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한문덕 목사] 너희는 거룩하라! – 2022년 11월 27일
레위기 19장 1-4, 9-18절
[복잡다단한 삶의 현실과 인간의 소원]
지금 카타르에서는 월드컵이 한창이고, 전 세계 축구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불태우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우승 후보이고 최고의 축구 선수 중 한 명인 메시가 활약하는 아르헨티나를 2대 1로 이기고, 이어 일본이 독일의 전차군단 상대로 2대 1 역전승을 이뤄내자 월드컵의 열기와 재미는 한층 더 해가고 있습니다. 모두들 보셨겠지만, 우리나라는 우루과이를 상대로 정말 멋진 경기를 펼쳤습니다. 경기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하였고, 벤투 감독의 빌드업 축구와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한 김민재를 비롯한 전 선수의 활약이 돋보였던 경기였습니다. 손흥민 선수가 다치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도 있는 경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번 카타르 월드컵은 축구 외에 다른 문제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8개의 월드컵 경기장을 새로 건설하는 과정에서 투입된 인도, 파키스탄,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 이주 노동자들이 50℃가 넘는 사막 한가운데서 종일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면서 일주일에 60시간 이상 근무하면서 휴일도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한 방에서 12명씩 생활하는 불결한 숙소에서 병든 노동자들이 발생하는 등 이런 가혹한 근로 환경 탓에 6천 751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사망했습니다.
또한 카타르가 엄격한 이슬람 국가로서 여성과 성수소자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비판하는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인 해리케인은 차별 반대(NO DISCRIMINATION) 완장을 착용하고, 잉글랜드 선수들이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는 의미의 한쪽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를 하였으며, 영국 공영 방송 BBC는 월드컵 개막식을 중계하지 않았습니다. 또 이란 선수들은 자신들의 국가가 연주될 때 침묵을 하였습니다. 지금 이란에서는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구금된 22세의 쿠르드계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사망한 이후 가장 크고 전례 없는 시위가 일어났고, 정부가 이를 폭력으로 진압하면서, 300명이 넘는 이란 국민이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에 인도네시아에서는 지진이 일어나 최소 268명이 사망하고 1000명 이상이 부상당했으며, 151명이 실종 상태입니다. 튀르키예(이전 터어키) 국경에는 쿠르드계 무장 세력들이 쏜 로켓이 떨어져 어린이를 포함하여 3명이 사망하고 10명 넘게 부상을 입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한편 튀르키예는 이에 맞서 쿠르드계 세력 목표물 471곳을 공습하고 지상군도 투입하겠다고 합니다. 한편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기반시설이 파괴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올 겨울에 수백 만 명이 에너지 보건 위기로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다고 세계보건기구(WHO)가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지구촌 전체를 돌아보면 한쪽에서는 축제의 분위기가 또 다른 한쪽에서는 초상집 분위기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목회자인 저도 목회를 하다 보면 이런 경우를 종종 맞게 되는데, 오전에는 돌잔치에 가고, 저녁에는 상가집을 가야 하는 경우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야말로 넓고 사람들은 누구나 각기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취향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르고 경제 형편도 다르고 추구하는 목표와 이상도 다릅니다. 그래서 전 세계 인류가 신께 기도하는 내용도 저마다 다릅니다.
2003년에 개봉한 <브루스 올마이티>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짐 캐리 주연의 코미디 영화인데, 평범하지만 뛰어난 입담 덕에 소문난 기자로 일하는 주인공이 계속되는 불운에 분노하면서 이 모든 게 하나님 탓이라며 하늘에 대고 삿대질을 하며 분풀이를 합니다. 그런 주인공에게 삐삐로 문자가 날라 오고, 그 연락처를 통해 실제로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으로부터 7일 동안 전지전능의 능력을 허락받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주인공의 머릿속에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기도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는데, 환청에 미쳐버릴 것 같은 주인공에게 신이 나타나 모든 인간들의 소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해줍니다. 주인공은 마음을 먹고 전지전능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일을 해 보겠다고 집중하는데 수백만 건이나 되는 기도를 처리하는 것이 만만치 않자, 컴퓨터 웹사이트의 이메일 형태로 기도를 정리합니다. 일일이 다 응답해 주는 것이 귀찮아진 주인공은 모든 대답을 YES로 통일해 버리는데, 모든 이들의 기도가 응답 되면서 세상은 아수라장이 되고 맙니다.
