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덕 목사] 정의가 깃든 새 하늘 새 땅을 기다리며 – 2024년 5월 12일
베드로후서 3장 13-18절
[가정의 달 오월을 맞으며]
흔히 오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스승의 날(15일)을 비롯하여, 성년의 날(1985년부터 셋째주 월요일), 2007년에 국가 공인 법정기념일이 된 부부의 날(21일)과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주자는 의미에서 만든 입양의 날(11일)까지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생각하고 기념하는 날들이 가득합니다.
모든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공동체적 존재이기 때문에, 최초의 관계를 익히고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딛게 하는 가정과 가족은 그야말로 중요합니다. 어떤 집안에 태어나서 어떤 가족 구성원과 함께 살아가느냐는 우리 인생의 행복에 결정적 요소가 되지요. 그래서 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은 만고불변의 진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가족들을 돌아보는 오월은 뜻깊은 달이기도 한데, 사람들 사이에서는 한편으로 두렵다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요즘에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부모님 용돈 드리고, 가족끼리 외식 한 번 하려고 해도 만만치 않은 경비가 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 사회는 1인 가구의 비율이 전체 가구의 34.5%나 되고 홀로 사는 이들의 숫자가 750만 명을 넘어서고 있기에, 가족을 주제로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오월은 더 외롭고 쓸쓸한 날들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 둘과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 하나를 둔 아빠가 있었습니다. 쉬는 날이 되자 삼남매가 와서 놀이동산에 놀러가자고 아빠를 계속 조릅니다. 아빠는 갈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계속 조르자 한 가지 꾀를 생각해 냅니다. 아빠가 꼭 가야 하는 이유 세 가지를 얘기해 보라고 한 것입니다. 갑작스런 아빠의 질문에 아이들은 할 말을 잃었습니다. 심심한 것 외에 딱히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물러설 수 없었던 맏딸이 아빠에게 역공격을 합니다. 그럼 이번에는 아빠가 우리와 함께 놀이동산에 가지 못하는 이유를 세 가지를 대보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빠는 미리 준비한 답을 바로 말했습니다. “돈 없어, 차 막혀, 그리고 피곤해” 완패를 당한 삼남매가 아빠를 뒤로하고 방을 나가는데, 유치원 다니는 막내 녀석이 문을 꽝 닫으며 한마디 했습니다. 이 말 때문에 아빠는 꼼짝없이 아이들과 함께 놀이동산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가 뭐라고 했을까요? “아빠는 도대체 왜 살아?”
[한 번뿐인 인생! 어떻게 살까?]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지금 이 시간 전국에서 우리와 함께 예배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왜 삽니까?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이 살아간다는 사람도 있고, 미래를 향한 부푼 꿈과 희망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있고, 사는 재미는 지금 여기에 있다며 매 순간을 즐기는 사람도 있고, 죽지 못해 산다면서 태어난 것이 불행이라고 여기는 비극적 인생도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사람은 한 번 태어나면 죽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한 번 사는 인생을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로 잘 사는 삶일까요?
