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덕 목사] 다시 “작으나” “건강한” 교회 – 2024년 2월 4일
빌립보서 1장 1-11절
[바울의 애정 어린 편지]
2022년에 안식년을 마치고 와서 주일 설교는 창세기부터 성경의 순서에 따라 본문을 정해서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신약의 순서를 따라가다 보니 연속적으로 바울의 편지를 다루게 됩니다. 지난 주일에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오늘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편지는 주고받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한껏 돈독하게 해 주고, 내밀한 사적인 감정도 드러내게 됩니다. 직접 만나서 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편지를 통해서는 더 부드럽게 전할 수 있습니다.
또 편지는 일정한 형식을 띱니다. “000에게”라고 수신인을 표시하고 인사말을 하며 안부를 묻고 본론을 이야기하며 편지를 쓴 날짜를 적고 마지막에 보내는 사람의 이름과 서명을 합니다. 공적인 문서는 받는 사람 외에는 뜯지 못하도록 밀봉을 하기도 하고, 어떤 서신은 비밀리에 주고받아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바울이 쓴 편지 중에는 빌레몬에게 보내는 사적 편지도 있지만 대개는 교회를 세우고 다시 선교여행을 떠난 지도자가 남아 있는 교인 전체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편지에는 교회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신앙인의 삶에 대한 주옥같은 충고의 말씀이 가득합니다. 또한 오늘날 바울의 편지를 읽는 우리는 이런 편지들을 통해 바울 사도의 신앙과 신학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첫 교회들의 상황과 어려움에 대해서도 알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서두를 시작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바울과 디모데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살고 있는 모든 성도들과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우리는 이 한 구절을 통해 몇 가지 정보를 알게 되는데, 우선 빌립보 교회가 성도와 감독, 집사들이 있는 제법 규모와 조직이 갖추어진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편지를 보내는 사람으로 디모데도 언급함으로써 빌립보 교회를 함께 섬긴 동역자의 소중함도 깨닫게 됩니다. 또 바울이 자신을 소개하는 말에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만 말합니다. 다른 교회에 쓴 편지와 달리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도가 되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즉 빌립보 교회만큼은 바울의 사도됨을 충분히 인정해 주었기에 자기가 사도인 것을 증명해야 하는 불필요하고 비본질적인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빌립보가 어떠한 도시이며, 또 어떤 과정을 통해 빌립보에 교회가 세워졌는지 알게 된다면 이 한 구절은 더욱더 마음을 울리는 구절이 됩니다.
[빌립보 교회]
빌립보는 주전 358년에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마케도니아의 왕 빌립 2세가 세웠기 때문에 그의 이름에 따라 명명된 도시입니다. 주전 42년에 안토니우스와 아우구스투스가 시저를 시해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연합군을 물리친 곳이 바로 빌립보였고, 그 이후에 로마가 이 지역을 점령한 뒤 로마의 퇴역 군인들이 이주해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주전 30년에는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로마 식민지의 지위를 얻게 됩니다. 정복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한 로마는 정복한 곳을 다양한 방식으로 다스렸습니다. 하나는 그곳에 로마 시민들을 이주시키고, 그 이주민들을 통해 식민지를 다스리는 방법입니다. 이런 식민지를 크게 라틴 식민지(coloniae Latinae)와 로마 식민지(coloniae civium Romanorum)로 나누는데, 라틴 식민지에는 참정권이 없는 라틴 시민권을 부여하고, 로마 식민지에는 참정권이 있는 로마 시민권을 부여했습니다. 그래도 이들은 로마 시민으로 취급받은 것이고, 다른 도시들은 로마에게 세금을 바치고, 로마 사람들보다 못한 취급을 당해야 했습니다. 이런 도시들은 로마와의 친소관계에 따라 동맹시(civitates liberae et foederatae), 자유시(civitas libera), 종속도시(civitas stipendaria)로 분류되었습니다. 도시별로 차등을 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빌립보는 로마 식민지에 해당되었기에 본국 로마와 같은 지위에 오른 것이며, 같은 로마 시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퇴역 군인이 많았기에 로마에 대한 충성심이 남들보다 훨씬 더 강했습니다. 군인들은 로마의 정복 전쟁에 참가해서 겪었던 무용담들을 늘 늘어놓았습니다. 로마 황제와 로마 제국에 대한 충성과 자부심이 높은 이곳에 바울 사도가 처음으로 그리스도교 교회를 세웁니다.
