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한문덕 목사] 추수할 일꾼을 보내소서 – 2022년 4월 10일 종려주일

역대지하 2118-20, 시편 919-16, 누가복음서 101-9

[인생에 대한 평가와 왕의 치적]

한국 최초의 사설 공동묘지인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 공원에는 많은 민주 열사들과 노동 운동가들, 국가 폭력과 공안 사건의 희생자들이 묻혀 있습니다. 노회찬, 김근태 전 의원,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여사, 백기완 선생님과 박종철 열사, 문익환, 문동환, 홍근수 목사님 등.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 운동, 노동 운동에 투신하셨던 분들이 계십니다. 또 거기에는 민중 신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안병무 선생님의 묘도 있습니다.

2004년 안병무 선생 기념사업회는 추모비를 세웠는데, 이런 글귀로 안 선생님을 묘사합니다. “진지한 구도자의 길을 통하여 무한한 내면성과 성실성을 추구한 사람. 깊은 학문의 숲 속에서 사변의 세계로 도피하지 않고 담대히 현실의 진리를 붙잡은 사람. 억눌린 민중들의 삶 속에서 고난 당하는 예수를 만난 사람. 성서의 중심광맥을 짚어 한국 민중 신학의 토대를 놓은 사람.”

우리의 삶은 그저 매 순간 주어지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 꾸려가고 살아내는 것이지만, 죽음에 이르게 되면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최종적 평가를 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삶의 끝이라기보다 삶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21일 사순절 아침 묵상에서 말씀드렸지만, 미국의 나바호(Navajo) 인디언들은 탄생과 죽음, 삶에 대해서 이런 조언을 합니다.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너는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런 삶을 살아라.” 이런 삶을 살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자신의 삶을 계속 이어갑니다. 왕과 같이 크고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영향력이 크기에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오래도록 기억하게 됩니다. 바로 역사가 기억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역대지하의 말씀에서 유다의 다섯 번째 왕 여호람은 불치의 병으로 꼬박 두 해를 앓다가 창자가 몸 밖으로 빠져나오고, 심한 고통 속에서 불행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여호람 왕은 백성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그 누구도 향을 피워주지 않았고, 그의 죽음을 슬프게 여기는 사람도 없었으며, 왕실 묘지에 묻히지도 못했습니다. 참으로 비참한 죽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호람 왕이 이런 종말을 맞게 된 것은 야훼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악한 일을 행했기 때문이라고 성서는 해석합니다. 여호람의 아버지 여호사밧 왕은 주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살기로 다짐하고, 유다에서 산당과 아세라 목상을 없애고,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이 통치하던 시절 하나님은 유다를 보호하셨고, 유다는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튼튼한 국방력을 갖게 되고 주변 국가들을 자신의 그늘 아래에 두게 됩니다.

여호사밧은 자신의 7명의 아들들도 이런 신앙 유산을 이어가기를 바라면서 전부 야훼 하나님과 연결된 이름을 짓습니다. 장자 여호람은 ‘야훼께서 일으키신다, 야훼는 높으시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여호람이 하는 짓은 정반대입니다. 야훼 하나님을 높이기는커녕 자신이 왕이 되자 여섯 명의 동생들을 모두 살해하고,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될 만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도 없애 버립니다(대하 21:2-4). 또한 유일신 신앙을 훼손한 북이스라엘 아합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유다 전역에 이방 산당들을 다시 세웁니다. 자신의 힘만 키우려는 그의 정책들은 주변 국가들과의 외교에도 문제를 일으킵니다. 에돔이 유다에 반역을 일으켰고, 립나 성읍도 유다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야훼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의로운 세상, 평등한 세상과 멀어진 유다는 점점 약화되었고, 선친 여호사밧이 일구었던 모든 성과들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대하 21:5-11).

