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글: 한문덕 목사

목소리: 김학로 장로

반주: 박지형 집사

63. 비극의 탄생과 성장

일이 이쯤 되니,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를 나무랐다. “너희는 나를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들었다. 이제 가나안 사람이나, 브리스 사람이나,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나를 사귀지도 못할 추한 인간이라고 여길 게 아니냐? 우리는 수가 적은데, 그들이 합세해서, 나를 치고, 나를 죽이면, 나와 나의 집안이 다 몰살당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그들이 대답하였다.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다루듯이 하는 데도, 그대로 두라는 말입니까?”(창세 34: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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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4장은 야곱 가족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겪는 매우 비극적인 사건 하나를 다룹니다. 야곱 가족은 가나안 땅에서 형 에서를 만난 후에 세겜 성에 장막을 치고 그곳에 정착하는데(33:18-20), 거기에 머무는 동안 야곱의 유일한 딸인 디나가 그 지방 여자들을 만나러 나갔다가 히위 사람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겁탈 당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 일로 시므온과 레위는 디나와 결혼하려고 하는 세겜과 세겜 사람들을 모조리 몰살하고 성읍을 약탈합니다.

창세기 34장 이야기의 의도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고 매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큰 틀에서 볼 때 이 이야기는 신명기 7장 1-5절에서 강력하게 금지하는 가나안 사람들과의 통혼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은 세겜 족속과의 혼인 관계를 통해 그들과 ‘한 민족’이 되고(창 34:16, 22), 함께 살면서 가나안 땅을 얻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이 사건에서 보이는 야곱과 디나의 오빠들의 행위에 관심이 갑니다. 이야기 속에서 야곱은 자신의 딸 디나가 당한 일에 대하여 거의 무관심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5절), 하몰과 세겜이 통혼을 요구했을 때에도 협상에 전면적으로 나서지도 않습니다. 시므온과 레위가 복수를 했을 때는 오히려 자기와 자기 가문의 안위만을 걱정합니다(30절).

한편 디나의 오빠들인 시므온과 레위는 이 일로 매우 분노합니다. 디나가 당한 일에 대하여 하몰과 세겜은 계속해서 책임을 지고자 합니다. 그러나 디나의 오빠들은 민족의 종교정체성을 확인하고 유지하기 위해 행하는 할례를 통혼의 조건을 내세우는 속임수를 통해 한 민족을 몰살하는 엄청난 살인행위를 저지르고 그것을 정당화 하려고 합니다.

창세기 34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피해의 당사자인 디나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도, 오빠들도, 가해자인 하몰이나 세겜도 피해자인 디나에게 묻지 않습니다. 오늘날 발생하는 수많은 사건 사고와 갈등이 삶을 파괴하고 부정적인 결말로 끝나는 것은 바로 피해자의 요구와 필요가 무시되고 그것을 옳게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도 : 하나님, 우리에게 평화를 일구는 법을 가르쳐 주시고, 우리가 열심히 배우게 하여 주소서. 무엇보다 피해 당사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회복시키는 일을 중점으로 삼아 갈등을 해결하게 하소서. 피해자를 도외시한 채 피하기만 하거나, 강압적으로 풀어가지 않게 하여 주소서. 존중의 마음을 일깨워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