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한문덕 목사]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 – 2021년 10월 3일 세계성만찬주일
아모스서 2장 4-8절, 시편 84편 5-10절, 로마서 14장 7-12절
[각 교단의 총회를 보며]
9월에는 각 교단의 총회가 개최됩니다. 코로나 때문에 총회가 대폭 간소화해서 치러지지만 각 교단의 총회에서 다루어지고 결정되는 안건들을 보면 한국 개신교계의 흐름을 살필 수 있고, 한국 개신교의 미래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2018년 한국의 종교현황에 따르면 한국의 개신교 교단은 무려 374개나 되고, 이 중에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명칭을 달면서도 나누어진 교단이 286개입니다. 전국의 교회를 포함해 기독교 단체의 수는 약 5만 5천 104개 정도가 됩니다. 교인의 숫자로 보았을 때 장로회 교단 중에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측과 통합측이 가장 교세가 큽니다. 그 다음은 여의도순복음 교회로 대표되는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와 감리교라고 흔히 줄여서 부르는 기독교대한 감리회입니다. 교회 숫자로 보았을 때는 예장 통합측과 합동 그리고 감리회와 기독교대한침례회가 앞 순위에 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중에서는 합동과 통합의 총회 결정 사항들이 교계와 사회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우리 교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에 속해 있기 때문에 우리 교단의 총회에서 어떤 결정이 이루어졌는지를 살피는 것이 또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세 교단 모두 전년에 비해 교인의 수가 감소하였습니다. 예장 합동은 교인 17만명, 교회 72개가 감소했습니다. 통합은 11만 명의 교인이, 우리 교단은 7954명이 감소했습니다. 교단의 총회가 내는 통계는 1년 전 것이기 때문에 이번 통계는 2019년부터 2020년으로, 코로나 2년째인 올해의 상황은 반영된 것이 아닙니다. 올해의 통계는 내년 총회에서나 알 수 있는데, 급격한 감소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 됩니다. 예장 합동은 교인수와 함께 교회도 감소한 반면 통합과 우리 교단은 교인수는 감소했지만 교회 숫자는 늘어서 개교회들의 규모가 줄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목회자의 숫자는 모두 늘었는데, 이 또한 목회자의 삶이 예전보다 훨씬 어려워졌음을 예상하게 됩니다.
예장 합동의 총회 주제는 “은혜로운 동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도 교단의 인식 변화를 요구하며 여성목사 안수와 준목, 설교권(강도권)을 부여해 달라는 안건들은 모두 부결되었습니다. 성경의 문자적 해석에 매여서 아직도 여성이 목사가 될 수 없고, 설교할 수도 없고, 목사에 준하는 지위조차도 부여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한편 예장 합동의 총회장인 배광식 목사가 목회하는 대암교회의 장로인 김기현 현 국민의 힘 원내대표는 합동 총회에 참석해서 에스더서의 모르드개가 한 말을 인용하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통과를 막겠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국민 10명 중 6-7명이 찬성하여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모든 차별을 금지하자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을 말해야 하는 교회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총회 주제는 “은혜로운 동행”이지만, 모두가 은혜롭게 함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 사회적 약자들은 제외되고 있습니다. 그나마 목사의 임기를 73세로 연장하려는 안건은 부결되었고, 신앙을 빙자하여 연일 정치집회를 열고 있는 전광훈 목사의 집회에는 참여하지 말 것을 통과시킨 것은 다행입니다.
예장 통합 총회에서 가장 뜨겁고 사회적인 이슈가 된 것은 명성교회의 세습 관련 법안입니다. 헌법위원회가 청원한 헌법시행규정 16조 1의 5항, 즉 담임목사 은퇴 5년 이후 세습이 가능하도록 하는 개정안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명성교회의 불법 세습을 교단차원에서 눈감아 주고 정당화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수많은 이들의 반대에 부딪혀 이 개정안의 결의를 보류하고 1년간 더 연장하도록 했습니다. 각 노회별로 여성 총대 1인을 파송하자는 결의는 매년 거의 지켜지지 않아 예장 통합 총회에서는 여성 대표들의 모습을 거의 볼 수 없고, 매년 목회자 연금 운용을 두고 서로 믿지 못해 옥신각신 하는 모습은 올해도 비슷했습니다. 이단성이 농후하고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인터콥이나 전광훈 같은 부류에 대한 이단 판별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칼날을 대지 않으면서도 성 소수자들에 대한 시각에서는 매우 보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이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습니다. 예장 통합은 총회장을 상근직으로 하도록 결정했는데 이것은 매우 의미 있는 시도입니다. 상근직 총회장은 총회가 결정한 정책을 일관되게 시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단은 어떨까요? 교단에 애정이 많은 저는 내부 사람으로서 교단의 현재의 모습과 미래를 생각할 때 솔직하게 답답한 마음이 많이 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한국 개신교가 사회의 발전에 따라가지 못하고 후진성을 보이는 이 때, 우리 교단은 몇 가지 중요한 결정을 했습니다. 우리 교단은 올해 여성 총회장을 배출했습니다. 한국 개신교 장로교단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예장 합동이 여성에 대해서는 목사 안수뿐만 아니라 설교도 못하게 하고 있는 지금, 우리 교단은 여성 총회장이 탄생한 것입니다.
