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한세욱 목사] 다시 듣는 토라(Torah) – 2022년 5월 8일 어버이주일

신명기 6:1-15

[어버이주일을 맞이하며]

  5월 5일은 어린이날이고 8일은 어버이날입니다. 이에 우리 교단은 5월 첫 주일은 어린이주일로 두 번째 주일은 어버이주일로 지키면서 5월 한 달을 가정의 달로 지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가 정한 성서일과를 잠시 중단하고 우리의 신앙과 가정에 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잠시 잊고 지나갈 수 있는데, 오늘은 매우 중요한 절기이기도 합니다. 맞추시는 분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네, 바로 한문덕 목사님 안식년 둘째 주일입니다.

  원래 굉장히 굉장하고 대단히 대단한 설교를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한문덕 목사님이 안 계신 우리 교회의 강단을 지킨다고 생각하니 무척이나 떨려옵니다. 교우여러분께서 제 떨리는 마음을 잘 잡아 주시리라 굳게 믿으며 저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함께 나눌 하나님의 말씀은 신명기서입니다. 모세 오경의 마지막 책인 신명기의 뜻을 아시나요?

  히브리성서는 책의 첫 단어나 첫 문장을 그 책의 이름으로 삼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신명기는 <엘레 하드바림>(이것은 말씀이다)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구약성서의 헬라어 번역인 칠십인역에서는 책 내용의 중심 사상이나 중심 단어를 책의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신명기를 <토이테로노미온>(두 번째 율법, 반복된 율법)이라 불렀습니다. 우리말 성서는 칠십인역의 전통에 따라 ‘거듭 신, 명할 명, 기록할 기’를 써서 ‘다시 듣는 율법(토라)’, 신명기(申命記)라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서 신명기가 가진 뜻을 안다면, 책의 내용을 자연스레 유추해 볼 수 있게 됩니다. 신명기의 주된 내용은 모세가 모압평지에서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출애굽-광야40년을 회고하며, 약속의 땅에서 지켜야 할 율법을 재해석해 주는 고별설교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광야40년을 지나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지난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우리를 고통과 절망에 빠지게 했던 코로나 팬데믹 종식이라는 희망찬 미래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의 의미를 나누고자 합니다.

[코로나19와 한국사회]

  지난 4월 15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국내 코로나19 발생 2년 3개월 만에 최고 수준의 격리 의무가 부여되는 1급 감염병에서 2급 감염병으로 전환하는 등, 일상의료체계 회복을 선언하며 ‘포스트 오미크론’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중대본의 예측과 정부의 계획대로 오미크론 유행이 안정화되면, 본격적인 일상의 회복, 엔데믹으로 가는 첫걸음을 걷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코로나 종식이라는 희망을 눈앞에 그리고 있지만, 지난 2년 4개월의 시간은 우리에게 일상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고 그 어떤 전망도 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견디기 힘든 시련을 주었습니다. 또한 코로나19는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다양한 사회적 위기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내게 하였습니다.

  2020년 1월 20일, 국내 첫 확진환자가 발생하며 바이러스로 인한 재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2월 17일, 신천지 신도인 슈퍼 전파자가 확인되며 한국교회는 큰 위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종교적 열광주의로 무장한 이들의 광기를 보았고, 애국이란 이름의 사이비-극우 개신교의 광풍이 몰아쳤습니다.

  그 해, 6월부터 8월까지 이어진 50일이 넘는 유례없는 장마는 수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남기며 바이러스의 공포와 더불어 가이아의 역습, 기후 위기를 실감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그 어느 때보다 공공의료 정책이 필요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의사들이 보인 집단행동과 ‘위기가 곧 기회’라는 명제를 증명이라도 하듯 나타난 부동산 투기, 코인을 비롯한 각종 투기 열풍은 공동체성을 잃어버린 극단적 이기주의의 민낯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많은 이들은 직장을 잃고, 대다수 자영업자는 임대료를 비롯한 막대한 영업손실로 인해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을 하루하루 견뎌야 했습니다.

