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덕 목사] 희망을 붙들고 – 2023년 12월 31일
창세기 12장 1-3절, 고린도후서 5장 13-17절
[“견리망의”(見利忘義)의 시대]
매년 이맘때가 되면 정치, 경제, 문화, 외교 안보 각 분야에서는 그 해의 10대 뉴스들을 선정합니다. 인터넷에 “2023년 10대 뉴스”라고 검색어를 넣어보면 각 지역에서 또는 여러 언론에서 저마다 자신들이 선정한 10대 뉴스들이 뜹니다. 우리 교회도 우리 교회만의 10대 뉴스를 선정했던 적도 있지요. 여러분 스스로 올해 우리 사회의 10대 뉴스를 선정한다면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또 개인적으로 올 한 해를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들은 무엇이었는지요? 오늘 저녁 송구영신 예배 때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져 보려고 합니다.
또 이맘때가 되면 교수신문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하지요. 오늘날 대학의 위상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학의 교수면 이 나라의 지성인들이라고 할 수 있고, 그들의 시대 평가는 귀를 기울여 볼 만합니다. 교수들이 뽑은 2023년 올해의 사자성어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견리망의’(見利忘義)입니다. 교수신문이 전국의 교수 1,315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돌렸고, 그중에 30.1%인 395명이 올해를 ‘이로움에 눈이 멀어 의로움을 잃어버린 한 해’ 즉 ‘견리망의의 해’로 평가했습니다.
공자 제자 중에 자로(子路)라는 우직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하루는 공자 선생에게 완성된 인간(成人)에 대해서 묻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당시 유명한 사람들을 예로 들면서 대답을 합니다. “장무중의 지혜와 맹공작의 무욕, 변장자의 용기와 염구의 재주에 예약을 갖춘다면 완성된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러나 오늘날 이런 사람을 찾아볼 수 있겠나?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사회가 위태로울 때는 목숨을 바쳐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오래된 약속이라도 결코 잊지 않는다면 완성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子路問成人, 子曰: “若臧武仲之知, 公綽之不欲, 卞莊子之勇, 冉求之藝, 文之以禮樂, 亦可以爲成人矣.” 曰: “今之成人者, 何必然? 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 『論語』「憲問」14.)
이 일화에 등장하는 말이 “이익 앞에서 의로움을 생각한다.”는 ‘견리사의’(見利思義)입니다. 안중근 의사가 이 말씀을 매우 좋아하셨고, 중국 뤼순 감옥에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면서 마지막으로 남기셨던 유묵(遺墨)들에도 이 글을 쓰셨습니다.(보물 제 569-6호, 1910년 3월) 교수들이 선정한 견리망의(見利忘義)는 견리사의(見利思義)에 정반대되는 말입니다. 지금의 정부와 우리 사회를 매섭게 비판하는 뜻입니다. 정말로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마다하고 의로움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말 그리운 때입니다. 해가 거듭할수록 이로움 앞에서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의로움을 내던지는 시대가 되어 가는 것 같고,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들고 설치는가(賊反荷杖, 25.5%) 하면, 무능하면서도 재능 있는 척하는 무리들(藍芋充數, 24.6%)이 가득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참된 사랑을 추구하는 이들과 거짓과 힘으로 지배하려는 이들의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정 시대의 경우, 전자를 대표하는 요순(堯舜) 같은 인자한 성군(聖君)이 나라를 다스리면 태평한 시대가 되고, 걸주(桀紂) 같은 도적 무리가 윗자리에 올라가면 혼란하고 위험한 세상이 됩니다. 오늘은 민주주의 시대라 행정부가 국민의 권리를 양도받아 나라를 운영하는데, 국민이 어리석으면 도끼로 자기 발등을 찍는 투표와 선거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고 공권력을 사적 이익에 사용하며, 실제로 할 줄 아는 것 없이 하는 척만 하는 대통령과 국무위원들, 그리고 국회의원들이 가득하면 국민의 생명이 위협을 받고, 생계가 막막해지고, 삶이 퍽퍽해지는 것입니다.
[잔인한 권력, 무너지는 사회]
지난 27일 배우 이선균 씨의 사망 소식을 듣고 저는 지금까지도 요동치는 마음을 달랠 길이 없습니다. 제가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하기도 하고, 이선균 배우가 주인공 또는 조연으로 나오는 영화와 드라마를 즐겨 보았고, 이선균 배우만의 독특한 색깔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적으로 전혀 아는 바가 없고, 팬으로 활동한 것도 아닌데, 정말 내 친척 동생이나 오래된 친구가 떠난 것 같은 마음이고, 계속 먹먹한 이 기분을 떨쳐내기가 힘듭니다.