이렇게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세계에서 과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무슨 꿈을 꾸고, 어떤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요? 주님께는 어떤 내용의 기도를 드려야 할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어서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23억 명이나 되는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에게 물어본다면 저마다 다른 대답을 내놓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코미디 영화처럼 만약 하나님께서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를 동시에 들어 준다면 영화처럼 이 세상도 똑같이 아수라장이 될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지만 실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하나님께 투사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언제나 자기 자신, 자신의 처지와 환경을 최우선 순위로 놓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각자가 저마다의 삶의 기준이 되고 또 시대의 분위기나 왜곡된 욕망이 우리들의 삶을 주도해 갈 때, 꿈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엉망진창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이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어떤 사람이든지를 막론하고 인류에게 경고하면서 제안한 한 마디가 있으니, 바로 그것은 “너희의 주님이신 야훼 하나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모두 거룩하라!”는 말씀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이 무엇인가?]
제가 교육부를 담당하는 전도사 시절,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면서 가장 고민했던 것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주기도문 초반에 나오는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라는 간구를 어떻게 설명해 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을 어린이 청소년의 언어로 알아듣게 설명해 주는 것이 정말 만만치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국어사전에서 “거룩하다”라는 말을 찾으면 “성스럽고 위대하다”, “뜻이 매우 높고 위대하다”라고 나오는데, “성스럽다.”라는 말은 동어반복일 뿐 “거룩”의 의미를 설명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주기도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에 대한 설명은 우리 생명사랑교회 유튜브 주의 기도 강의 12강 “거룩하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보시면 됩니다. 거룩함에 대한 종교학자들의 설명과 어디에서 거룩함을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지, 거룩함 체험이 우리들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제가 설명해 놓았습니다. 오늘 예배 후에 주의 기도 강의 12강도 들으시면 훨씬 더 좋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읽은 레위기서 19장을 중심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 “야훼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거룩하니, 너희도 모두 거룩하라!”는 말씀에 주목해 보겠습니다.
‘거룩’이라는 명사의 히브리어 단어는 코데쉬(קֹדֶשׁ)이고, ‘거룩한’이라는 형용사의 히브리어 단어는 카도쉬(קָדוֹשׁ)이며, 동사로 ‘거룩하다’는 동사 카다쉬(קָדַשׁ)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로 거룩을 나타내는 단어의 뜻은 전부 “구별”과 “분리”를 나타냅니다.
이사야서 6장에 보면 야훼 하나님을 가리켜서 ‘거룩하다’란 형용사 <카도쉬>를 세 차례나 반복합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이것은 하나님께서 지극히 거룩하신 분임을 나타낸 것인데, 지극히 거룩하다는 말은 세속적 영역으로부터 매우 멀리 떨어져 분리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어 원어의 뜻으로 보았을 때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것은 모든 피조물의 세계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피조물들이 불완전하고 유한하고 상대적이라면,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무한하고 절대적인 분입니다. 인간 세계에는 각종 악행과 추함이 있지만 하나님은 지고지선(至高至善)하시며, 그 어떤 흠도 없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과는 다른 분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하나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명령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과 같을 수는 없을 지라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의 일반 사람들과는 뭔가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이 달라야 할까요? 레위기 19장 3절부터 37절까지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세상 사람들과 다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은 자로서 부모를 공경하고, 안식일을 지키며, 자신을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않으며, 때에 따라 하나님께 제사하고 예배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은 가난한 이들과 난민들을 위해 밭 모퉁이에 있는 곡식까지 다 거두지 않고, 떨어진 이삭은 남겨 두며, 포도원의 열매도 다 일부 남겨 놓습니다. 도둑질 하지 않으며, 사기 행각을 일삼지 않고, 거짓말 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하지 않습니다. 이웃을 억누르거나, 착취하지 않으며, 품꾼에게는 반드시 정당한 품삯을 밀리지 않고 줍니다. 장애인들의 인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며, 공정한 재판을 합니다. 남에 대한 비방이나 험담을 하지 않고, 이웃에게 해를 끼치면서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동족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으며, 이웃이 잘못하면 잘 타일러서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고, 한 백성끼리 앙심을 품거나 원수를 갚는 일이 없도록 하며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합니다.