빌립보 교회는 주후 49년에서 50년경 바울 사도의 제2차 전도 여행 도중에 유럽 땅에 세운 최초의 그리스도교 교회였습니다(행 16:11-15 참조). 선교여행을 할 때마다 바울 사도는 유대인들의 회당을 찾아 그곳을 선교의 시작점으로 삼았는데, 빌립보에는 유대 회당조차 없었습니다. 그만큼 선교하기 어려운 곳이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빌립보는 원래 바울 사도가 계획했던 선교여행의 목적지도 아니었습니다.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 전하시는 것을 막으시고, 환상 중에 마케도니아 사람이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어 마지못해 빌립보에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서도 오래 있지도 못합니다.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의 축귀 사건으로 여종의 주인들에게 송사를 당하여 감옥에 갇히게 되고, 이내 빌립보에서 추방당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 빌립보 교회는 성장했고, 바울 사도가 어려울 때마다 재정적으로 도왔을 뿐만 아니라(빌 4:15-16, 행 18:5, 고후 11:8-9),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이 상황에서도 에바브로디도 편으로 후원금까지 보내왔던 것입니다.(빌 4:18)
이제 바울 사도가 빌립보 교인들에게 쓰는 편지 앞부분이 잘 이해가 됩니다.
“나는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 중략 ~ 여러분이 첫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한 일을 여러분 가운데서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내가 여러분 모두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로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내가 여러분을 내 마음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내가 갇혀 있을 때나, 복음을 변호하고 입증할 때에, 내가 받은 은혜에 동참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심정으로, 여러분 모두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는, 하나님께서 증언하여 주십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지요. 유럽에 세운 첫 교회이고, 그 첫날부터 감옥에 갇혀 있는 지금까지 빌립보 교인들은 지속적으로 바울을 도왔으니, 바울 사도의 마음속에는 늘 빌립보 교인들이 간직되어 있고, 늘 그들이 그리웠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쓴 두 번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섬기기 위하여 삯은 다른 여러 교회에서 받았습니다. 그것은 다른 교회에서 빼앗아 낸 셈입니다. 내가 여러분과 같이 있는 동안에는 빈곤하였지만, 여러분 가운데서 어느 누구에게도 누를 끼친 일은 없습니다. 마케도니아에서 온 교우들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조달해 주었습니다. 나는 모든 일에 여러분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썼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고후 11:8-9절)
고린도 교인들에게 어떤 폐도 끼치지 않았다고 하면서 마케도니아에서 온 교우들이 바울 사도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조달해 주었다고 하는데, 바로 빌립보 교회 교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빌립보 선교는 바울 사도가 원한 것도 아니요, 유대인 회당 하나 없는 매우 낯선 곳인데다가, 로마 황제 숭배가 철저하고도 확고하게 뿌리박힌 곳이어서, 사실 교회를 제대로 세우지도 못하고 그저 자주 옷감 장사를 하는 루디아댁을 만나 그 집안 사람들에게 세례를 준 것이 전부였고, 점쟁이 귀신 축출 사건으로 곧 추방되었는데, 그 교회가 성장해서 감독과 집사와 성도들의 조직을 갖추게 된 데다가, 바울이 어려울 때마다 도왔으니 얼마나 감사했을까요? 그래서 빌립보서에는 감사의 언어가 가득합니다.
[바울의 조언]
바울이 이런 빌립보 교인에게 자기가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통찰력으로 더욱 더 풍성하게 되어서, 여러분이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순결하고 흠이 없이 지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의의 열매로 가득 차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게 되기를, 나는 기도합니다.”
지난주에 설교했던 본문에서는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기도했던 바울 사도가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실천하는 빌립보 교인들의 그 사랑이 지식과 모든 통찰력으로 더욱 더 풍성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지식과 통찰력으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분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순결하고 흠이 없이 지내기를 빕니다. 빌립보가 황제 숭배가 지극한 곳이었기에 이 조언이 가슴을 치며 다가옵니다. 모든 제도와 문화가 로마 황제 숭배로 점철된 곳에서 순결한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실로 목숨을 건 투쟁과 같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의의 열매로 가득해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게 되기를 기도하는데, 바울 사도가 불의한 자들에 의해서 지금 감옥에 잡혀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런 박해로 의의 행진을 멈추지 말라는 격려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담긴 바울 사도의 조언과 기도에는 지난 주일과 마찬가지로 제가 우리 생명사랑 교인들과 전국에서 우리와 함께 예배하고 목회와 선교에 동참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흔들리고, 한국 개신교가 추락하고 퇴보하는 이 엄중한 시국에, 코로나라고 하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3년이나 겪으면서도 제가 늘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빌립보 교인들의 손길과 같은 많은 도움의 손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0여 년 전 맨몸으로 세운 생명사랑교회가 지금 이렇게 성장하고, 또 많은 사역들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온 교우와 전국에 뜻있는 신앙인들이 함께 마음과 힘을 모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에 따라 우리에게 하늘의 지혜를 주시고, 갈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으로, 사건의 현장이나 교회 안에서 모두 전진하는 행보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를 통해 선한 일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앞으로 그 일을 완성하시려면 이제 우리는 해오던 사역을 끈기 있게 지속할 뿐만 아니라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또 뚜벅뚜벅 걸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사랑을 풍성하게 하는 지식과 통찰력, 그리고 분별하는 힘이 매우 중요합니다.