그의 죽음에 제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의 연기를 볼 수 없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그의 죽음이 바로 “견리망의” 시대의 한 표징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선균 배우의 죽음은 그냥 한 개인의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로 봐야 합니다. 그에게 마약 투약 의혹이 최초로 제기된 10월 19일부터 두 달 남짓 넘도록 그에 대한 경찰의 무리한 공개 소환 조사 과정과 쓰레기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 유명인 배우를 공갈 협박해서 갈취하는 자들,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에 맞춰서 이런 사건들을 노골적으로 터트리는 문제들을 한 번 차분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공모로 인해 한 인간이 받아야 할 모욕과 수치, 굴욕, 그리고 그가 감당해야 했던 100억 원이 넘는 각종 위약금은, 자본주의 한복판에서 이익만 챙기는 사회가 얼마나 잔인한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는 마약을 제조하거나 유통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마약을 복용했다는 의혹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모발, 다리털, 겨드랑이 털에 대한 모든 정밀 검사가 음성으로 나왔고, 어떤 물증도 없는데 수사는 오로지 유흥업소 실장의 진술에만 의존한 채 강도 높게 진행됩니다. 게다가 마약 사건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적 대화의 녹취록이 공영방송을 통해 무분별하게 폭로되고, 두 달 조금 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언론은 무려 그와 연관되어 2,872건을 보도합니다.
예수님은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산에 두고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을 찾아 떠나는 목자(마태 18:10-14)의 심정으로 작은 사람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라도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한 생명 한 생명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보면 정말로 참담합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된 것일까요?
저는 현 정부의 인사 실패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위험과 매우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국무총리를 비롯해 국무위원, 감사원장, 검찰총장, 국가정보원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한국은행 총재 등에 대한 인사권뿐만 아니라 332개 공공기관 중 74개 기관장 등에 대한 임명권을 갖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관여하는 자리가 7000여 개에 달하고,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까지 추정하면 1만 8000개가 넘는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현 정부가 들어서고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는 이렇게 많은 자리에 적임자가 아닌 사람들, 실력은 없고 자기 말만 잘 들을 사람들을 심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제, 외교, 안보, 교육, 문화, 방송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급격한 타락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뉴스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최근 국방부가 5년 만에 개편해 이달 말 전군에 배포하는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에 우리 고유 영토인 독도를 ‘영토 분쟁 지역’으로 기술했습니다. 게다가 교재에 수록된 11개의 지도에 단 한 개도 독도를 그려 넣지 않았습니다. 독도는 우리가 실효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단 한 번도 영토 분쟁 지역이 된 적이 없는데, 일본 시각에서 기술된 이런 얼토당토 않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지요. 언론은 대통령이 격노했다면서 뭉개고 넘어가려고 하지만, 이 교재를 만들기 위해서 대통령실, 국방부, 통일부, 국정원, 안보전략연구원, 교재 집필진 등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의 NSC 소회의실에 수차례 모여 범정부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게다가 이 교재가 훌륭해서 “군인과 예비군뿐만 아니라 국민 대상 안보교육의 참고서로 써도 좋겠다.”는 논의까지 있었다고 합니다.(SBS 보도)
현 정부 들어서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런 실책들이 나오고 있고, 실제로 실력을 지니고 올바르게 일하는 사람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숨죽여야만 하는 분위기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검증되지 않은 이들이 권력에 빌붙어 몇십 년 동안 공들여 세워놓은 탑을 무너뜨리는 형국입니다. 유시민 작가는 취임 100일을 맞는 현 정부에 대해서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온 코끼리와 같다”라고 비유했었는데, 그로부터도 1년 3개월이 더 지났으니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저 모든 뉴스에서 눈을 돌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일제 엄혹한 시절을 살았던 승려 시인 만해 한용운 선생은 『조선불교유신론』이라는 책을 써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불교 운동을 하려고 했던 당대의 최고 지식인 중 한명이었습니다. 그가 시대를 아파하며 쓴 “당신을 보았습니다.”라는 시 한 구절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 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永遠)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지금 시대도 온갖 윤리와 도덕, 법률은 그저 칼과 황금을 위해 제사 지내는 불쏘시개에 불과합니다. 한 개인이 극복하기 어려운 시대적 문제와 과제 앞에서 그저 나 몰라라 하며, 영적인 내면세계로 도피할 수도 있고, 학문의 숲으로 도망갈 수도 있고, 에라 모르겠다 술이나 퍼 마시자 하며 눈감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목사는 뭐 하는 사람인가?” 제가 목사 안수를 받을 때부터 지금까지 시시때때로 묻는 질문입니다. 미친 버스 운전사가 교통 법규를 무시하고 마구 거리를 휘저으며 계속해서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죽일 때, 그저 장례나 치러주고 문병이나 가서 위로의 기도나 해 주면 되는 사람인가? 세상은 어떻게 되는지 나 몰라라 하면서 예배당에 모여 주님께 예배하고 찬양하면 그만인가? 공자 선생은 위험한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곳에는 머물지 말라(危邦不入 亂邦不居)고 했으니, 이 더러운 세상! 그냥 눈 감고 귀 닫으면 그만인가? 제 양심에서 계속 울려 나오는 소리입니다.