여호람의 잘못된 정치는 결국 자신의 가문에도 몰락을 가져옵니다. 블레셋 사람과 에티오피아 인근 아라비아 사람들이 유다를 공격하여 여호람 왕궁의 모든 재물을 탈취하고, 여호람의 아들들과 아내들까지 잡아갑니다. 여호람의 집은 막내아들 아하시야만 남고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거처로 삼는 사람]

한편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에는 여호람과는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즉 하나님을 간절히 사랑하며, 주님을 자신의 피난처와 거처로 삼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에게 피하는 사람, 자신에게 부르짖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불행이나 재앙을 피하도록 도우시고, 주님의 천사에게 명하셔서 가는 길마다 지키시며, 사자와 독사, 살모사와 같은 위협적 상황도 능히 극복하며, 주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주님의 품 안에서 많은 것을 누리게 됩니다.

이 시편의 말씀을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읽어낼 수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돌보심을 체험한 이들의 매우 개인적인 신앙고백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곁에서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았기 때문에 실제로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지켜 주시고 보호하여 주신 경우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시니 고난도 이겨내고,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에 응답을 받습니다. 세상의 기준과 잣대로 보았을 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 요즘 말로 흙수저로 태어난 사람들, 수저마저 없는 사람들이 신앙을 갖게 되고,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삶의 모든 질곡을 헤쳐나갔을 때 실로 이런 고백들을 하게 됩니다. 저 또한 이런 사람중에 하나이고, 주님께서 저를 선택해 주셨기 때문에 제가 지금 이렇게 살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살면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얻을 때가 있고,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기적 같은 일들도 실로 많이 벌어집니다. 모두가 사실입니다. 신앙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을 느끼고 경험할 때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구절을 아주 사적인 고백으로 읽는다 해서 하나님이 마치 무슨 요술쟁이나 도깨비방망이가 되어 도우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을 피난처로 삼고, 거처로 삼고, 주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주님과 끊임없이 소통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주님께서 보여주신 길에 대한 확신 속에서 결단하는 능력들을 지니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의 사람은 불확실한 삶의 한복판에서도 불안해하지 않고, 낯설고 생소한 상황에서도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기에 쉽게 포기하거나 주저하지 않습니다. 혼자 결정하지 않고 주님과 상의하기 때문에 훨씬 더 신중한 선택을 하며, 사적 이익보다 모두를 생각하고 공공의 영역을 살피면서 모두가 함께 잘되는 길을 택하게 됩니다. 그러니 주변에는 이 사람이 도왔던 이들도 많고, 이 사람을 도우려는 사람도 많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고백이 가능한 것입니다.

한편 오늘 이 시편의 고백을 공동체적으로 읽어 낼 필요도 있습니다. 즉 악인이 승승장구하지 못하도록, 공동체가 바로 하나님의 은총을 드러내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 억울한 사람들, 불의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 때문에 고통당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의 울부짖음에 바로 신앙공동체인 교회가 응답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믿음의 형제자매들인 우리가 방패가 되어 주고, 곁에 있어 주고, 주님께서 파송하신 천사들이 되어 우리들의 손으로 어려움 당한 이들을 붙들어 주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읽어내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 생명사랑 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능력과 은총을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 일들을 감당할 때, 오늘 시편과 같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고,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찬양을 받게 되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거처로 삼는 사람]

오늘 누가복음서 본문은 첫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상생의 신앙공동체를 꾸렸는지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열둘을 파송하실 때처럼 똑같이 일흔두명의 제자를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혼자 보내지는 않고 둘씩 둘씩 짝지어 보내면서 몇 가지 규칙을 말씀해 주십니다. 둘씩 보내는 것은 전도 여행에서 서로서로 돕게 하고, 전해지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가 확실하다는 보증이기도 합니다. 유대 사회에서 2명의 증언은 참된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세상에 내보내시면서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 내 보내는 것 같다고 하십니다. 어린 양을 이리들 가운데 데려다 놓으면 금방 잡혀먹습니다. 문자 그대로는 아니겠지만, 첫 그리스도인들은 심한 박해와 투옥, 고문과 폭력, 심지어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세상에 보내졌습니다. 그들의 전도는 실로 과감한 결단과 굳센 믿음과 의지, 용기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주님께 죽도록 충성하겠다는 그들의 믿음 덕분에 지금의 그리스도교가 탄생했고 자라났고, 우리에게도 전해진 것입니다.