바른 지식과 올바른 통찰력, 분별하는 능력이 있을 때만 우리는 순결한 믿음을 유지할 수 있고, 큰 실수를 줄이며 흠 없이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다시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우리 생명사랑교회의 3대 목표입니다. 오늘은 그 첫째 목표인 “작으나 건강한” 교회를 다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작으나 건강한 교회]
제가 부임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은 2016년 초에 이 표어를 가지고 두 주에 걸쳐서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작으나 건강한” 교회를 풀어서 “젊고 건강한 교회”와 “작지만 강한 교회”라고 제목을 달았었습니다. “작으나”라는 말이 목표가 되는 것이 어색했고, 건강함을 넘어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강한 교회가 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다시 “작으나 건강한” 교회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첫째로 “작으나”라는 말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에 당했던 수탈과 비참한 한국전쟁을 겪고 전 국토가 폐허가 되었기에 우리에게는 굶주림이 일상이었습니다. 세계의 질서가 제국주의로 바뀌고, 또 미국과 소련이 충돌하고, 다시 미국과 중국이 패권을 다투는 근현대 역사의 혼돈 속에서 우리는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약소국의 설움을 당하며 지난 100년을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현대 한국인들의 문화 유전자에는 늘 풍요롭고 크고 강한 것이 좋다는 생각이 있고, 그래서 더 많고 더 크고 더 강력한 것을 지향하는 성향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강력한 군대를 만들어서 남의 나라를 침공하는 일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군사력 지수로 세계 6위에 해당하는 나라이고, 무기를 수출하는 나라로서는 세계 8-9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에 우리나라의 무기가 이스라엘로 가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우리의 무기가 직간접적으로 우크라이나로 흘러 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어느새 남을 죽이는 살상 무기 판매국으로 배를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께서는 “나의 소원”이라는 글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말씀하셨고,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며”, “인류가 현재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셨지만, 어느새 우리나라는 모든 제국이 꿈꾸고 성서의 정신이 경계했던 힘 숭배 문화가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작고 약한 것은 그것이 아무리 고귀한 것이어도 너무 쉽게 무시당하고, 짓밟힙니다. 교회마저도 그러합니다. 작은 교회는 큰 교회 앞에서 너무 무력해 보이고, 실제로 작은 교회를 목회하는 목회자나 교인들은 스스로 주눅이 들어 있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작은 교회는 능력도 없고, 별 볼 일 없다는 생각이 만연하고, 큰 교회가 하는 사역의 양과 비교되면서 많은 그리스도인과 목사들이 더 큰 교회가 되기만을 꿈꿉니다.
그런데 우리 생명사랑교회의 3대 목표의 첫째는 “작으나”라고 시작합니다. 세부 지침으로 높고 커다란 것이 아닌 낮아짐과 작음을 지향한다고 명시하면서 실제로 정관에는 성인 교인 등록수가 200명이 넘는 순간부터 분가를 준비하게 되어 있습니다. 작고 건강한 교회가 아니라 “작으나”라는 말을 쓴 것은 세상의 관점 즉 작은 것은 무력하고, 작은 것은 별볼일 없다는 인습적 사유에 저항하는 말입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의 책도 있지만 우리는 작으나 강하고, 작으나 능력 있고, 작으나 매우 귀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오히려 작아야 더 나을 수 있다는 장점들을 충분히 드러내고자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규모가 작음에도 작은 것으로 인해서 무시를 당하는 일이 없으려면 교회의 구성원들 하나하나가 더욱 주님의 성전으로서 온전해야 한다는 사실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말씀하신 것처럼 교인들 한명 한명이 사랑을 바탕으로 하여 거기에 지식과 통찰력을 더하고 그래서 교인 누구를 만나도 올바른 분별을 해내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건강한” 교회입니다. 건강하다는 말은 모든 질병이나 장애로부터 자유롭고 몸의 각 부분이 제 역할을 하며, 그것이 조화롭게 협력할 때 이뤄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몸이나 정신이 모두 튼튼하고, 균형 잡혀 있을 때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개인의 몸과 마음을 넘어서서 어떤 공동체가 건강하다면 그것은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그것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마치 한 몸처럼, 사랑하는 한 가족처럼 서로를 아끼며 공동체가 지향하는 것들을 막힘없이 잘 해낼 때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심리 치료사이자이자 가족 치료의 일인자라고 불리는 버지니아 사티어는 건강한 가족, 즉 행복이 넘치는 가정을 일구고, 또 자녀의 올바른 양육이 이뤄지는 가정에는 반드시 4가지의 요소가 작동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생기 넘치고 행복하고 아이가 맑고 밝게 자라는 가정의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 1) 자존감이 높고, 2) 직접적이고 명료하며, 구체적이고 솔직한 의사소통이 이뤄지며, 3) 가정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 인간적이며 적절하고, 상황이 바뀌면 언제는 유연하게 바꿀 수 있으며, 4) 관계 맺기에 적극적이며, 자기 의견을 제시하고 책임을 집니다.
