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글: 한문덕 목사

목소리: 한문덕 목사

반주: 박지형 집사

“달래는 아버지”

큰 아들은 화가 나서, 집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와서 그를 달랬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이렇게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섬기고 있고, 아버지의 명령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는데, 나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삼켜 버린 이 아들이 오니까, 그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아버지가 그에게 말하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 그런데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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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예수님의 그 유명한 ‘탕자의 비유’라 불리는 말씀 중 일부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 비유를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의 상황에서 이해해 왔습니다. 그러나 큰아들과 아버지의 대화 속에서도 우리는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 큰아들이 탕자가 되려 합니다. 작은아들이 돌아온 것을 기뻐하여 아버지가 마련한 동네잔치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큰아들은 매우 거친 말로 아버지와 동생을 모욕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원문으로 보면 큰아들은 단 한 차례도 아버지라 부르지 않습니다. 아버지께는 “당신”이라 말하고, 동생은 “당신의 이 아들”이라 부릅니다. 성서 어디에도 작은아들이 창녀들과 어울린 이야기가 없지만 큰아들은 자기 동생을 그렇게 몰아갑니다. 자기에게 염소 새끼 한 마리 준 일이 없다며 아버지를 마치 인색한 고용주처럼 묘사합니다.

이러한 큰아들의 행위는 부모 공경을 요구하는 율법의 관점에서는 사형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몸소 큰아들을 달래고 있습니다. 자기 재산이 모두 큰아들의 것임을 확인해 주며, 사랑을 담아 “애야!”라고 부르며 아들을 되찾은 부모의 기쁨에 함께하자고 부드럽게 초청합니다. 우리 모두는 작은아들처럼, 큰아들처럼 이런저런 모습으로 하나님께 상처를 주지만, 그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불러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무서운 폭군이 아니라 엄마처럼 “달래는 아버지”입니다.

* 기도: 은총의 하나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때때로 닥쳐오는 삶의 위기와 여러 유혹 속에서 우리 또한 탕자가 되었고, 욕심과 좁은 소견 탓에 주님을 많이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주님은 우리의 피난처, 주님의 사랑은 변함없습니다. 만물이 성숙해가는 이 계절! 우리도 자라 무한하신 주님의 은총 닮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