제 큰아이가 여섯 살 때 일입니다. 제가 모 대학 교수의 설교에서 웃긴 예화 하나를 듣고 아내에게 해 주었습니다. 내용은 이러합니다. “한 노총각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산신령이 나타나서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줄 테니 말해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 총각은 산신령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돈, 여자, 결혼’이라고 외쳤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잠에서 깨어나 보니 이 총각은 돈 여자(미친 여자)와 결혼해 있더랍니다.”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한참 하고 있는데, 옆에서 제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큰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자기가 그 노총각이었다면 이렇게 말할 거야. ‘돈돈돈돈돈’”, 아이의 말을 듣고 저와 제 아내 모두가 뒤집어 진 적이 있습니다. 저는 당시 여섯 살짜리 꼬맹이인 제 큰아이가 왜 그렇게 말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아이가 무엇인가를 사고 싶다고 말했을 때, 저나 제 아내가 “이건 너무 비싸고, 지금 엄마 아빠는 돈이 없다.”라고 말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아이가 돈이 많으면 자기가 사고 싶은 물건을 살 수 있겠다 생각을 했겠지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돈이면 뭐든지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조금씩 아이에게 자리 잡혀가고 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앞으로는 다른 방식으로 아이에게 말을 해야겠구나 하고 반성한 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자기 삶에 대해 성찰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본주의의 물결, 경쟁과 승자 독식의 문화에 휩쓸릴 수 있지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베드로후서의 말씀 또한 이것을 경계합니다.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당시 그리스도교의 최대 위협이 되었던 영지주의 사상이 횡행하는 세상 한복판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편지의 저자는 사도들이 전해 준 예수 복음의 진리에 굳게 서라고 조언합니다. 육체와 물질은 악하기 때문에 함부로 다루어도 된다고 생각한 영지주의 사상과 종교에 당대 많은 사람이 휩쓸려 방탕한 생활을 하더라도(2:1-2), 여러분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면서,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경건에 신도간의 우애를 더하고, 신도 간의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고 합니다(1:5-7). 지금 저자는 편지의 수신인들과 함께 주님의 약속을 따라 정의가 깃들여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면서 “티도 없고 흠도 없는 사람으로, 아무 탈이 없이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있도록 힘쓰라”(3:13-14)고 충고합니다.
저자의 충고에 따라 오늘날 우리도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지식과 그의 은혜 안에서 자라나야 하고, 불의한 자들의 유혹에 휩쓸려서 자기의 확신을 잃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해야 하는데, 당대 사람들도 바울 사도의 편지를 잘못 해석하여 그른 길로 갔던 일들이 있다고 오늘 베드로후서의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잘 살아가는 길은 우리가 원래부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의 길을 걸으며 사는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존재는 어떤 모습일까요? 이철 신부님의 시 한편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숫자에 밝지 못해도 어려운 공식을 외우지 못해도
하늘의 별을 셀 수 있는 눈을 가졌다면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외국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해도
그들의 문화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인류의 시초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몰라도
색깔 다른 콩 두개가 어떤 모양의 콩을 만들어내는지 알수 없어도
아름드리 나무를 안아보고 놀랄 수 있다면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도 조각칼을 익숙하게 다루지 못해도
하늘의 구름이 무슨 모양인지 상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노래를 잘 부른다는 소리를 듣지 못해도
다룰 수 있는 악기가 하나 없어도
새와 함께 휘파람을 불 수 있다면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돈 세는 것이 서툴고 물정에 어리숙해도
음식을 나눌 수 있다면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줄서기를 잘 못해서 매번 손해를 본다고 해도
그럴싸한 말로 다른 이들을 내 편으로 만들지 못해도
세상의 주인이 누구신지 알고 믿는다면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글쓰기를 조금 못해도 책 읽기가 조금 서툴러도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뜻을 물을 수 있고 헤아릴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면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기보다