즉 자존감, 솔직한 의사소통, 유연한 규칙, 책임적 관계 맺기라는 네 가지 요소가 건강한 공동체를 꾸리는데 결정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려면 우리 교인들 모두가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 분명히 인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이미 세상의 소금과 빛입니다. 교만하거나 오만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아끼고 존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택하셨고, 예수께서 우리를 제자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 사귀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주님 앞에서 잘못한 것들은 솔직하게 털어놓고, 서로 용서하면서 받아줄 줄 알아야 합니다. 상처받는 내 맘에서는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해 낼 수 있습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야 하고, 남의 눈의 티보다 내 눈의 들보를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사귐입니다.
우리 공동체가 건강하려면 우리가 정한 정관과 시행세칙들을 기반으로, 또 목회운영위원회나 제직회, 공동의회에서 함께 논의한 규칙이나 사역들을 책임 있게 수행하고 지켜내야 합니다. 동시에 시대가 변하고, 주변 환경이 바뀌면 그에 따라 적절하게 우리고 바꾸고 변화하면서 적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단단한 신앙을 다지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동시에 목회와 사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신앙생활은 주일에만 교회에 모이는 방식에서 상당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교회당으로 모이는 것만큼, 각자 있는 곳에서 신앙을 훈련하는 방법, 교회만이 아니라 세상에서 만나는 이들 가운데 새로운 선교를 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작으나 건강한 교회입니다. 건강하기 때문에 생기 있게, 넘치는 생명력을 가지고 목회와 선교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주인공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셨기 때문이고, 예수님께서 바로 여러분을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우주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이끄시는 하나님! 태초의 시간에 우리를 택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주님의 놀라운 섭리와 계획 속에서 우리 생명사랑 신앙 공동체를 세워 주신 은혜 감사드립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생명과 사랑이 아닌 돈과 힘을 쫓을 때 우리를 부르셔서 주님의 사역을 맡기신 줄 압니다. 우리는 작으나 건강한 교회로 서고자 합니다. 젊고 생기 넘치는 믿음의 공동체, 선교의 공동체가 되고자 합니다. 금빛을 발라 휘황찬란하게 빛나던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자리에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는 새로운 성전이 세워진 것처럼, 우리 한명 한명이 그리스도의 화신이 되고,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으로 서고자 합니다. 늘 우리 곁에 계셔 주시고, 주님과 늘 동행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하나님!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한 해도 주님의 은총을 누렸사오니 올 한 해도 감사가 넘치는 한 해가 되길 빕니다. 주님 올 한해, 우리의 삶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첫사랑을 회복하기 위하여 늘 기도하길 원합니다. 세계적 전염병이 지나고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들이 이어지지만 지혜로운 방식으로 서로를 돌보게 하시고, 삶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을 서로 도우며 함께 헤쳐 나가게 하여 주소서. 동시에 우리의 내면을 풍성하게 하는 일에도 힘쓰게 하여 주소서. 무엇보다 믿음으로 마음의 근육을 키우게 하시고, 어둠 속에서도 감춰진 빛을 바라보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성실한 사랑이 더욱 힘 있고 아름답게 피어나게 하소서. 오늘 우리는 우리의 전 삶과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을 기억하며 우리 자신을 주님께 예물로 드립니다. 이 예물을 받으시고 이 예물이 하나님 나라 사역에 올바로 쓰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작으나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갑시다. 우리 각자가 주님 거하시는 성전이라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우리의 사랑에 지식과 통찰을 더하여 흠 없고 순결한 믿음의 삶을 살아갑시다.
* 축도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으로 한 해를 살아가는 여러분의 얼굴에 하나님의 기쁨이 있어, 여러분을 보는 모두에게 그 기쁨이 전해지길 빕니다.
생명의 하나님 광채가 여러분의 목을 두르고,
사랑의 그리스도 빛이 여러분을 에워싸며,
은총의 성령 바람이 여러분에게 불어오기를 빕니다.
이제는 우리를 찾으시는 성부와, 우리 죄를 사해주시는 성자와, 우리를 가르치시는 성령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은총이, 작으나 건강한 주님의 교회를 일궈가는 생명 사랑 모든 믿음의 지체들 위에, 함께 예배하고 선교하는 전국의 모든 성도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길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