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덕 목사] 진리에 머물러 끝까지 – 2024년 3월 17일
디모데후서 3장 14절 – 4장 8절
[목회서신과 바울의 영적 아들 디모데]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 디도서를 가리켜 목회서신이라고 부릅니다. 이 편지들은 대다수의 바울 편지처럼 교회 공동체 전체에게 보낸 것도 아니고, 또 빌레몬서처럼 아주 사적인 부탁을 위해 한 개인에게 보낸 것도 아닌, 바로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담당자, 오늘로 말하자면 목회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들에게 보낸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서신이라는 명칭은 중세의 대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 세 편지는 그 내용이 모두 교회를 목양하는 것을 다루었다.”고 말한 것에서 유래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영적 아들로 여겼고, 자신의 뒤를 이어 교회를 책임질 후임 목회자에게 주는 일종의 교회 목회를 위한 상담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에게 있어 디모데는 가장 가깝고 믿음직한 동역자였습니다. 바울이 쓴 편지 중 여섯개, 고린도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빌레몬서는 편지의 발신자로 바울과 디모데를 나란히 언급하고 이 중 4개는 바울과 디모데만 등장합니다.
그런데 디모데후서 전체를 읽어 보면 바울이 많은 동역자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는 사실이 나옵니다. 몇 구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1장 15절입니다. “그대도 알다시피, 아시아에 있는 사람이 모두 나를 버렸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들어 있습니다.” 4장 10절에는 데마라는 사람이 이 세상을 사랑해서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4장 14절, 15절에는 구리 세공을 하는 알렉산더가 바울의 말에 심하게 반대하면서 해를 많이 입혔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얼마나 심하게 당했는지, 주님께서 알렉산더가 자신에게 했던 그 행위 그대로 갚아 주실 것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4장 16절에서 바울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처음 나를 변론할 때에, 내 편에 서서 나를 도와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나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허물이 돌아가지 않기를 빕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이 믿을만한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디모데였던 것입니다.
디모데는 바울 사도가 빌립보에 보낸 편지에도 등장합니다. 2장 19절부터 22절의 말씀입니다. “나는 주 예수 안에서 디모데를 여러분에게 곧 보내고 싶습니다. 그것은 나도 여러분의 형편을 앎으로써 격려를 받으려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디모데와 같은 마음으로 진심으로 여러분의 형편을 염려하여 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다 자기의 일에만 관심이 있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디모데의 인품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듯이 복음을 위하여 나와 함께 봉사하였습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울 주변의 많은 인물이 예수의 일보다 자기의 일에만 관심이 있을 때, 교회를 사랑하고 진심으로 아껴서 몸소 나서서 실천했던 인물이 바로 디모데였다는 것이고, 그의 인품은 바울이 선교했던 지역의 거의 모든 교회에서 인정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디모데의 이런 자질 덕분에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때 발탁된(행 16:1-3, 딤후 1:5) 이후, 바울의 선교활동에서 가장 절친한 동역자로서 바울을 대신하여 데살로니가 교회(살전 3:2-3, 행 17:14-15, 18:5), 고린도 교회(고전 4:17, 16:10-11), 빌립보 교회(빌 2:19-24) 등에 파송되었고, 바울의 마지막 예루살렘 여행에도 함께 했으며, 바울은 자신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를 의지했습니다.
문제가 많던 교회 즉 고린도 교회에 디모데를 파송하면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런 말을 쓰는 것은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같이 훈계하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는 일만 명의 스승이 있을지 몰라도, 아버지는 여럿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 내가 여러분을 낳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이 일 때문에 나는 디모데를 여러분에게 보냈습니다. 그는 주님 안에서 얻은 나의 사랑하는 신실한 아들입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하는 나의 생활 방식을 여러분에게 되새겨 줄 것입니다. 어디에서나, 모든 교회에서 내가 가르치는 그대로 말입니다.”