용서해줄 것을 먼저 생각할 수 있다면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반대하는’ 특기를 갖기보다 ‘찬성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서로 믿어주고, 서로 희망이 되어주고 서로 사랑할 줄 안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하느님을 닮았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 이철 니콜라오 신부/ 희망의 선물에서
우리 개개인이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은 삶,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거대한 사회 구조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개개인이 훌륭한 인격을 갖추는 것만큼, 우리의 사회가 보다 더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정의가 깃든 세상과 5.18 민주화 운동]
공장의 기계가 문제가 있으면 거기에서 만들어내는 제품에도 하자가 발생하듯이, 사회의 구조 자체가 문제가 생기면 한 개인의 훌륭한 성품도 한순간에 무너지고, 옳은 사람이 오히려 더 큰 해를 입는 일들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18세기 조선, 개혁 군주라고 불리는 정조는 중앙 요직에 있던 다산 정약용이 반대파의 공격을 받자 그를 보호하기 위해 잠시 황해도 곡산 부사직의 벼슬을 내립니다. 다산이 부임하기 전, 이 지역에는 농민 이계심이라는 이가 주동한 민란이 있었습니다. 군포(軍布) 비리가 만연하던 시절, 관에서 군포 대금을 200냥에서 900냥으로 대폭 올려 징수하자, 이계심은 농민 천여 명을 이끌고 관아로 가서 “곡산 부사 물러가라!”를 외치며 항의 시위를 벌입니다. 이 시위는 폭력적으로 해산되었고, 이계심은 수배자 신세가 됩니다. 관아는 이계심을 체포하려 했으나 등 돌린 백성들이 막아주어 체포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부임을 앞둔 다산에게 좌의정 김이소는 주모자는 물론 적극 가담한 자들을 잡아 사형에 처해 엄히 다스리고 국가 질서를 잡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다산이 부임하는 길목에 이계심이 갑자기 나타나 백성을 괴롭히는 열 가지 항목을 적은 문서를 전달하려고 했고, 관졸들에 의해 체포됩니다. 다산 정약용은 관아로 끌려온 이계심을 심문하고 최종적으로 무죄판결을 내리고, 석방합니다. 그의 판결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통치자가 밝은 정치를 펴지 못하는 이유는, 백성들이 제 몸의 편안함만 꾀하느라 백성들을 괴롭히는 통치자에게 항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 같은 사람은 천금을 주고 사야 할 사람이다.”(官所以不明者, 民工於謀身, 不以犯官也. 如汝者, 官當以千金買之也.)
따듯한 봄의 계절인 4월 5월과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6월까지, 우리는 자연과 가족이 주는 행복감에 젖어 들 수 있습니다만, 이렇게 우리가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우리 역사에서 수많은 이들이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자신의 몸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4.19 혁명이 그러하고, 5.18 민주화 운동이 그러하고, 6.10 민중항쟁이 또 그러합니다. 4월 5월, 6월을 지내면서 우리는 모두 우리의 역사를 또한 기억하고, 우리도 더 나은 사회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의 저자가 말한 정의가 깃들여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고 먼저 나선 사람들에 의해서 오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토요일은 5.18 광주 민주화 항쟁 44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5.18은 독재 권력의 공백을 틈타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려는 전두환의 군부 세력이 광주의 양민을 학살한 것에 대하여 광주시민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사건입니다. 우리는 5.18을 통해 국가기구가 절대 자명한 선이 아니며, 국민과 시민을 보호하는 부모님 같은 존재도 아니며, 언제든 폭력적 압제와 수탈기구로 변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국민을 지켜야 할 군인이 국민을 학살하고, 국가기구가 국민을 수탈하는 기구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늘 깨어 있는 정신으로 국가를 감시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 우리는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그렇게 많은 총기가 아무런 통제 없이 평범한 일반 사람들과 젊은 학생들의 손에 쥐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총기에 의한 범죄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기 나라 군대가 자신들을 죽이는 그런 터무니없고 경악스러운 상황에서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집단적으로 그토록 놀라운 질서와 도덕성을 증명한 것은 역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 광주시민들은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적절하게 행동했으며, 서로가 서로에 대해 헌신적이었고, 타자에 대해 친절했으며, 목숨을 유린하는 자들에 대해 용감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국가기구의 공권력이 완벽하게 정지되고, 고립된 상황에서 거대 폭력이 자행되던 그곳에서 이런 일이 가능했던 곳은 5.18 광주 이외에 어디에도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날 광주시민들은 계엄군의 봉쇄 작전 속에서도 주먹밥을 만들어 서로 나눠 먹고, 앞을 다투어 자기 피를 바쳐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자 하였습니다. 당시 그 자리에서 그 모든 것을 목격했던 김준태 시인은 이런 시를 읊었습니다.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1980년 7월 31일