  이 밖에 우리가 잘 알지 못하지만, 우리 사회의 경계 밖에 있는 노숙자, 불법체류 이주노동자,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은 더욱 사회적 안전망 밖으로 밀려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양극화된 한국교회의 그늘에서 수많은 교회는 아직도 재난을 맨몸으로 견뎌내고 있습니다. 번영신학에 의지해 맘몬을 따르는 소수의 몰지각한 교회와 달리, 예수님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헌신해 온 작은 교회들이 겪는 재정적, 신앙적 고난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러한 교회의 성도들과 목회자들에게 코로나19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힘겹게 코로나19를 견뎌낸 모든 이들과 전 지구적 재난 앞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 되어 주었던 이들에게 감사드리며, 주님의 따듯한 위로가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쉐마]

  “이스라엘은 들으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주님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당신들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언제든지 가르치십시오. 또 당신들은 그것을 손에 매어 표로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으십시오.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서 붙이십시오.”

  지금 읽어드린 신명기 6장 4절에서 9절 말씀을 유대교 전통에서는 ‘쉐마’라고 부르며, 지금도 매일 기도문으로 낭송하고 있습니다. ‘쉐마’는 ‘들으라’의 히브리어입니다.

  ‘쉐마’는 이집트의 모든 신들을 물리치고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켜준 사건을 기억하고, 바로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불러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것을 기억하는 신앙고백문입니다.

  오늘 성서 본문의 앞뒤 구조를 살펴보면, 바로 앞 장인 신명기 5장에는 모세가 호렙산에서 야훼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계약을 맺고 십계명을 받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6장에서 모든 율법의 근본정신인 ‘쉐마’가 이어집니다. 율법을 받고, 율법에 대해 다시 자세히 설명하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쉐마’를 읽고 암송하다 보면, 구약의 모든 계명에서 제일가는 계명인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 제1계명이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주님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당신들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라고 표현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쉐마’는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을 기억하는 신앙고백문입니다. 이스라엘 신앙의 근본이 되는 신앙고백의 핵심이 십계명 제1계명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그래서 십계명 제1계명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이를 위해 개신교의 십계명과 유대교의 십계명을 비교해 볼 텐데요, 두 십계명을 비교해보면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십계명에 대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개신교와 유대교 십계명 비교

계명 개신교 유대교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서언 1계명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 1계명 2계명
우상을 만들지 못한다. 2계명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3계명 3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켜라. 4계명 4계명
너희 부모를 공경하여라. 5계명 5계명
살인하지 못한다. 6계명 6계명
간음하지 못한다. 7계명 7계명
도둑질하지 못한다. 8계명 8계명
너희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하지 못한다. 9계명 9계명
너희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나 할 것 없이, 너희 이웃의 소유는 어떤 것도 탐내지 못한다. 10계명 10계명

  기독교와 유대교는 십계명을 핵심 교리로 공유하고 있지만, 분류방식에 있어서 미세한 차이가 납니다. 유대교에서는 기독교에서 십계명 도입 구절로 보고 있는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를 제1계명으로 삼고 있고,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과 우상 숭배 금지 조항을 묶어 제2계명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대교에서 이 서언(전문)을 제1계명으로 삼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중세 유대교 학자인 ‘이븐 에즈라’는 ‘이 구절은 명령형이 아닌 평서문인데 어떻게 계명이 될 수 있겠는가’라며 크게 반문하였으나, 비록 ‘계명’은 아닐지라도 모든 계명의 원천이며 권위의 근원이 된다고 인정하였습니다.

  야훼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으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 한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기 정의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기 정의로 인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출애굽 해방 사건을 전제로 이해되고 정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전제로 모든 계명들을 읽어나갈 때, 십계명의 의미가 온전히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야훼 하나님의 출애굽 해방 사건을 전제로 십계명을 읽어가면, 십계명은 단순히 공동체 내에서 지켜야 할 도덕적・윤리적 규범만이 아니게 됩니다. 십계명이 형성되던 시대 즉, 기원전 8세기 예언자들의 증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의 사회적 상황은 가난하여 빚을 지게 되고, 빚을 갚지 못해 땅을 빼앗기고 노예로 전락하거나 부유한 자들이 더 큰 농지를 가진 대지주로 상승하는 사회적 대결이 극명히 나타나는 사회였습니다.