이 말속에 등장하는 놀라운 표현이 있습니다. 디모데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바울 사도가 어디에서나 모든 교회에서 가르친 그대로의 생활방식이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가정에서 자란 사람]
디모데는 어떻게 이런 훌륭한 목회 자질을 가진 신앙의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굳게 믿는 그 진리 안에 머물라”고 하면서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고 있으며 성경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 사도는 1장 5절에서 디모데가 거짓 없는 믿음, 솔직하고 담백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디모데의 외할머니 로이스와 그의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을 언급합니다.(딤후 1:5)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디모데를 처음 만났을 때도, 사도행전 저자가 이 사실을 언급합니다. 사도행전 16장 1-3절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갔다. 거기에는 디모데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신앙이 돈독한 유대 여자이고, 아버지는 그리스 사람이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신도들에게 호평받는 사람이었다.” 그리스 사람 아버지를 두었기에 어렸을 때 할례를 받지 않았던 디모데였지만, 모계로 내려오는 유대 신앙 전통이 디모데에게 뼛속 깊이 새겨져 있었고, 그의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보여준 신앙은 돈독하고 거짓 없는 신앙이라는 표현 속에서 그것이 얼마나 굳세고 단단한 것인가를 느끼게 합니다. 고대 다신론적 사회에서, 또 로마제국의 치하에서 유일신 신앙을 지킨다는 것 자체가 때로 목숨도 걸어야 하는 결단이 필요한 일이고, 게다가 국제결혼이라는 오늘날도 쉽지 않은 선택 속에서 우리는 디모데의 어머니 유니게가 어떠한 신앙의 사람이었는지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유대 사회는 이방인의 피가 섞인 이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대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디모데가 이렇게 성장했다는 것은 어머니 유니게의 신앙 교육이 어떠했을까를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개신교의 역사 150년도 되지 않아, 깊고도 넓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오롯이 지닌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동시에 일제 식민지에 의해 지배당하고, 밀려오는 서양 문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귀중한 우리의 문화 전통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한국 전쟁 후 폐허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고 일어서서 지금과 같이 잘살게 된 것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너무나 천박한 자본주의적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물론 돈도 있으면서 제법 교양도 있는 이들을 만날 때가 있지만, 신라 문명이 만들어 낸 원효 스님, 조선 문명이 만들어 낸 퇴계 이황이나 다산 정약용 같은 인물을 만나기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특히 한국 개신교 내에서 이전의 다석 유영모 선생이나 함석헌 선생님같이 깊은 정신의 세계를 노니는 분들을 만날 수 있겠는가를 물을 때 저는 참으로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저처럼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그리스도교 신앙에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된 믿음을 얻으려고 여기저기 선생님도 찾고, 믿음의 동료도 구해보지만, 너무나도 왜곡된 한국교회의 적나라한 모습에 그저 실망할 뿐입니다. 맹자라는 동양 고전에 보면 “부귀영화도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하고, 가난하고 낮은 자리에 있어도 옳은 뜻을 바꾸지 않으며, 위세와 무력에도 굴복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대장부라고 한다.”(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 威武不能屈, 此之謂大丈夫.)는 말이 나옵니다. 참된 신앙인은 최소한 이런 대장부 정도는 넘어서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 하나 찾아보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제 자신도 부끄러울 따름인데, 나는 왜 이 정도밖에 안 될까를 생각해보면, 역시 그것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신앙의 깊은 전통이 없다는 사실과 연결 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뿌리가 아직 너무 얕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대학원에서 본 회퍼 목사님의 책을 읽고 그분의 신학을 배우고 신앙을 알게 되면서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기도 합니다.
본 회퍼 목사는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1943년 4월 5일 체포되어 1945년 2월 7일까지 베를린 테겔에 있는 군 형무소와 베를린 프린츠 알브레히트의 지하 형무소에 감금되어 있다가 1945년 4월 9일 형장의 이슬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가 감옥에 있었을 때, 그는 부모님, 형제자매들, 친구들과 제자들과 편지를 주고받는데, 이 편지에는 감옥에서의 생활뿐만 아니라 최고의 천재 신학자로서 고민했던 많은 신학적 주제들의 단편들도 담겨 있습니다.
또 본 회퍼는 목사로서 감옥에 있는 동안 자기 제자이자 동료인 베트게와 조카 레나테의 결혼 예배를 위한 설교도 쓰고, 또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의 세례식을 위한 글을 쓰는데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신앙의 유산이 어떻게 내려오는가에 대해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꽤 긴 글인데 뛰어넘어 가면서 일부를 인용해 보려고 합니다. 아기의 이름은 디트리히 빌헬름 뤼디거 베트게이고, 여기에는 본 회퍼 목사의 이름도 들어가 있고, 본 회퍼 목사는 이 아기의 대부이기도 했습니다. 읽어 보겠습니다.
너와 더불어 우리 가정에 새로운 세대가 시작된단다. ~ 중략 ~ 너는 새로운 세대의 대열에서 선두에 서게 되었다. 네가 너보다 앞선 제3, 제4 세대와 함께 네 삶의 한 부분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은 너의 삶에 있어서 커다란 소득이 될 것이다. ~중략 ~
네가 가지고 있는 세 개의 이름들은 네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는 세 가정을 가리키고 있단다. 너의 아버지 쪽을 보자면, 네 조부 가문은 마을의 목사 가문이었다. 소박함과 건강, 집중적이면서도 다양한 정신적 생활, 눈에 띄지 않는 삶의 자산들에 대한 만족감, 자연스러우면서도 편견 없이 민중들과 노동과 삶을 나눌 수 있는 능력, 삶 자체가 가진 실제적인 것들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 내적 만족에 기초하고 있는 겸손, 이 모든 것이 마을의 목사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러한 가치들은 네 아버지에게서도 나타난단다. 이러한 것들은 너의 삶 전체에 있어서 사람들과의 공동생활, 진정한 행위, 그리고 내적 행복을 위한 기초가 된단다.