여성 총회장 외에 이번에 우리 교단이 최초로 한 것이 있습니다. 목사·장로가 아닌 평신도 6명에게 총회 ‘정회원’ 자격을 부여하기로 한 것입니다. 총회에 참여하는 총대들이 교회 구성원 전체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것이 한국 개신교계의 고질적인 질병입니다. 장로회는 중세 교회의 교황 직제를 비판하며 평신도들의 대표를 뽑아 회의체를 구성하는 것으로서 종교개혁 정신을 보여 준 교단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경우만 해도 청년 대표, 여성 대표, 장애인 대표 등 교인들 전체의 비율에 따라 골고루 교인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합니다. 미국 장로회의 총회에는 3-40대 비율이 43%나 되는데, 우리 교단도 총회에 가보면 대체적으로 60대 이상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인 자유로운 개인의 평등한 공동체의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교회 안에 깊이 뿌리내린 가부장적 조직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장 총대 약 650명 중 남녀 신도회와 청년회 대표로 6명의 정회원 인정은 정말 부족한 숫자이지만, 평신도 대표성을 가진 이들이 정회원이 되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한 걸음입니다.
다른 교단과 달리 우리 교단의 지향과 방향은 사회적 약자들을 어떻게 함께 품고 갈 것인가 하는데 있습니다. 많은 교단이 성경을 운운하고 신학과 교리를 내세우며, 목회 질서 및 교단의 정체성을 지킨다면서 여성·장애인·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고 차별하고 있고, 이런 이유로 한국 개신교회는 이 사회에서 하나의 섬처럼 동떨어지고 비호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2018년부터 존속 중인 성소수자목회연구위원회는 1년 더 기한을 연장해서 연구하기로 했고, 연구위원회가 다양한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도록 목사·신학자뿐만 아니라 청년과 외부 전문가도 포함시켜, 어떻게 하면 성소수자들과도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 지를 고민합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 당회가 서울북노회를 통해 이번 총회에 헌법 개정안을 낸 것이 있습니다. 정치 제4장 20조 ‘목사의 자격’에 “목사는 신앙이 진실하고 교수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서 신체가 건강하고 행위가 복음 선교에 적합하며 가정을 잘 다스리고 타인의 존경을 받으며(딤전 3:1-7) 다음과 같은 자격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고 나와 있는데, 여기에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조장할 수 있는 “신체가 건강하고”라는 단어를 빼 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번 총회에서 통과 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증 장애인도 목회자가 될 수 있도록 다각도로 연구하자는 안도 통과시켰습니다. 성 인지 감수성을 반영해, 교회 성폭력 사건 관련 피해자 신상을 보호하고 사건 처리를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개정했고, 목사가 되기 위해서 ‘양성평등과 성폭력 예방 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하고, ‘성폭력 예방 의무 교육 이수 확인서’도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이로서 우리 기장 교단은 더 안전하고 포용력이 넓은 교단이 되었습니다.
[아모스의 외침]
이제 성경을 좀 보겠습니다. 아모스는 드고아에서 양을 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일거에 예언자가 된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예언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모스는 소명을 받았고, 그의 마음은 주님의 열정으로 불타올랐습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마음과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아모스의 눈에는 온갖 민족들이 저지른 범죄들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았다는 유다나 이스라엘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나 주가 선고한다. 유다가 지은 서너 가지 죄를,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그들이 주의 율법을 업신여기며, 내가 정한 율례를 지키지 않았고, 오히려 조상이 섬긴 거짓 신들에게 홀려서, 그릇된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유다에 불을 보내겠다. 그 불이 예루살렘의 요새들을 삼킬 것이다.”