저물어가는 오후 5시
동녘 하늘 뭉게구름 위에
그 무어라고 말할 수 없이
앉아 계시는 하느님을
나는 광주의 신안동에서 보았다
몸이 아파 술을 먹지 못하고
대신 콜라로나 목을 축이면서
나는 정말 하느님을 보았다
나는 정말 하느님을 느꼈다
1980년 7월 31일 오후 5시
뭉게구름 위에 앉아 계시는
내게 충만되어 오신 하느님을
나는 광주의 신안동에서 보았다
그런 뒤로 가슴이 터질 듯 부풀었고
세상 사람들 누구나가 좋아졌다
내 몸뚱이가 능금처럼 붉어지고
사람들이 이쁘고 환장하게 좋았다
이 숨길 수 없는 환희의 순간
세상 사람들 누구나를 보듬고
첫날밤처럼 씩씩거려 주고 싶어졌다
아아 나는 절망하지 않으련다
아아 나는 미워하거나 울어버리거나
넋마저 놓고 헤매이지 않으련다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이라면 피라미
한 마리라도 소중히 여기련다
아아 나는 숨을 쉬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사람이 만든 것이라면 하찮은 물건이라도
입맞추고 입맞추고 또 입맞추고 살아가리라
사랑에 천번 만번 미치고 열두번 둔갑하여서
이 세상의 똥구멍까지 입맞추리라
사랑에 어질병이 들도록 입맞추리라
아아 나는 정말 하느님을 보았다
베드로후서가 말하듯, 우리는 오늘날도 주님의 약속을 따라 정의가 깃들여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사회, 그런 나라는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이 피땀을 통해서 옵니다.
가정의 달, 온 가족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려면 더 큰 가족, 우리나라와 우리의 사회, 온 세계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을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나 개인의 안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넓고 큰 세상을 품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 소천하신 박선규 집사님께서 살아계실 때, 꼭 하고 싶으셨던 일이 하나 있으셨습니다. 모든 사정이 여의치 않아 결국 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바로 자신의 양장 기술, 재봉 기술을 원하는 분들에게 공짜로 전수해 주시는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아무리 부패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내어주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를 따라 살려는 사람들이 있는 한,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따라 정의가 깃들여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부푼 맘으로 기다리며 또 일구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길에 언제나 함께 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계속 새롭게 하시며 역사를 이끄시는 하나님!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불러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가족을 주시고, 친구와 동료를 주셔서, 외롭지 않게 하시고, 서로 도우며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아픔과 슬픔, 고통과 괴로움도 있습니다. 욕심과 어리석음, 남을 지배하려는 생각들이 때로 우리 삶을 망치고, 우리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도 남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며 정의가 깃들여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언제나 기다립니다. 기다림의 시간을 잘 견디게 하시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과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하여 한 걸음 내딛게 하소서. 주님의 형상을 날마다 회복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게 하소서. 우리의 친구이시자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거룩하시고 좋으신 하나님! 이 좋은 날 우리 모두를 주님 앞에 불러 모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이 예배하게 하신 은혜 감사합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주님의 따뜻한 빛을 쪼이니 지난 삶의 구김살들이 살살 펴지고, 주님의 자애로움과 미소로 우리의 굳어진 마음이 부드럽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 영혼의 눈에 끼었던 무지의 구름이 걷히고, 우리의 모든 이웃이 주님의 향기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은총에 감사하여 오늘 우리의 삶과 예물을 드립니다. 꼭 필요한 곳에 써 주소서. 일용할 양식이 필요한 곳에, 생명을 살리고 복음의 소식을 전하는 곳에 쓰이게 하소서. 생명사랑교회의 모든 사역을 통하여 우리가 날마다 진보하게 하시고, 더욱 더 주님과 가까워지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펴시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주님의 약속을 따라 정의가 깃들여 있는 새 하늘 새 땅을 기대하고 기다리고 만들어 가십시오.
* 축도
거룩하신 성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지닌 것들을 굳건히 지켜주시고
거친 바다에서 여러분을 보호하시며
육지에서도 여러분을 지켜주시기를 원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가는 여러분들의 발걸음을 이끌어주시며
구원의 길을 개척하는 여러분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참 평화의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