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육성한 목사] 불안으로 나아가는 신앙 – 2022년 10월 31일
사무엘기상 16장 1-7절, 시편 40편 5-10절, 마태복음서 22장 41-46절
[안식년을 보내며 깨달은 것]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갑니다. 멀게만 느껴지던 11월이 이제 이틀이 남았고, 한문덕 목사님은 6개월의 안식년을 마치고 복귀를 하십니다. 시간의 흐름은 상대적입니다. 삶의 어떠한 순간이 즐겁고 의미가 있을 때, 우리는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느낍니다. 반대로 의미가 없고, 괴로운 순간이라면 시간이 참 더디게 갑니다. 지난 주일에 교우들이 6개월이 금방 지나갔다고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을 보니, 그런 의미에서 한문덕 목사님의 안식년은 생명사랑교회에 참 의미가 있는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놀랍게도 저희 부교역자들의 6개월도 금방 지나갔습니다. 내외적으로 작은 성장을 이루면서 뜻있는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절대 좀 더 있다 오셔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안식년을 보내면서 깨달은 몇 가지 경험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는 안식년이 교역자에게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배와 설교, 행정, 교육, 목회적 돌봄, 대외활동 등 많은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담임 목회자는 정말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저도 아주 살짝 맛보았습니다. 모두가 바쁘게 지내고 있는데, 목회자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주하게 지내다 보면 목회자라면 특별히 건강해야 할 내면을 돌보기 힘들고, 내보내는 것은 많은데, 충분히 채워질 시간은 부족하니 교회와 세상을 위해 필요한 메시지를 내기가 어려워집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목회 계획을 세우고 장기적인 실행 방안을 구상하려면 기존의 목회에서 잠시 물러나 기도로 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건강한 내면과 외면을 만들고, 양질의 내용을 갖추고, 충분한 고민과 기도로 목회를 하기 위해서 안식년이라는 시간은 참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 번째는 생명사랑교회는 목회자와 교우들 사이에 신뢰가 굉장히 두텁다는 것입니다. 사실 주변을 둘러보면 1년 정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안식년을 보내는 분들도 계시지만, 2~3개월 정도로 짧은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의 여건으로 인해 목회자에게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목회자들이 불안한 마음에 짧은 기간만 다녀오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담임 목회자가 없을 때, 교인들의 신앙이 흔들리거나 혹은 어떤 문제가 생길까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안식년를 잘 보내기 위해서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서로 믿고, 또 교인들이 서로 신뢰해야 합니다. 한문덕 목사님도 우리 교우들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계셨고, 교우분들도 서로를 믿으며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니 안식년이 가능했고, 또 잘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우리 교회가 이제 꽤 안정적인 교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담임 목회자가 없는 상황에서도 동요하지 않고 신앙을 잘 유지하시고, 각자의 역할을 묵묵히 잘 해내시고, 부교역자의 부족한 모습도 너그럽게 감싸주시면서 이 기간을 정말 잘 보냈습니다. 우리 교회가 하고 있는 다양한 모임과 사역들을 이제 매우 자연스럽게 잘 해내고 있고, 교우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우리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추구하며 형성하고 있는 신앙이 단단하게 자리가 잡혀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또 교회의 물적 토대만이 아니라, 우리 교회가 함께 만들어온 신앙의 모습과 분위기가 매우 안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지난주 수요일부터 주일까지 생명사랑교회의 목회를 배우고 돌아간 목사후보생분들이 우리 교회에서 참 편안하고 사랑으로 품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소감을 전해주었습니다. 교회에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그런 느낌을 전해주었는데, 저는 이것이 단순히 공간의 외적인 모습이 주는 느낌이 아니라 이 공간을 움직이는 우리 교우들이 형성하는 신앙과 영성을 그분들도 느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정과 신앙의 관계]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안정적이고 또 행복하게 목회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떠하신가요? 안정적이고 행복함을 느끼며 지내고 계신가요? 우리는 모두 풍요롭고 안정적인 삶을 원합니다. 불안하고 힘든 상황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삶의 질이 더 좋아지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삶이 안정적이고 편할 때 우리에게 한가지 고민이 듭니다. 내 삶을 지탱하고 구성하는 주변 환경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왠지 모르기 신앙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다른 교회 장로님과 식사를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대화 주제가 교역자들의 생활로 자연스럽게 흘러갔습니다. 저는 그때도 생명사랑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에서 보장해주고 있는 좋은 사역 환경에 대해서 살짝 자랑했습니다. 주 5일제라던가 4대 보험 가입, 육아휴직 등의 아주 기본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장로님은 저의 이야기가 무언가 불편했는지 한마디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역자 삶이 너무 편안하면 영빨이 떨어져. 간절함이 있어야지.” 그때 당시에는 사실 욱하게도 했었지만, 한걸음 물러나 생각해 보니 어려움 가운데서 우리 안에 일어나는 간절함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때도 있으니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삶이 어려워야 신앙이 좋아진다는 생각은 오랜 기간 신앙생활을 한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해보셨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런 생각에 동의하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기독교가 지금까지 열심히 선포해온 메시지가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언제나 복음과 구원을 말해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받게 된다는 복음은 사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삶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로 축소되어 이해됐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어려운 삶을 극복하는 것은 우리 신앙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한국교회는 실제로 이러한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경험, 신앙 안에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경험은 믿음의 첫 시작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기독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도 그러했고, 지금도 교회에서는 주님께서 어려움 가운데서 구원해주신다는 복음은 계속 전해집니다.