하나님을 섬겨야 할 신앙의 백성들이 주님의 율법과 율례를 업신여기고 지키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맘몬에게 홀리고, 세상의 온갖 유혹에 넘어간 것처럼 그 옛날 유대인들도 거짓 신들에게 홀려서 그릇된 길로 갔습니다. 그들에게 아모스는 심판의 불을 선고합니다. 유다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에 이어 북이스라엘도 혼쭐이 납니다.
“나 주가 선고한다. 이스라엘이 지은 서너 가지 죄를,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그들이 돈을 받고 의로운 사람을 팔고, 신 한 켤레 값에 빈민을 팔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힘없는 사람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 처넣어서 짓밟고, 힘 약한 사람들의 길을 굽게 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여자에게 드나들며,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다. 그들은 전당으로 잡은 옷을 모든 제단 옆에 펴 놓고는, 그 위에 눕고, 저희가 섬기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벌금으로 거두어들인 포도주를 마시곤 하였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는 짓들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습니다. 신발 한 켤레 값에 가난한 이들을 노예로 팔아 버립니다.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의로운 사람도 악의 무리에 넘겨 주고, 힘 없는 사람들의 머리를 땅에다 짓이기고, 가뜩이나 기를 못 펴는 연약한 사람들을 길에서 밀쳐 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여자에게 드나들었다는 것은 다산과 풍요를 바라는 고대 신전 창기들의 이방 의식이었습니다. 야훼 신앙이 타락하였고, 세속주의에 물들어서 하나님의 성전에서도 두려운 마음,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이 없고 포도주에 취하며, 향락에 빠져 있습니다.
코로나 2년을 보내면서 사회적 양극화가 너무 심해지고 있습니다. 국가들이 돈을 풀면서 그 돈이 가진 자들에게만 모이고 있습니다. 쿠팡의 노동자들은 밤샘 작업을 하며 자신들의 육체를 점점 갉아 먹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미성년 자식들에게 20억 30억씩 부정한 방법으로 유산을 물려줍니다. 전염병 대유행의 악재 속에서 사각지대로 몰린 사람들은 삶을 포기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데, 한 국회의원의 아들은 6-7년 일하고, 30대 초반에 퇴직금으로 50억이나 받습니다. 일반인들은 작은 범죄에도 꼼짝 없이 벌금을 물고 감옥살이를 하지만 기득권자들은 엄청난 범죄를 저질러도 요리조리 법망을 피해 활개를 치고 다닙니다.
불의한 세상, 불평등한 세상, 금수저, 흙수저가 나뉘고, 개천에서는 더 이상 용이 날 수 없는 세상에서는 그리스도인들도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야 합니다. 세상 한 가운데 살아가는 존재로써 모두가 당하고 있는 고난을 피해가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어두운 그늘 아래 있다고 해도 그리스도인들은 뭔가 달라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바울 사도께서 말씀하신대로 자기를 위하여 살거나 죽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것이고,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우리에게는 돈이나 권력, 자신의 신념이나 생각, 어떤 이데올로기가 주인이 아니라, 바로 예수께서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으로 모시는 분은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분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주님을 위하여 죽는다면 우리 또한 주님을 따라서 남을 위해 나를 내어주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자세로 살아가면 사실은 우리도 살고 남도 살고 인류가 구원을 받습니다.
오늘 시편 저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 샘물이 솟아서 마실 것입니다. 가을비도 샘물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으며 올라가서, 시온에서 하나님을 우러러 뵐 것입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하나님과 더불어 순례기를 가는 사람들은 눈물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샘물을 마시며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힘을 얻고 더 얻어서 시온에서 하나님을 뵐 것이라고 합니다.