너의 외가에서 형성된 옛 시민적 전통의 도시문화는 너의 외가에 좀 더 높은 책임성과 위대한 정신적 업적, 그리고 지도력을 위한 소명 의식을 가져다 주었을 뿐 아니라, 위대한 역사적 유산과 정신적 전통의 보호자가 되려는 뿌리 깊은 의무감을 또한 형성해 주었단다. 그 문화를 네가 이해하기도 전에 그 문화는 너에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양식을 제공해 줄 것이다. 네가 이 문화에 불성실하게 대하지 않는 한, 너는 결코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 중략 ~
네가 성장하게 되면 옛 목사관은 옛 시민계급의 집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소멸된 세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옛 정신은 오해의 과정과 퇴보의 시기를 거친 후, 그리고 후퇴와 내적 성찰, 유예기와 회복기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새로운 형식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과거의 토양에 뿌리를 내리는 일은 삶을 좀 더 어렵게 만들지만, 또한 동시에 삶을 더욱 풍요롭고 힘차게 만들기도 한단다. 인생에는 빠르거나 늦거나 간에 삶이 언제나 다시 그리로 돌아오는 근본 진리들이 존재한단다. 따라서 우리는 서둘러서는 안 되며,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단다.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신다.”고 성서는 말하고 있다.(전 3:15)
좋은 부모님의 가정에서 보호를 받고 자란다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격동의 시대에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이다. ~ 중략 ~ 정신적 삶이 전반적으로 빈곤해지는 세상이지만 너는 네 부모님의 가정에서 정신적 가치의 보금자리와 정신적 자극들의 원천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네 부모님이 이해하고 수련해 온 음악은 네가 혼돈에 빠졌을 때 너의 본질과 감각을 분명하고 순수하게 만들어 줄 것이며, 걱정과 슬픔에 빠졌을 때는 네 안에서 기쁨의 기음(基音, Grundton)을 일깨워 줄 것이다. 네 부모님의 부지런한 삶은 일찌감치 네 스스로 모든 일을 처리하고 자기 손을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너를 인도할 것이다. 사사로운 욕심 없이 다른 사람의 행복을 추구하는 네 부모님의 선물은 너로 하여금 많은 친구와 조력자들을 사귀도록 도와 줄 것이다. 네 부모님 가정의 신앙은 떠들썩하고 말이 많지는 않지만, 너를 위해 기도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즐겨 행하도록 가르칠 것이다. ~ 중략 ~
나는 네가 시골에서 자라게 되기를 바란다. ~ 중략 ~ 성서의 말씀에 의하면, 가인은 대도시의 창설자다. 앞으로도 세계적 대도시들이 존재하게 될 것이지만, 그것이 가진 찬란함은 비록 매혹적일지라도 유럽 사람들에게는 끔찍한 것으로 남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도시 탈출은 시골에 있어서도 완전한 변화를 의미한단다. 시골의 삶이 가지고 있는 조용함과 한적함은 이미 라디오, 자동차, 전화 그리고 거의 모든 생활영역의 조직화를 통해 크게 손상을 입었다. ~ 중략 ~ 고독과 고요함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찾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대의 변화 앞에서 발디딜 땅 한 조각이라도 가지고 있고 거기서부터 새롭고, 자연스러우며, 자족할 줄 알고, 만족스러운 낮의 일과 저녁의 휴식을 이끌어 내는 것은 분명 하나의 소득일 것이다.
이렇게 일상적인 삶의 언어로 이어가는 본 회퍼의 세례식 글은 후반부로 갈수록 매우 철학적이고 심도 있는 신학적인 언어로 바뀝니다. 설교에서 인용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부분들이 있지만 조금만 더 말해보겠습니다.
