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장동현 목사] 창조세계를 회복하는 녹색교회 – 2022년 6월 5일

로마서 8장 18-19절

올해도 39회 환경주일을 성수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세계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기도하는 소중한 예배에 초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한국기독교장로회 환경파송 목사로 한국교회환경연구소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장 생태공동체운동본부 사무국장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환경선교, 생태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나타내는 상징이 있습니다. 별칭, 별명들을 갖곤 합니다. 동물이나 식물의 이름을 자신의 닉네임으로 사용합니다. 저의 별칭은 산수유입니다. 혹시 산수유 들어보셨나요?

산수유는 봄에 가장먼저 꽃을 피우는 식물입니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보다 먼저 봄을 알리는 노란색 꽃을 피웁니다.

저희 아이들이 다녔던 공동육아 어린이 집에서 엄마아빠들 이름이 어려워 별명을 부릅니다. 전 산수유로 소개를 했는데, 어린아이들은 산수유도 힘들었는지 저를 탕수육으로 부르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환경선교목사 장동현을 기억해주셔도 좋고 산수유, 혹은 탕수육만 기억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산수유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산수유는 봄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이기 때문에 기후변화 지표식물로 개화시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개화시기가 급속히 빨라지고 있고 다른 꽃들과 함께 피기 때문에 기후위기가 어떤 상태인지 알게 하는 꽃이기도 합니다. 이른 봄 산수유가 꽃을 피울때마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를 실감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살림청 연구소에 조사에 의하면 서울의 산수유 꽃 개화시기가 매년 2일찍 앞당겨지고 있습니다.

올해도 제 39회 환경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이번 환경주일의 주제는 ‘창조세계를 회복하는 녹색 교회’입니다. 부재는 ‘기후위기시대 탄소중립의 소명으로’입니다. 창조세계의 회복은 구체적으로 탄소중립이라는 실천방법이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2020년 10월 탄소중립을 선언했습니다. 243개 지방자체단체들도 지난 5월 탄소중립을 선언했습니다. 전세계 국가들이 앞 다투어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출범한 윤석열 정부도 시대에 역행하는 개발정책과 원전산업을 강조하는 정부지만 탄소중립은 어쩔 수 없이 이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단 타소중립 실행방안에서 문제를 이르킬 수는 있습니다.

탄소중립은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탄소배출을 제로로 하는 것을 뜻합니다. 화석연료인 석유나 석탄을 태워 공장을 돌리고 전기를 생산하는 것은 온실가스를 발생시킵니다. 그래서 탄소배출을 하지 않는 재생가능에너지로 에너지전환을 해야합니다. 서울제일교회 옥상 태양광 발전소처럼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태양광 패널을 만들고 설치하고 전기를 생산하는 것은 탄소를 발생시킵니다. 이렇게 탄소배출을 제로로 할 수 없으니 생산된 탄소만큼 나무를 심거나 탄소포집기술을 이용해 탄소배출을 제로로 하자는 것입니다. 유엔에서 지난 2015년 파리기후협약을 통해 2050년 까지 탄소배출을 제로로 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작년 파리기후협약이 구체적으로 이행되는 신기후체제가 열렸습니다.

한국교회의 주요교단들도 작년 5월 한국교회 2050 탄소중립 선언을 진행했습니다. 우리교단도 작년 9월 106회 총회에서 탄소절감에 앞장서기로 다짐하고 기장교단 탄소중립 선언문을 채택했습니다. 올해는 교회 탄소절감 로드맵을 작업중입니다.

탄소중립은 탄소절감,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에너지 절감, 절약 하자는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수 십년 동안 이야기해 온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해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것으로 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탄소중립은 헐씬 복잡하고 입체적이고 근본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2050년까지 탄소배출을 제로로 하지 않으면 지구가 파국을 맞이한다는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과학적 근거들과 통계들을 통해 인간을 포함한 창조세계의 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고통을 당하고 멸종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NDC는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수치로 탄소중립의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탄소배출을 제로로 하기위해서는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40%줄여야 합니다. 이것은 엄청난 희생과 고통을 요구합니다. 이번 정부가 NDC를 지키지 않고 빠져나가기 위해 꼼수를 피우고 있지만, 우리정부가 IPCC 기후변화협약에 제출한 로드맵의 수치는 꼭 이행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탄소중립 이행에는 큰 함정이 있습니다. 국가온실가스감축계획이 있고 종교계 탄소중립 선언을 했고, 기업은 ESG 경영 등을 실천하고 있고 곧 개발될 탄소포집기술 등 있으니 탄소절감 수치가 마치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하지만 기후위기의 본질은 사업화 이후 자연에 대한 인간의 착취와 파괴에 있습니다. 창조세계를 파괴하고 착취하는 우리의 삶의 양식을 전환하지 않고는 기후위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탄소량을 줄인다고 근원적인 해결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최근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사회경제적 전환, 사회구적의 변화를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올해 11차를 맞이하는 독일 칼스루에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에서도 기후위기 대응, 탄소중립이 큰 주제로 다뤄집니다 특히, WCC는 10여년 전 부터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생명의 경제를 주장해왔습니다. 오늘날 인류의 탐욕과 욕망으로 구성된 시장자본주의를 극복하지 않고는 기후위기 대응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입니다. 탈성장과 생태문명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진정한 의미의 탄소중립은 지금 우리의 삶의 방식 특히, 사회경제적 불평등 구조를 전환해야한다고 강조합니다. 생태정의의 측면에서 지배구조를 전환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사이에서 또 인간과 자연사이에서 착취 지배, 생명죽임의 사회경제적 구조를 변화시켜야합니다. 기후위기는 가장 가난한 계층과 국가, 사회적으로 돌봄이 필요한 공동체, 소외된 사람들에서 더 큰 피해를 입히고 있습니다.