이번 우리 교단 106차 총회의 주제는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입니다. 지금 우리가 어둠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곧 빛이 오리라는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둠 후에 빛을 보려면 그 어둠을 뚫고 나갈 믿음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악인의 장막에는 거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온전히 하나님의 집 문지기로 살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두운 시대를 보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바울의 조언]
오늘 바울 사도께서는 이 어려운 시대에 교회 공동체가 살아가는 매우 중요한 원칙과 방법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각각 자기 일을 하나님께 사실대로 아뢰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하며 각자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일을 사실대로 아뢰라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다른 교단 총회의 상황을 언급했지만, 실제로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제대로 하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하는 모든 사역이 정말 주님을 위한 것인가를 물으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어떤 것을 내 놓을 수 있는가를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서 어떻게 한 자루의 촛불을 켤 수 있을지, 과거의 낡은 것은 벗어 던지고 변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새롭게 주님의 선교를 할 수 있을지 찾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 신앙 나눔방이라는 카톡 단체방이 있습니다. 코로나 19 시대, 비대면 온라인 예배를 시행하면서 생긴 변화에 대한 글이 올라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생각해 볼 만한 것이어서 인용해 보려고 합니다. 채경숙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정말 오랜만에 여유 있는 주일을 보냈습니다. 일찍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 시댁 식구들과 모두가 좋아하는 찜질을 하고, 맛있는 저녁을 함께 먹고(물론 방역 지침 기준을 지키면서^^) 시댁 식구들에게는 의외의 시간이었는지, 저에게 계속 좋았다고 하시네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시댁 식구들에게 주일(일요일)에 나는 늘 교회에 가야하는 사람이었거든요.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서 얻은 소소한 행복과 여유를 느낀 주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채 장로님께서 말씀을 하시자 김준기 집사님이 응답을 했습니다.
“와~저도 채경숙 장로님처럼 자유로운 주일을 보냈습니다. 금요일 예배를 드린지라 주일엔 친구 가족과 함께 캠핑을 갔었습니다. 일요일 모임엔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었는데요. 친구들은 코로나 덕분에 이런 일이 다 있다며 반색을 하더라구요. 진솔이가 어린이 예배를 드리니 예배가 아예 뭔지 모르는 다른 아이들에게 살짝 호기심을 갖게 해 주더라구요.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다가가려면 너무 구별된 삶은 오히려 전도에 방해가 되겠구나, 그들과 평범한 일상에 녹아져서 반감 없이 조금씩 드러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신 형식(율법)에 의존해 믿음을 유지해오던 제 스스로가 형식을 넘어서 믿음을 굳건히 할 수 있게 훈련해 나가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저 기특한데요ㅋㅋㅋ)”
일주일에 하루, 시간을 따로 내어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성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일 성수라는 율법에 얽매이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신앙인으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 꼭 세상과의 분리, 율법과 교리의 맹목적인 순종은 아닐 것입니다. 채 장로님과 김준기 집사님의 일화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선교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미국 뉴욕에 계신 이승재 성도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조직문화신학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의 문자메시지도 받았습니다. 온라인 비대면 시대에 우리 교회의 유튜브와 신앙 자료들, 홈페이지를 보고 함께 신앙을 나누고 싶어서 보내 온 편지들입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이 밝아 오고 있습니다. 현명한 그리스도인들은 어둠 속에서도 밝아 오는 그 빛을 보며, 그것을 앞당겨 자신의 자리에서 촛불 한 자루를 먼저 켜는 이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모두 어둠 속에서 오히려 빛나는 한줄기의 빛이 되면 좋겠습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하나님, 남의 눈의 티를 제거하려는 우리의 어리석음과 교만함을 없애 주소서. 온전히 자기에게 맡겨진 소명과 사명에 집중하게 하여 주소서. 주님께서 맡겨주신 일의 완성도를 높이게 하여 주시고,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하나님, 자기만을 사랑하려는 본능에서 벗어나 형제자매와 이웃을 돌아보는 사랑의 행위로 한 걸음 내딛게 하여 주소서. 내 자신만을 생각하지 말고 모두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소서. 주님의 순례길을 생각하며 어둠을 물리치고 빛을 불러 오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말씀으로 생명의 세상을 창조하시고, 부활로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날에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만나려는 생명사랑 믿음의 식구들에게 마음의 평안을 허락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 삶에 일렁이는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하나님의 역사와 성령님의 평화와 위로가 우리를 감싸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지금 이 시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옵니다. 우리들의 삶과 생각과 진실한 마음을 드립니다. 우리가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그 사랑의 징표로 드리는 이 예물을 온전히 받아 주시옵소서. 가난으로 하루가 고단한 이들을 위로하시고, 지친 몸과 마음으로 삶의 의욕을 잃어가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함께 하여 주소서. 그 때 우리가 드린 예물을 사용하여 주소서. 우리가 온전히 주님만을 섬기고 맘몬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하여 주소서. 생명이 온전히 주님께 달려 있음을 믿으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펴시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주위가 어둡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시고, 먼저 한 자루의 촛불을 켜십시오.
*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의 거룩한 친교가 어둠 속에서도 밝아 오는 빛을 향해 나아가는 생명사랑교우들과 이 시간 전국에서 함께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