결코 녹록치 않고, 어려운 상황에서 첫 교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무엇보다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입니다. 이들은 돈 주머니나, 양식 주머니도 가지지 않고, 신발도 신지 않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독사나 야생 동물들의 위협에도 겁먹지 않습니다. 이들에게는 두 가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근원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관자라는 믿음이요, 둘째로는 자신들을 받아 들여줄 공동체가 있다는 믿음입니다.

전도자들은 전도할 마을로 가서 어느 집이든 택하여 들어갑니다. 문을 두드리고, “이 집에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전도자이고 이 마을에서 전도할 하루 이틀의 시간 동안 머물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이들을 환대하여 맞아들이는 사람의 집에는 하나님의 평화가 머물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숙박을 해결한 전도자는 그 집에서 제공하는 음식을 먹고 마시며 전도를 합니다. 그럴 때 그 집에서 무엇을 제공하든 거기에 만족해야지, 더 나은 장소를 물색하면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것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바로 그런 행위가 하나님 보다 자신의 안위와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들은 철저하게 주님께서 명하신 사역을 하려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먹고 자는 문제만 해결되면 제자들은 주님께서 하신 사역을 이어서 합니다. 오늘 누가복음서에는 두 가지로 표현됩니다. 첫째는 병자를 고쳐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코로나 세계대유행 상황을 겪으면서 오늘날 전 세계의 수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아픔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구원을 갈망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런 아픔에 응답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병은 의사가 고치지만, 몸과 마음이 아프다고 하는 현상과 그것에 대한 치유는 단순히 의학에만 머무는 것도 아니고,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는다고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발생한 질병을 치유하는 것만큼, 병을 양산하는 사회도 고쳐야 하고, 아주 개인적으로도 또는 사회 구조적으로도 아플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다방면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경쟁 때문에 지친 사람들, 성공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인해 오히려 무기력증에 빠진 이들, 유리 천정과 같은 차별의 벽으로 인해 희망을 포기한 사람들, 갈수록 심해지는 사회적 양극화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는 사람들, 돈이 전부인 줄 아는 사회적 풍토 속에서 사람 대접 받지 못하는 이들, 너무나 빠른 변화 속에서 정신이 어질어질한 분들, 여러 가지 이유로 쌓인 감정의 쓰레기들을 처리하지 못해 분노와 혐오에 사로잡힌 사람들. 세상에는 고쳐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런 병들을 고치는 것입니다. 거짓말과 속임수,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비열한 짓거리들,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비겁한 행동들, 자기만 살면 그만이라는 이기적 생각들이 모여 지금도 많은 환자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가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과 돈과 권력이 다스리는 세상이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일흔 두명의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고 하시면서 주인에게 일꾼을 보내달라고 청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 생명사랑교회에도 일꾼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시대, 뉴노멀의 시대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진리를 지키고 그래서 가까이 온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드러낼 일꾼이 필요합니다.