  사회사적으로 볼 때, 십계명은 자유가 박탈된 노예들, 하나님이 주신 땅을 빼앗긴 대다수의 자유 농민들을 청중으로 여기고 형성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십계명의 주제들은, 십계명 서언에서 밝힌 하나님의 자기 정의/자기 계시처럼,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보존하기 위해 지켜져야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구이며, ‘자유’를 보존할 수 있는 길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계명 서언이 유대교의 1계명이건 기독교의 역사적인 서언이건 상관없이 십계명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라는 고백은 망망대해와도 같은 신앙의 긴 여정에서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율법과 계명의 대전제이며,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자녀교육, 신앙교육]

  사도 바울의 집안 내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가정해 볼 수 있는 것은 바울이 유대인으로 로마 시민권을 가졌다면, 아버지가 돈으로 시민권을 샀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보게 됩니다. 식민지 백성이 피식민지의 정식 구성원으로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일제강점기를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 가실 겁니다.

  그러나 바울의 부모님은 집안의 부를 유지하거나 로마사회에서 큰 성공을 위해 힘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을 당시 최고의 랍비였던 가말리엘에게 보내 철저한 율법주의자로, 마침내 유대인을 대표하는 지도자로 키웁니다. 그리고 바울은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 거듭나게 되고,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전하다 끝내 순교하게 됨으로써, 기독교 역사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남부럽지 않을 만큼 부잣집에서 태어난 바울이 종교지도자로,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에 전력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전통적 유대교 교육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유대교 교육의 핵심은 종교교육이고, 종교교육은 가정교육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교육은 전인적 인간교육이 되어야 하고, 인간교육은 신앙교육의 기초 위에 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신명기 6장 후반부(6:20-25)를 보면 자녀들에게 ‘쉐마’를 가르치며 가정교육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한 율법 교사가 예수님을 떠보려고 율법서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인지 물어보았을 때, 바로 ‘쉐마’를 인용하시며 대답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으니,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가는 계명이다.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이 두 계명에 온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 달려 있다.”(마태 22:37-40)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에 응답하는 것을 깨달아 가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신에게 받은 사랑에 대해 응답하는 최고의 거룩한 산 제사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교육의 핵심은 이웃 사랑을 통해 하나님 사랑을 실현하는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리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가오는 세대 또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감사가 왜 필요한지를 배우게 될 때,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은 영원히 이어질 것입니다.

[마무리]

  우리는 코로나19를 경험하며, 더욱 근본적인 삶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가 겪고 있는 전 세계적 전염병과 기후 위기, 사회적 양극화 현상,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 등 모든 일 들이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한, 진정한 팬데믹의 종식은 영영 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해 거리두기와 자가격리를 하며 우리와 연결된 다른 사람의 소중함을 배우고 있습니다.

  코로나 오미크론 변이가 발견된 곳은 남아프리카입니다. 역사에 만약이란 것은 없다고 하지만, 만약에 자국의 백신 수급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코로나19에 취약한 저소득국, 취약국 등에 대한 방역물품과 백신 지원이 원활했더라면 지금의 코로나 상황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실제로 국가별 백신접종률을 비교해 보면, 선진국이 백신을 사재기하며 부스터샷(추가접종)에 열을 올리는 동안 저개발국은 1차 접종조차 하지 못하는 ‘백신 아파르트헤이트(극단적 인종분리)’가 발생하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삶이 다른 이들과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의 건강 상태가 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체험하며, 지구촌의 참 의미를 온몸으로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 운동은 단지 교회 안에서만 행하는 신앙 운동이 아니라,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이루어지는 ‘장구한 혁명/변혁’(레이몬드 윌리암즈)을 꾀하는 운동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사회의 시대적 과제와 목소리에 끊임없이 귀 기울이면서, 하나님 나라의 대안적 삶에 대한 비전과 다양한 형태의 교육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또한 신앙공동체로 모인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하였듯이 자녀들이 부모에게 묻고 또 부모가 자녀에게 대답하면서, 가정에서/교회에서 신앙으로 자녀를 양육하며, 우리 삶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삶의 기초와 기본을 제대로 가르치고 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삶의 모든 영역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빛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하나님 나라는 우리를 통해 세상을 뚫고서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편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하나님 나라를 찾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면서 또한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이 쉬운 이유는 하나님 나라는 바로 당신 주위에, 당신 안에 있으며,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손을 뻗어서 그것을 가지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려운 이유는 만약 당신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기 원한다면, 당신은 그 밖의 다른 것은 어떤 것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상에서 죽는 것을 배우면,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을 살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늘의 축복을 나누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가,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실천하며, 하나님 나라를 일궈가기로 결단하는 우리 모두 가운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