[2023년을 열고 닫으며]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는 “성령의 능력으로 희망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표어의 기준이 되는 성서 구절은 로마서 15장 13절 말씀이었습니다.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모든 기쁨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여러분에게 차고 넘치기를 바랍니다.”
짧은 한 구절에 불과하지만 삼위일체적으로 균형 잡힌 바울 사도의 조언이 담겨 있습니다. 소망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 즉 예수님께만 충성하는 그 삶으로 기쁨과 평화를 얻을 수 있으며, 성령의 능력으로 이 모든 것을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여 이 세상에 전하는 목회자로서 한 편으로는 성서를 주목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세상의 현실을 늘 주의 깊게 살피는데, 세상을 볼 때는 정말 어지럽기만 합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면 그저 막막하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문제는 세상에서 발생하고 있고, 그 문제를 풀어야 할 곳도 세상 한복판이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용기와 지혜와 힘은 세상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세상을 보면, 붙들 희망은 없습니다. 의미도 없습니다. 자욱한 안개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그저 허무한 삶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기분입니다. 전 세계에서 계속 들려 오는 기상 이변 소식, 끝나지 않는 전쟁,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인공지능 시대의 변화 이 모두가 우리를 어지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길을 찾아야 할까요? 우리는 어떻게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요?
바울 사도께서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길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미쳤다고 하면 하나님께 미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다고 하면 여러분을 두고 온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잡습니다. ~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한복판에 사는 우리가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려면 바로 하나님께 미치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잡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올해 표어 말씀으로 붙들었던 로마서 15장 13절을 기억하여 소망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쁨과 평화를 허락하시는 예수님께 충성하면서 성령의 능력에 의지해서 나아갈 때 우리는 정신을 차릴 수 있고, 우리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제가 요 며칠 사이 마음이 너무나 뒤숭숭했기에 설교가 손에 잡히지도 않았는데, 그런 마음을 살살 다독이며, 올해 초의 다짐을 기억하며 다시 주님의 약속으로부터 비롯된 희망을 붙들고자 오늘 설교 제목도 “희망을 붙들고”라고 정했습니다.
지난 주 설교에서 인용했던 본 회퍼 목사님의 편지글은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의미’라는 비성서적 개념은 실은 성서가 ‘약속’이라고 말하는 것을 번역한 것에 불과하지.”(디트리히 본회퍼 지음/손규태, 정지련 옮김, 『저항과 복종』 대한기독교서회, 2010. 730.)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살아가는 의미를 열심히 찾지만 ‘의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약속’에서만 제자리를 찾게 됩니다.