WCC는 ‘아가페 프로세스’(Alternative Globalization Addressing Peoples and Earth)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시장자본주의에 맞서 생명을 지키는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합니다. 아가페 사랑에 따르면 생명이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이 사랑은 시장자본주의에 맞서 생명을 살릴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끄는 거룩한 힘입니다. 세계교회는 이러한 힘에 의지해 생명의 경제라는 대안적 패러다임을 선포하고 선교를 통해 구체적인 실천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삶의 방식은 상호부조와 돌봄이 공동체의 중요한 목표로 다시 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사회경제학자들이 강조하는 커머닝, 커머스 등은 공공성의 강화를 뜻합니다. 그래서 더욱 공공성과 공동체성을 강조해온 기독교신앙과 교회공동체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은 교회에 마지막 도전이자 반전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로마서의 성경말씀은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사도의 메시지는 2000여년 전 당시나 기후위기에 처해있는 오늘이나 우리의 삶이 어떻게 새로워 질수 있으며 어떻게 새로워져야하는지 신앙의 비전, 대안적 비전을 전해줍니다. 초대교회의 신앙은 변화와 전환에 기반해 있습니다. 바울은 회심이라는 개인적 신앙의 전환을 기초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신앙의 변화에서 시작했지만, 바울의 신앙은 기존질서, 로마제국의 팍스로마나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제국의 군사적 힘과 폭력에 저항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희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 생명은 로마제국의 황제의 정의 평화, 생명과는 다르다는 것을 로마서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존의 문명이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는 현실에 도전하는 것을 뜻합니다. 도미니 크로산과 마커스 보그라는 역사적 예수를 연구한 신학자들은 바울을 재해석하면서 급진적인 바울사상이 곧 급진적인 예수의 신앙을 따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교회의 변화는 분명 구체적인 탄소중립에 참여하는 실천을 필요로 합니다. 탄소중립 로드맵과 탄소절감 실천은 당장 실천해야합니다. 하지만 우리 삶의 근본적인 신앙의 성찰도 필요로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생명에 대한 이해와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더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생명에 대한 특히, 야생생물들, 이웃생명들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많이 성찰했습니다. 이웃생명들을 함부로 하고 그것들의 삶을 침범할 때 우리 인류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하는지 코로나 19는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이야기할 때는 두 가지의 특징을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과학에서 생명을 정의 할 때는 살아있는 것을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생명체는 그 자신이 계속해서 살려고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죽기위해 살아가는 생명체는 없습니다. 생명체는 어떻게든 그 개체를 유지하려고 살려 노력합니다. 죽어서도 계속해서 유전을 통해 자손을 통해 계속 생명체의 종을 이어가게 됩니다. 이러한 생명의 특징은 자기를 위함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에서 이야기하는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의 특징이 있습니다. 생명체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다른 생명체를 죽여서 먹고 살아갑니다. 다른 생명의 희생과 섬김, 죽음을 통해 생명은 유지가 됩니다. 바로 생명의 또 다른 정의는 타자를 위함 합니다. 쉽게 이웃을 위함입니다.

우리 신앙에서 말하는 생명의 이해는 나를 위함과 타자를 위함이 함께 온전히 통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희생과 죽음을 통해 세상의 생명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바로 생명의 사건입니다. 자기의 가장 소중한 생명을 내어놓아 다른 생명을 살리는 생명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과 죽음을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은 바로 희생과 생명의 내어줌에 있습니다.

39회 환경주일을 맞이하며 이 시대의 풍조를 반성해봅니다, 인류가 파괴하는 창조세계와 죽어가고 멸종되는 생명들을 돌아볼 때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변화시켜 교회를 온전하게 전환할 때입니다. 생태적 전환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을 다시 찾는 것이고 죽어가고 파괴되는 이웃 생명들과 창조세계를 지켜내는 일입니다.

생명사랑교회 교우님들도 예수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에 함께 하시길 소망합니다. 파괴되고 생명이 죽어가는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품고 생명을 살려내는 예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소망하며 환경주일 말씀을 나눴습니다.

잠시 침묵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