더럽고 추한 세계의 적나라한 모습을 살펴야 한다. 이 방법 외에는 없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로마가 지배하던 당시 가장 혐오스런 형벌이고 가장 끔찍한 형벌이었던 십자가에 달려 죽은 한 유대인 청년에게서 가장 존귀하신 분의 영광을 볼 수 있다는 요한복음서의 주장에 동의하십니까? 여러분은 무명의 동네, 시골 나사렛의 청년에게서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함을 느낄 수 있습니까?
[은혜와 진리, 그리고 생명의 빛]
우리가 갈릴리 나사렛 목수 청년에게서 충만한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을 볼 수 있다면, 지금 코로나 19의 깊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코로나 속 성탄절을 보내며 저는 귀한 빛 조각들 몇 개를 생각합니다. 첫째는 자기 자신의 내면입니다. 우리들 마음속입니다. 코로나로 많은 외부 일정들과 사람들과의 만남이 취소되었을 때, 우리가 가질 수 있었던 은총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속을 깊이 들여다 볼 기회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미처 챙기지 못한 삶의 기억들과 흔적들을, 켜켜이 쌓아 두었던 감정의 먼지들을 사뿐히 털어 버리는 시간들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코로나가 왜 아직도 계속 되느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아직도 우리 내면을 살필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답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코로나 속에서 발견한 두 번째 빛의 조각은 바로 가족입니다. 가족 같은 공동체야말로 인류가 지니는 근본 신뢰의 뿌리라는 것입니다. 주님 오신 거룩한 날, 여러분은 어떻게 보내십니까? 예배를 마치고 어떤 시간들을 보내실 계획인가요? 연인은 연인대로, 맘 맞는 친구들은 또 그들대로 모이겠지만, 오늘 저녁은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여러 핑계들로 가지지 못했던 시간들을 다시 한 번 가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셋째 코로나 속에서 발견한 세 번째 빛의 조각은 모든 생명체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인간만 잘살려고 하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우리만 잘 살려고 하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최근에 선진국에서 가난한 나라들에게 유통 기한이 거의 다 된 백신들을 제공해서 수백만의 백신이 쓸모없이 폐기되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가난한 나라들의 형편을 생각하면 최소한 10주 이상은 남겨 놓고 백신을 제공해야 하는데, 강대국들이 생색만 내고 실제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와 행태는 결국 자신들에게 되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코로나 속에서 깨닫게 되는 지혜는 이제는 진실로 지구촌이 사랑하는 한 가족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짜 가족이 되면 부모의 심정이 되어 더 아프고 가난하고 못난 자식에게 마음이 쓰이듯, 더 어렵고 힘든 나라들을 함께 돌보는 지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지금 예배에 함께 하시는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둠은 결코 어둠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어둠은 대낮같이 밝은 빛이 밝아오게 합니다. 그런데 지혜의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둠 속에 감춰있는 빛을 볼 줄 압니다. 코로나로 짙은 어둠이 깔린 세상이지만 우리들은 그 속에서 새로운 빛을 봅니다. 어둔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도 바로 여기에서 그 빛을 보셨을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빛을 봅니다. 그 빛을 간직하고 한해도 잘 마무리 하시고, 새해에도 희망찬 삶을 사시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사랑이신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구원의 하나님! 우리 곁에 계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빛이 되어 주시니 힘이 솟습니다. 주님이 계시니 우리에게는 어둠도 좌절도 낙심도 없습니다. 주님은 빛으로 오셔서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우리에게 나아갈 방향을 가르쳐 주시기에 우리는 죄와 실수를 통해 성장하며, 시험과 잘못을 통해 배우며, 그릇된 행동과 쓰라린 상처 속에서도 성숙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빛이 되어갑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성탄절에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늘에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들에게 평화가 가득합니다. 주님께서 하늘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 이 땅에 사시고, 높고 위대하실 뿐만 아니라 낮고 작아지셨으니 감사합니다. 어둠 속을 뚫고 참 빛으로 우리를 찾아 주시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소망이 되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탄생하신 이 거룩한 날, 주님의 놀라운 은총에 감사하며 우리의 예물을 드립니다. 받아 주시옵소서. 이 예물이 생명사랑 신앙공동체를 통하여 사용될 때 주님! 그 자리에 임하시옵소서. 세계인들을 공포에 빠뜨리는 코로나를 극복하게 해 주시고, 만물을 품어내는 사랑과 정의를 일구시며, 새로운 지혜를 얻게 하소서. 십자가에서 삶 전체를 드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아들 예수를 보내 주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우리의 마음과 몸을 드립니다. 받아 주소서. 돈이 전부가 아님을 기억합니다. 이 예물이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쓰일 때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주님께서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어둠 속에 빛이 비추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 모두 빛을 바라보고 빛 가운데로 걸어갑시다.
*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의 거룩한 친교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보며, 어둔 세상에 빛이 되려는 생명사랑교우들과 이 시간 전국에서 함께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