하나님과 같은 거룩한 백성이 된다고 할 때 지켜야 하는 모든 명령을 가만히 살펴보면 십계명이나 주기도문의 구조와 같이 하나님과의 관계 문제를 포함하는 수직적 차원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포함하는 수평적 차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온 율법의 핵심이라고 하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확인되는 바, 하나님과의 수직적 차원보다 인간과의 수평적 차원의 명령이 훨씬 더 많다는 것입니다.
즉 야훼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는 명령에 순종할 때 우리는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우리의 이웃들과의 관계를 훨씬 선하고 아름답고 참되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명령 중간 중간에 명령을 내리시는 분이 바로 야훼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라는 표현이지요. 이런 표현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등장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이것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며 강조하듯이 나오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약자들에 대한 보호가 필요할 때입니다. 9-10절의 결론 부분, 곡식과 포도를 모두 다 추수하지 말라는 구절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 신세인 외국 사람들이 줍게, 그것들을 남겨 두어야 한다.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14절 “듣지 못하는 사람을 저주해서는 안 된다. 눈이 먼 사람 앞에 걸려 넘어질 것을 놓아서는 안 된다. 너는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알아야 한다. 나는 주다.” 이렇게 가난한 사람과 난민, 이주 노동자, 장애인들에 대해 그들의 삶을 보장해주고 그들의 인권을 지켜 주라는 명령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바로 야훼 하나님이시며 하나님 백성들의 주인이라는 것을 명시하면서 야훼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합니다. 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지 말 것과 자신의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 다음에도 “나는 야훼다.”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거룩함”의 의미를 생각할 때, 종교생활의 철저함만큼이나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 우리가 사는 세상과 이 사회의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밑줄을 치며 입으로 성경 말씀을 달달 외우고, 방언으로 멋들어지게 기도할 줄 안다고 해도, 우리 생활에 밑줄을 치지 못하고, 이웃에게 위로와 지혜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다면 결코 거룩하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거룩함의 성육신(成育身)]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은 피조세계와 전적으로 다른 분임을 말씀드렸습니다. 특별히 세상의 악함과 추함, 부정함과 더러움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는 없습니다. 거룩하지 않은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갔다가는 거룩함에 의해 부정한 것들이 모두 소멸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도 지성소에 들어갔다가 죽기도 한 것입니다. 거룩함 자체이신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것들은 견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가 태양에 가까이 다가가면 그 열과 빛을 견딜 수 없듯이 그러한 것입니다.
이런 사실 때문에 고대 인류에게 하나님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따뜻한 불이 인간에게 매우 유용하지만 모든 것을 집어 삼키기도 하기에 걷잡을 수 없는 불 앞에서 엄청난 공포에 휩싸이는 것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이 두려움을 없애고자 신을 달래기 위해 온갖 행위를 했습니다. 심지어 인간을 제물로 바치기도 하였고, 오늘날 현대인의 합리적인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그리스도교 신앙 전통의 하나님은 다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찾아오시고 모든 부정한 것들을 깨끗하게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6장에 보면 예언자 이사야가 거룩하신 하나님과 대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인 스랍들이 큰 소리로 하나님을 노래하는데 그 소리 때문에 문지방의 터가 흔들리고, 성전에는 연기가 가득 찹니다. 놀란 이사야는 이렇게 외칩니다.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6:5)
그렇지요. 모든 인간은 자신이 쏟아 놓은 말로 인해 부정하게 됩니다. 언제나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지요. 동시에 자신이 쏟아 놓은 모든 말을 다 지키는 사람도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사실 모두가 거짓말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자신의 부정함을 알았던 이사야는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자 죽음의 공포를 느낍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나요? 여러분! 아시는 분 있습니까? 스랍들 가운데 하나가 제단에서 타고 있는 숯불을 가져다가 이사야의 입에 대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악은 사라지고, 너의 죄는 사해졌다.”(6:7)
