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희 목사] 조심하여라! – 2024년 11월 17일
마가복음서 13장 1-8절, 히브리서 10장 19-25절
[혼란의 시대]
우리는 다양한 위기와 많은 불안들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세계의 경제와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었고, 수많은 나라들이 그의 말에 따라 앞으로의 길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연결되어 살아가는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음을 우리는 여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 상황 역시 갈등의 연속입니다. 정부와 지도자가 사회의 신뢰를 잃었고, 법과 제도는 편파적으로 행해지고 있으며, 올바른 신념을 가지고 선을 행해야 하는 정치가 자신이 속한 곳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타인을 배척하고, 힘을 과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권력을 가진 자에게 대항하지 못하도록 겁을 주는 행태를 보여줍니다. 이런 안하무인한 태도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기관이 얼마나 야만스러운지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인간의 욕심으로 발생한 기후 위기로 세계 곳곳은 이례적인 재앙들이 닥치고, 여전히 지속되는 전쟁은 가장 연약한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복잡한 사회의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며 살아가야 하는 시대에 여러분의 삶은 어떤가요?
[무너져야 하는 “성전”]
오늘 마가복음서의 본문에서 한 제자는 예루살렘 성전을 보고 감탄합니다. 성전의 겉모습을 보며 그 화려함과 웅장함에 전율을 느낍니다. 그런 제자의 반응에 예수님께서는 조금은 냉소적인 모습을 보이십니다.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이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당시 유대인에게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되었던, 영원히 빛나며 없어지지 않고 지속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 성전이 무너지다니, 그것도 흔적도 없이 말입니다. 정치, 경제, 문화, 종교가 크게 분리되지 않았던 당시 유대 사회에서 성전은 세상 모든 것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런 성전이 무너진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온 세계의 종말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마가복음서가 쓰여진 역사적 시기는 기원후 66~73년에 걸쳐 발생한 유대 전쟁 직후에 쓰여진 것으로, 실제로 이 전쟁으로 인해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 충격과 혼란의 시기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말하는 본문이기도 합니다.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는 이 말씀을 들을 때 당시 예루살렘 성전이 어땠나요. 예수님 당시 성전은 온갖 부정 부패가 만연했습니다. 거룩해야 할 성전이 합법적으로 돈을 바꾸어 주고, 제사에 쓰일 예물을 파는 상점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모습을 보며 만민이 기도해야 할 하나님의 집이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며 호통치시기도 하셨습니다. 제사장들은 제 역할을 하지 않았고, 권력에 빌붙어 백성들의 고혈을 빨고 있었습니다. 성전이 더 이상 성전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그곳은 무너져 버려야 하는 곳이 되고 만 것입니다. 성전은 더 이상 거룩한 곳으로서 하나님과 백성들을 연결시켜주는 곳이 아니라, 권력과 부의 도구로 전락해 버렸고, 정의와 공의가 부재한 곳이 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존의 질서나 제도, 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사회는 혼란을 겪게 됩니다. 신뢰를 잃게 되고, 그것이 깊어지면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지 못할 때, 사회의 안녕보다는 개인의 탐욕, 권력 남용, 부패로 인해 억울한 사건이 많이 발생하게 됩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또한 교회와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잘 뿜어내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자본과 권력으로 더럽혀진 신앙이 우리 안에 존재하지는 않은가 돌아봐야 합니다. 자기 성찰 없는 신앙은 결국 예수님의 말씀처럼 무너져야 하는 성전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속이는 자를 조심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이런 혼란의 상황에서 “누구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혼란의 시기에는 항상 속이는 자가 등장합니다. 사람들을 미혹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고,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흘러가도록 만들고자 합니다. 그들은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게 만들고, 사람들을 동요시키고, 미혹시켜 착각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이런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표징들과 기적들을 행하여 믿는 사람들을 홀릴 것이라고 미리 말씀해 주십니다(22-23). 거짓 선지자들은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으로 지금의 사태가 당장이라도 해결될 것처럼 사람들을 현혹시켜,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들에게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합니다.
방대한 정보가 쏟아지고,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는 우리는 거짓과 참이 섞여 있는 수많은 정보 안에서 옳은 것을 잘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안과 불확실이 닥쳐올수록 빨리 처리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고, 커질 수록 올바른 판단이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눈 앞에 펼쳐진 상황에 따라 일렁이는 우리의 마음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합니다. 한 걸음 물러서 올바르게 볼 수 있는 멈춤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끝까지 견뎌라, 그리고 깨어있으라]
오늘 마가복음서 13장 전체를 읽지는 않았지만, 13장에는 ‘보다’(βλέπω)라는 단어가 다섯번 쓰입니다(2,5,9,23,33). 2절에서 ‘너희가 보느냐?’라는 문장에서는 어떤 물체가 시야에 들어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을 뜻하지만 이 내면에는 단순히 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림과 깨달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4번은 ‘주의하라(βλέπετε)’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단순히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말고, 결단과 행동을 하라는 요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너희가 보고 있는 이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이라는 말과 주의하라는 말씀은 단순히 보는 것, 머무르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현재를 충실히 채워 나가는 움직임이 요청됩니다. 무너져가는 현실에 삼켜지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혼란을 딛고 결단하고 행동하는 믿음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서 13장은 33절에 ‘조심하라’로 시작되어 “깨어있으라(γρηγορεῖτε)”로 이어집니다. 이 말 역시 마음의 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깨어 있다는 말은 ‘자다’라는 말과 반대 개념으로 나타납니다(36). 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것들을 봅니다. 다만 그 보는 것이 우리 마음 속에 머물지 못하고 사라지는 이유는 우리가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 하십니다. “조심하고, 깨어 있어라. 그 때가 언제인지를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종말론적 삶을 말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말론적 삶이란 미래에 초점이 있지 않습니다. 미래를 앞당겨 지금, 여기에서 정신을 차리고 사는 것에 있습니다. 종말론적 삶은 무작정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어디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오히려 매일 매 순간을 이 생의 마지막 삶처럼 사는 것을 뜻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무엇을 볼 것이며, 눈 앞에 갖은 표징과 술수로 우리를 유혹하는 거짓 예언자들에게 속지 않도록 주의하고, 늘 깨어서 현재를 똑바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배자나 승자가 독식하는 편에 서서 애쓰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상생의 삶을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서는 성전 파괴가 끝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을 도모할 것을 말합니다. 마가 공동체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전으로 회귀하지 않았습니다. 성전이기 때문에 지켜져야 한다는 옛 생각은 버리고, 성전이 부패하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뿌리까지 썩어버린 그 패악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들은 새 시대가 올 것을 고대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비록 그 길이 고난의 길이지만 깨어 있어서 끝까지 견디면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가?]