가난, 고통, 불행, 연약함 가운데 있을 때, 우리의 신앙은 더 강하게 작동합니다. 어려움을 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함께 극복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이러한 경험이 한번, 두 번 쌓이다 보면 우리 안에 고난을 겪고 그것을 극복함으로 이루어지는 신앙의 한 형태가 자리 잡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우리가 부족한 것이 별로 없고 삶도 안정적이고 행복하다면 우리의 신앙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신앙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황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삶의 크고 작은 시련이 찾아올 때, 다시 하나님을 간절히 찾습니다. 아니면 자신의 삶이 여전히 어렵다고 착각을 합니다.
그 장로님의 말처럼, 정말 우리의 삶이 힘들어야 불안정해야 믿음이 강해지는 것일까요? 우리 교회가 점점 안정적인 교회로 성장한다면 더 좋은 믿음과 신앙을 위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과제들이 있는 것일까요?
[다윗을 넘어서는 예수 그리스도]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서의 말씀은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예수님과 유대 지도자들의 논쟁 중 하나입니다. 오늘 논쟁의 쟁점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인가?”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먼저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는 누구의 자손이냐?” 바리새파 사람들은 대답합니다. “다윗의 자손입니다.”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아가 다윗에 후손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당시 유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던 믿음이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던 시대를 상징하는 지도자였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다윗의 가문과 나라를 평안히 살게 하시고, 영원히 보전될 것이라는 약속(삼하7:11,16)을 해주셨기 때문에 강대국의 침략에 나라를 빼앗길 때마다, 유대 백성들은 다윗 가문에서 나오는 메시아를 언제나 기다려 왔습니다.
마태복음서는 이런 유대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복음서입니다. 책의 첫 서두부터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이러하다.”(마1:1)라고 시작하면서 예수님이 모두가 기다리던 다윗의 후손임을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마태복음서를 써낸 공동체와 독자들은 유대교에 매우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의 후손에서 나올 메시아를 누구보다 기대하는 이들이기에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임을 명증하게 드러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예수님을 메시아, 즉 그리스도로 믿던 유대인들에게 혼란과 긴장감을 가져다줍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 될 수 있냐는 논쟁을 보여주며 예수님과 다윗의 관계에 흠을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서는 아주 묘한 줄타기를 합니다. 예수께서 분명 다윗의 자손이자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이시지만, 다윗을 뛰어넘는 분, 아니 더 나아가서 다윗과는 전혀 다른 분이라고 말하고 싶어 합니다.
다윗의 자손에서 나올 메시아에 대한 기대는 결국 자신들의 나라를 다시 세우는 것, 식민지 생활에서 벗어나는 것,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에 대한 바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들은 이러한 기대를 꽤 충족시켰습니다. 예수님도 가난하고 병든 이들의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 그 누구보다 애쓰신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들은 다양한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고치지 못했던 질병을 고쳤고, 가난에 허덕이던 사람들은 음식을 먹었고, 무지했던 사람은 깨달음을 얻었고, 공동체에서 소외되었던 사람은 공동체의 중심으로 들어왔습니다. 이들은 모두 예수님을 통해 연약함과 불행에서 벗어났습니다. 이들은 안정을 얻었고, 행복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목적은 단순히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경험한 이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을 넘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결정적인 계시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열정을 본 것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의 뜻과 열정은 바로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만나는 이들을 하나님의 열정을 품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이 사역에 동참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만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당시 만연했던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 종교의 권력화, 폭력적인 사회 질서를 바꿔서 그 어떤 이들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셨습니다. 정의롭고, 평화롭고, 연약한 생명이 죽지 않고 활짝 피어나는 세상을 이루고자 예수님은 만난 이들을 제자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열정으로 초대하셨습니다. 삶의 물적 토대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것을 넘어서는 더 큰 도전을 하도록 요청하신 것입니다.