너는 오늘 그리스도인으로서 세례를 받게 된다. 오랜 역사를 가진 선포의 거창한 말들이 너에게 건네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 명령이 네게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도 다시 전적으로 이해의 시초로 되돌아가게 된다. 화해와 속죄란 무엇인가? 거듭나는 것과 성령은 무엇인가? 원수사랑, 십자가, 부활은 무엇인가?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삶과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란 무엇인가? ~ 중략 ~
본 회퍼 목사는 당시 교회의 현실을 개탄한 이후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그리스도인 됨은 오늘날 오직 두 가지 것, 즉 기도하고 인간들 사이에서 정의를 행하는 것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생각과 언어, 그리고 조직은 이러한 기도와 행위로부터 거듭나야 한다. 네가 성장하게 되면 교회의 모습은 매우 달라져 있을 것이다. 개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너무 성급하게 조직적으로 권력 신장을 추구하려는 모든 시도는 단지 변혁과 정화를 지체시킬 뿐이다. ~ 중략 ~
이제 본 회퍼 목사는 마지막으로 아기에게 권면의 말을 하는데, 히틀러 치하의 암울한 상황이지만 언젠가 인간이 다시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여 이 세계가 변화될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까지 그리스도인의 일은 조용하고 숨겨진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기도하고 정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다. 너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언젠가는 너에게 다음과 같은 말이 건네질 것이다. “의인의 길은 동틀 때의 햇살 같아서, 대낮이 될 때까지 점점 더 빛난다.”(잠언 4:18)
[어수선한 세상 한 가운데서]
디모데후서가 작성될 당시 교회는 대내외적으로 영지주의 계열의 이단, 열광주의, 복음을 저버리고 다시 율법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사람들 등 정말로 많은 잘못된 가르침들이 난무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간곡히 디모데에게 이런 명령을 한 것입니다.
그대는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하게 힘쓰십시오. 끝까지 참고 가르치면서, 책망하고 경계하고 권면하십시오.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건전한 교훈을 받으려 하지 않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네 욕심에 맞추어 스승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듣지 않고, 꾸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모든 일에 정신을 차려서 고난을 참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그대의 직무를 완수하십시오.(딤후 4:2-5)
오늘의 세상도 정말로 어수선합니다. 사람들은 마치 사사기 시대처럼 저마다 제 소견이 옳다고 하면서도 책임은 회피합니다.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머물러야 합니다. 오늘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조언한 것처럼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는 말씀을 붙들고,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참된 신앙을 권면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내 자신이, 우리 가정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위에 서 있는지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유혹에 넘어가고 세상 풍조에 휘둘리는 우리 자신을 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바울 사도의 말씀으로 다시 한번 권면합니다. “그대들은 그대가 배워서 굳게 믿는 그 진리 안에 머무십시오. 진리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합니다. 끝까지 참고 기다리면서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모든 일에 정신을 차리고, 전도자의 임무를 완수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길은 동틀 때의 햇살 같아서, 대낮이 될 때까지 점점 더 빛날 것입니다.”(잠언 4:18)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세상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주님께서는 이 어두운 세상에 밝히시려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빛의 사람으로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가 빛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여 주소서. 세상의 헛된 것들에 휘둘리지 말고 진리에 머물게 하여 주소서. 복잡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갈수록 방향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교회조차도 무력감에 휩싸여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주님의 백성이 다시 일어나야 하지만 준비되지 못한 채 주저주저 합니다. 주님! 우리가 다시 서게 하여 주소서. 말씀에 서고, 기도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정의를 행하게 하여 주소서.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마땅히 감당할 역할들을 하게 하소서. 생명을 살리고 사랑이 넘치도록 끝까지 힘쓰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하나님!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외양간에 소가 없고,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오직 주님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어수선하고, 숱한 어려움들이 여전히 밀려오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지켜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삶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정직한 믿음과 확고한 사랑을 이루기 위하여 늘 기도하길 원합니다. 지치고 고된 삶 속에서도 지혜로운 방식으로 서로를 돌보게 하시고, 삶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을 함께 나누며 해결하도록 도와 주소서. 동시에 내면을 풍성하게 하는 일에도 힘쓰게 하여 주소서. 어둠 속에 감춰진 빛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주님의 은총을 부어 주시고, 우리의 사랑이 더욱 힘 있고 아름답게 피어나게 하소서. 오늘 우리는 우리의 전 삶과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을 기억하며 주님께 예물을 드립니다. 이 예물이 하나님 나라 사역에 올바로 쓰이게 하소서. 특히 더 약하고 힘든 이들에게 작은 빛이 되게 하여 주소서. 사랑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말씀에서 배운 진리에 머무십시오.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십시오. 모든 일에 정신을 차리고 전도자의 임무를 완수하십시오.
* 축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람이 되어
여러분을 주님 곁으로 데려가게 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여러분의 힘이 되어
주님을 섬기게 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이 생명이 되어
여러분의 영혼을 넘치도록 채워 주시기를 빕니다.
전능하신 주님, 성부 성자 성령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영원히 여러분 곁에 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