이제 곧 안식년에 들어가는 저이지만 제 머릿속에는 아침부터 저녁 5시까지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찾으러 나간 포도원 주인처럼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참된 그리스도인 일꾼을 어떻게 찾고 길러내야 할지 생각이 많습니다. 진리에 헌신하는 사람,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어 주겠다는 사람들을 어떻게 길러내고 발굴할 지, 그들과 함께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면 좋을지 정말 여러 방면으로 깊이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의 분석과 연구에 따르면 이제 5월 말쯤 되면 우리나라의 코로나는 감기나 독감과 같은 풍토병으로 전환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루에 확진자 숫자가 몇 명인지, 위중증 환자나 사망자가 몇인지 굳이 따질 필요도 없고, 바깥에서는 마스크를 벗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 2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실로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코로나와 함께 하는 포스트 코로나는 앞으로도 더 많은 것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우리 생명사랑교회에 위기이자 기회입니다. 잘 준비하지 못하면 하루아침에 추락할 수도 있지만, 준비하고 대비하면 우리 교회처럼 작은 교회도 주님의 크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신앙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기획관리부와 함께 코로나 시기 목회와 앞으로 다음 회기 목회를 위한 전교인 설문 조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설문 문항이 완성되면 카톡과 다른 SNS를 통해서 공지할 텐데, 전 교인이 참여해 주시고, 교회에 정식 교인으로 등록이 되지 않았지만, 지금 우리 교회의 예배와 활동에 함께 하시는 분들도 모두 참여해 주시길 빕니다. 여러분의 설문 참여가 다음 목회를 기획하고 일구는 데 정말로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종려 주일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 많은 이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메시아처럼 받들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의 일주일 동안 예수님은 예루살렘 권력과 갈등하고 투쟁하셨으며, 소요를 일으키셨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좋지 않은 때, 즉 군중들이 흥분할 수 있는 유월절 명절에 체포당해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고 맙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힘껏 외쳤던 희망의 환호가 십자가 처형 후 곡소리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생각했을 때, 이제 더 이상 무엇에도 기댈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 그 때, 바로 야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셨고, 도망갔던 모든 제자들을 만나게 하셔서, 그들을 일군들로 만드십니다. 나약했던 베드로였지만 부활한 예수님 만나고, 성령 충만하여 했던 설교에 3천명, 5천명이 회개하여 믿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초기 교회에도 내부 분열이 있고 갈등이 있으며 박해를 받아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렇게 흩어진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사마리아와 에티오피아, 소아시아를 거쳐 땅끝까지 주님의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정치 사회적으로, 외교 안보에 있어서, 복잡한 국제질서 속에서 요즘 TV를 보고 싶지 않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더구나 한국 개신교의 추악한 모습은 이제 비난마저도 사치스러운 것이 된 듯한 느낌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럴 때 우리 주님은 하나님께 새로운 일꾼을 보내 달라고 청하셨습니다. 그리고 실로 새로운 일꾼들이 다시 일어섰습니다.

사랑하는 생명 사랑 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우리가 새 시대의 새 일꾼이 됩시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이리 가운데 보내지는 어린 양 한 마리 신세라고 하여도, 우리 예수님께서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세력을 누를 권세를 우리들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의 이름이 저 하늘에 기록될 것입니다. 오늘도 일꾼을 찾으시는 주님 앞에 나아가,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부족합니다. 우리들에게 일꾼을 보내 주소서. 권력에 물들지 않고, 돈에 눈먼 자들이 아닌, 생명을 사랑하고, 정의를 위해 일하는 일군들을 보내 주소서. 역사의 하나님! 우리들 자신이 일군이 되게 하여 주소서. 세상으로 나아가 참된 평화를 외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소서. 참된 지도자를 잃어버리고 막막해하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변하는 세상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두려움과 불안을 치유하게 하여 주소서. 주님께서 뜻하신 바가 있어 생명사랑교회를 세우셨으니, 우리가 주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외양간에 소가 없고,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오직 주님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코로나 세계 대유행의 위기를 우리 모두가 극복해 가게 하신 은혜 감사 드립니다. 우리 생명사랑 신앙공동체의 지난 10년을 지켜 주시고, 앞으로의 10년을 준비하게 하시니 감사하고, 인내 속에서 다시 대면 예배를 재개할 수 있음에 감사 드립니다. 우리의 삶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사랑을 위하여 늘 기도하길 원합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로운 물결 속에서 우리 모두가 지혜로운 방식으로 서로를 돌보게 하시고, 삶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을 함께 나누게 하여 주소서. 영혼을 돌보고 내면을 풍성하게 하는 일에도 힘쓰게 하여 주소서. 어둠 속에 감춰진 빛을 바라보는 우리들에게 주님의 은총을 부어 주시고, 우리의 사랑이 더욱 힘 있고 아름답게 피어나게 하소서. 오늘 우리는 우리의 전 삶과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을 기억하며 주님께 예물을 드립니다. 이 예물이 하나님 나라 사역에 올바로 쓰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새로운 시대가 열립니다. 주님께서 새 일꾼을 부르십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주님의 초청에 아멘하고 나아갑시다.

*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거룩한 친교가 주님을 피난처로 삼고, 거룩한 분을 거처로 삼는 생명 사랑 교우들과, 주님을 사랑하여 언제나 주님의 은총의 손길에서 구원을 얻는 전국의 모든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아픈 세상에서 구원을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