[생명사랑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께서 생명사랑교회를 세우시고, 지금까지 돌보시고 지키신 것은 바로 그 먼 옛날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그 약속의 일환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것이고, 이 세상에 어떤 근거도 두지 말며, 익숙한 그 모든 것을 떠나라는 것이지요. 생명과 삶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땅과 연결된 경제적 문제도 아니요, 혈연, 지연, 학연과 같은 사회적 제약(친척, 네가 난 곳)에 굴복해서도 안 되는 것이며,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는 부모-자식 간(네 아버지의 집)에서 이루어진 내적 심리 문제로만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브라함의 소명 기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이런 모든 제약을 넘어서려고 했던 최초의 사람입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주체적으로 서야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2023년 올 한해도 우리는 참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남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지만 우린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고, 꾸준히 걸어왔습니다. 1월 28일 2,000장의 연탄을 이웃들에게 배달한 것부터, 성탄절 여섯 개 교회의 성가대가 함께 모여 연합칸타타 예배를 드린 것까지, 우리는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이들을 돕고, 현장과 온라인을 오가며 열심히 배웠고, 무너지는 한국 개신교회의 기둥을 떠받치는 일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교육부 공간을 하나 더 마련할 수 있었고, 교단 목사를 양성하는 일에도 한 걸음 더 나아갔으며,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평화와 통일의 문제, 자연과 생명을 지키는 일,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에도 진전이 있었습니다. ‘희망이 넘치는 교회’를 이룩했다고 자신만만하게 자랑하는 것은 송구하지만, 많은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이웃 교회들이 우리 생명사랑교회를 보고 희망을 놓지 않고 붙들 수 있게 할 정도는 되었습니다. 올해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한 걸음 나아간 것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깜깜합니다. 희망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과 부르심 앞에서 희망을 붙들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유명한 영화 감독 타르코프스키의 마지막 작품인 <희생>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한 그루의 죽은 나무에서 시작합니다. 전직 대학교수이며 저널리스트인 알렉산더가 자신의 생일에 실어증에 걸린 어린 아들 고센과 황량한 해변가에서 죽은 나무를 심고 있습니다. 그는 아들에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줍니다. 옛날에 한 수도사가 죽은 나무에 3년간 물을 주어서 나무에 꽃이 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이 지나면 이제 2023년은 가고, 새로운 2024년이 옵니다. 다가오는 해를 맞이하며 밝은 미래를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오히려 죽은 나무에도 한결같이 물을 주었다는 그 수도사를 기억해 봅니다.
영화 <희생>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하지요. “아들아! 네 온 마음을 담는다면 죽은 나무도 꽃을 피운단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전국에 계신 믿음의 성도 여러분! 올해도 그렇게 살아오셨듯이, 내년도 온 마음을 담읍시다. 내 마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담고, 우주를 품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담고, 늘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의 마음을 담읍시다. 그렇게 해서 끝까지 희망을 붙드는 우리가 됩시다.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창조주 하나님!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 말씀은 살아서 세상을 창조하고,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곁에 머무셨습니다. 그 말씀은 거룩한 영의 능력 안에서 힘을 발휘했고, 우리 생명사랑교회의 목회와 선교 사역을 하도록 이끄셨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2023년 한 해도 성령의 능력으로 희망을 열어가게 하신 은혜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주님은 충분하시기에 우리는 언제나 주님을 믿고 따릅니다. 우리는 주님께 미쳐있고, 세상과 사람들에게는 온전한 정신으로 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늘 새롭게 거듭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희망입니다. 우리가 빛이고 소금입니다. 2024년도 언제나 희망을 붙들고 굳게 나아가게 하여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주님의 오심을 기뻐하며, 찬양하며, 주님을 생각하고, 너무 좋아서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펼쳐 가시는 하늘의 질서가 이 땅에서 꽃을 피울 때 감격스럽습니다. 특별히 올 한 해도 죽음의 그늘 골짜기에서도 지켜 주셨고,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참 빛으로 우리를 찾아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주님, 한해를 마감하면서 우리는 우리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잡다한 세상일들을 정리하고, 주님 오시는 길을 닦기 위해 마음을 모으고 있습니다. 길을 잃고 비틀거릴 때마다 동방박사를 이끌었던 별을 생각하며 다시 주님 앞에 섭니다. 따뜻한 세상, 정의를 뿌리고 사랑의 열매를 거두는 새 시대를 소망하며 주님 앞으로 나옵니다. 나올 때 감사의 예물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 예물을 받으시옵소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삶 전체를 드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아들 예수를 보내 주신 그 사랑을 생각하며, 우리의 마음과 몸을 드립니다. 주님 받으시옵소서. 돈이 전부가 아님을 기억하게 하시고, 이 예물이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쓰일 때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여 주소서.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펴시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십시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잡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희망을 열어가십시오.
* 축도
여러분이 걷는 모든 길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여러분이 오르는 모든 언덕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여러분이 건너는 모든 개울마다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해안의 절벽과 산등성이, 빈들과 황무지, 초원과 바다,
평야와 사막의 한 복판에서도,
누울 때와 일어날 때,
일렁이는 파도와 자욱한 물보라에서도
성부, 성자, 성령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내딛는 모든 걸음에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