우리 삶이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것은 결코 목적을 달성했다거나 신앙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변화와 새로운 시작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품으셨던 하나님의 뜨거운 열정을 우리도 품을 때가 된 것입니다.
[새로움을 위한 용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사무엘기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를 선택하시고 기름을 부으시는 장면입니다. 이 일에 부름을 받은 사람은 사무엘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지기 전 지도자의 역할을 맡았던 마지막 사사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부르셔서 이스라엘의 새로운 역사를 준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요청으로 허락하셨던 첫 왕 사울은 왕권이 점점 강력해지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사무엘을 시켜 아말렉을 치고, 동물들까지 진멸해서 그 어떤 것도 남기지 말라고는 말씀을 전하셨지만, 사울은 값진 것은 챙기고, 값없는 것만 처리하는 등의 불순종을 보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약탈만을 일삼습니다.(삼상15장) 결국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갑니다. 사울의 왕권이 실패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왕권의 실패는 결국 왕의 통치를 받는 이스라엘 백성과 사회의 위험을 뜻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미래를 두고 근심과 걱정으로 괴로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더 이상 슬퍼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신 새로운 왕에게 기름을 부으러 떠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엄청난 정치적 혁명을 의미했습니다. 현재의 왕이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선택한다는 것은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울을 배신하는 행위였으며,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사무엘도 오늘 말씀에서 두려움을 느꼈고, 사무엘이 베들레헴에 도착하자 그 성읍의 장로들도 “좋은 일로 오시는 겁니까?”라고 불안과 우려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모든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새 역사를 위해,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무엘은 용기를 냅니다. 자신의 모든 안정적인 삶, 지위, 심지어 목숨까지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내어놓습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교회의 권위가 하나님보다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심판을 이용해서 가난한 이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또 그것을 이용해 부를 축적하고, 사제들의 성적 타락이 만연했던 부패한 중세 교회를 향해 종교개혁자들은 저항의 깃발을 들었습니다.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정신으로 교회에 개혁의 바람, 새로운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뜻을 철저하게 물었고,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이들은 안정을 버리고 오히려 불안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오늘날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에게 요청되는 신앙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불안 속으로 뛰어들 수 있을 때, 이제 진짜 시작입니다.
오늘 시편의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많이 하시며, 우리 위한 계획을 많이도 세우셨으니, 아무도 주님 앞에 이것들을 열거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놀라운 일들을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10월 한 달 동안 하나님께서 주님 열매들을 기억하며 감가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주님께서 지금 우리의 삶에 주신 선물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생명사랑교회를 향한 수많은 계획을 세우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열정, 세상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우리를 통해 실현하고자 준비하십니다.
오늘 시인을 또 노래합니다. “내가 주님의 뜻 행하기를 즐거워합니다. 주님의 법을 제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우들의 삶과 신앙이,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더 안정적이고 풍요로워지기를 기대하고 원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선물이 우리에게 넘치길 바랍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우리 신앙과 믿음의 최종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의 삶이 더 넉넉하고 튼튼해질수록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불안 속으로 몸을 내던지는 도전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한 간절함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 하나님의 뜻을 위한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시인이 주님의 뜻 행하기를 즐거워하는 이유는 거기에 세상의 안정과 풍요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불안 속에서 하나님과 일치하는 경험을 하고, 세상이 줄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채워짐과 기쁨을 느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지금 우리가 누리는 안정과 풍요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언제나 하나님을 위해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닌 힘은 하나님을 위해 사용할 때, 오히려 하나님을 위해 우리의 힘을 내려놓을 때, 진정한 힘이 됩니다. 우리의 깊은 갈망은 물건을 사며 소비할 때가 아니라 우리의 물질을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용할 때 채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다른 이들을 위해 내어줄 때, 활짝 피어납니다. 우리는 그렇게 비천할 줄도, 풍족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안정과 불안 그 어느 곳에든지 주님의 법을 가슴에 품고 주님의 뜻을 기쁨으로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갖추어야 할 진정한 자유인,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일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언제나 사랑의 손길로 돌보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수많은 은총을 생각할 때, 우리의 불안과 두려움, 욕심, 이기심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를 깨닫습니다. 주님 저희가 주님께로 시선과 마음을 돌리고, 우리 중심에 주님을 향한 갈망을 두어서 주님의 뜻을 향해 더 나아가게 하옵소서. 용기를 내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주신 수많은 선물을, 우리의 삶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사용하게 하옵소서. 안정과 풍요를 넘어 불안 속에서도 주님과 동행하며 참된 행복과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