하나님은 이사야를 죽이시지 않고 깨끗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야훼 하나님의 놀라운 점입니다. 야훼 하나님은 이제 이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냅니다. 그 분이 오셔서 세상을 깨끗하게 하시고 모든 부정한 것들을 몰아내지요. 혈루증 걸려서 부정하다고 여겨졌던 여인은 예수의 옷자락을 만지며 깨끗하게 되었고, 예수님께서는 죽은 야이로의 딸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죽은 자를 살려냅니다. 즉 태양 광선이 지구에 도달하여 모든 생명을 살리고, 딱딱하게 얼어 있는 것들을 녹여 주고, 곰팡이를 없애버리듯이, 하나님의 거룩함은 인간 세계로 흘러 들어와서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예언자 또한 하나의 환상을 보는데 바로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와 온 세계를 가득 채우고 바다로 가는 모습입니다. 그 때 에스겔에게 환상을 보여준 하나님의 사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흘러 나가서, 아라바로 내려갔다가, 바다로 들어갈 것이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죽은 물이 살아날 것이다. 이 강물이 흘러가는 모든 곳에서는, 온갖 생물이 번성하며 살게 될 것이다. 이 물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면, 그 물도 깨끗하게 고쳐질 것이므로, 그 곳에도 아주 많은 물고기가 살게 될 것이다. 강물이 흘러 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모든 것이 살 것이다.”(47:8-9)
이런 에스겔의 비전은 요한계시록에 오면 새로운 성전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이 땅에 세워지는 것으로 변화합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21:3-4)
이렇게 하나님의 거룩함은 세상과 분리되어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내려오고, 부정한 것들을 모두 치유하고 회복하고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거룩함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께서 뭐라 하셨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고전 3:16-17)
그렇습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함께 가시며, 우리가 가는 곳마다 치유가 일어나고, 우리가 가는 곳마다 불의가 사라지고, 악에 물든 모든 것이 깨끗하게 되고, 슬피 우는 자들의 눈물이 그쳐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오늘은 대림절 첫 주입니다. 대림절은 거룩한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것을 기억하고, 또 다시 오실 날을 기대하는 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살아간다면 주님은 이미 오셨고, 우리를 통해서 세상을 치유하실 것입니다. 내가 치유되고, 우리 가족이 치유되고, 세상이 온전하게 회복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이란 하나님께는 예배로 표현되고, 나 자신의 삶에서는 정결로, 이웃에 대해서는 나눔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도 지속적으로 명령합니다. “너희의 하나님인 나 야훼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설교 후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여 주소서.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 세속적 욕망을 멀리하고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게 하여 주소서. 우리의 삶이 경쟁과 이기주의에 물들지 않고 생명과 정의와 평화를 일구는 사랑의 삶이 되게 하여 주소서. 주님께서 허락하신 생명수가 우리의 가슴과 배로부터 흘러나오게 하시고, 우리가 가는 곳마다 거룩한 하나님의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소서.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자기를 낮추고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살아내는 진정한 생명사랑의 교회가 되게 하여 주소서. 그래서 모든 교회가 거룩을 회복하고 사람과 세상을 바꾸는 일에 도움이 되게 하여 주소서. 야훼 하나님께서 거룩하니 우리도 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여 주소서.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거룩하시고 좋으신 하나님! 말씀으로 생명의 세상을 창조하시고, 부활로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날에 우리를 한 자리에 불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만나고자 나온 생명사랑 믿음의 식구들에게 마음의 평안을 허락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 삶에 일렁이는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하나님의 역사와 성령님의 평화와 위로가 우리를 감싸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 지금 이 시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옵니다. 우리들의 삶과 생각과 진실한 마음을 드리려고 나옵니다. 우리가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그 사랑의 징표로 드리는 이 예물을 온전히 받아 주시옵소서. 가난으로 하루가 고단한 이들을 위로하시고, 지친 몸과 마음으로 삶의 의욕을 잃어가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힘을 주소서. 그 때 우리가 드린 예물을 사용하여 주소서. 우리가 온전히 주님만을 섬기고 맘몬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하여 주소서. 생명이 온전히 주님께 달려 있음을 믿으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칭찬받기를 기다리지 말고, 동료와 친구들을 칭찬하십시오. 존경받기를 기다리지 말고, 이웃을 존중하고 존경하십시오. 변두리에 서서 남들을 비판하지 말고 스스로 사태가 나아지도록 무엇이든 행하십시오. 세상이 바뀌기 바란다면 기다리지 말고 지금 시작하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세상이 원하는 구원의 주체가 되십시오. 솔선하십시오.
* 축도
여러분 위로 아름다운 성령의 바람이 불기를,
여러분 곁에 약동하는 생명의 영이 계시기를,
여러분 안에 따스한 온기와 치유하는 숨결이 있기를,
여러분 둘레에 활기찬 웃음과 함께 맞잡은 손길들이 있기를 빕니다.
이제는 지난 10년의 세월을 지켜 주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은총이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가 거룩함을 입어 나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꾸려는 생명사랑 모든 믿음의 지체들 위에, 함께 예배하고 선교하는 전국의 모든 성도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길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