이제 눈에 보였던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은 없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성전이 번듯이 서 있었고, 정치와 종교의 중심 무대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 붕괴 이후를 살았던 마가 공동체에게 성전은 존재하지 않고, 과거의 역사로만 남아 있습니다.
이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하며 살 수 있을지 고민했던 마가공동체는 오늘 마가복음서의 본문이 말해주듯이 로마의 지배체제와 마찬가지로 예루살렘 성전체제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부패한 체제였기 때문에 사라져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공동체 스스로가 성전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성전이 되어 능동적으로 하나님을 자신 안에 모시고 살 것을 요구합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어떤 매개물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신 예수님의 뜻을 따릅니다.
히브리서의 본문은 그 동력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오늘 함께 살펴 본 히브리서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분은 신실하시니, 우리는 흔들리지 말고, 우리가 고백하는 그 소망을 굳게 지키고, 서로 마음을 써서 사랑과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자고 말합니다. 즉, 믿음, 소망,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가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지성소는 1년에 하루, 속죄의 날에, 그것도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이제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위대한 연결고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통하여 새로운 삶의 길을 걷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스스로 희생을 자처하시고 사랑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가라고 말합니다.
참된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희생을 통해서 악에서 정결케 된 양심입니다. 그런 양심을 외면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물로 씻겨진 몸, 즉 세례 받은 신자의 신분이기도 합니다. “양심”은 좁은 의미의 죄책감 혹은 죄의식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자각하는 능력, 혹은 마음을 상태까지 말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죄책감에서 자유롭고 주체적인 자의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가진 능력을 믿는 사람은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일어나는 실제적이 삶의 변화가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또한 우리를 향해 흔들리지 말고 우리가 고백하는 소망을 굳게 지키라고 말합니다. 학자들은 히브리서가 60대 초 로마의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쓰여진 것으로 추정하고 그 때는 클라우디우스 때의 박해를 경험한 후, 네로의 박해가 시작되기 전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합니다. 히브리서의 저술 목적은 당시 사람들이 다시 이전 신앙체계와 생활방식인 유대교로 복귀하지 말도록 경계해야함을 말하고,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저버리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신실하게 살라고 권면합니다.
확고한 믿음과 흔들리지 않는 소망을 가졌다면 이제 더욱 열심히 실행해야 할 것은 사랑과 선한 행동을 실천하는 것과 모임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그날이 가까워 오는 것을 보는 만큼 더 중요해 집니다.
히브리서가 이야기하는 믿음, 소망, 사랑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실천하는 데 중요한 힘이 됩니다. 오늘날은 신뢰하기 참 힘든 시대입니다. 이유불문하고 자기애에 취해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자본주의의 노예처럼 살아가고, 삶에 감사할 줄 모릅니다. 정이 없고, 누군가를 비방하며 나를 치켜 세우고, 인내하거나 절제하지 못하고 난폭합니다. 그런 사회이기에 히브리서의 요청은 우리에게 더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사랑과 선한 행동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자극시켜 흘러나오게 할 것인가? 서로에 대해 무관심한 사회에서, 이웃의 고통이 외면되는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게 할 것인가? 개인이 중요한 사회에서 그렇지만 그만큼 외로움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함께 모여 어울리고,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작은 친절과 배려의 몸짓을 보여줘서 어떻게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이 물음들을 붙잡고 나가야할 것입니다.
혼란의 시대에 마가복음서 공동체와 히브리서의 서신을 받은 공동체는 오직 예수를 붙잡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시대에 낡은 정신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새로 제시된 삶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혼란이 지나 하나님이 통치하는 시대를 고대하며 현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거짓을 일삼는 자들의 속삭임을 조심하십시오. 그렇다고 허무에 빠지지도 마십시오. 시대를 잘 분별하여, 여러분의 일렁이는 마음을 잘 붙잡고 옳은 선택을 하십시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를 이 자리에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버려야 할, 겉만 화려한 성전은 무엇인지요? 그 어리석음에서 우리를 건져주십시오. 거센 폭풍 같은 우리의 삶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고, 우리를 속이며 유혹하는 이들의 거짓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신중하게 생각하고 조심히 행동하게 하소서. 그렇지만 악에는 단호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 길을 함께 걸어가는 믿음의 동지들이 여기 있습니다. 서로 마음을 써서 사랑과 선한 일을 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