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글: 한문덕 목사
목소리: 채경숙 장로
반주: 박지형 집사
28.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아브람이 롯에게 말하였다. “너와 나 사이에, 그리고 너의 목자들과 나의 목자들 사이에, 어떠한 다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한 핏줄이 아니냐! 네가 보는 앞에 땅이 얼마든지 있으니, 따로 떨어져 살자.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 롯이 멀리 바라보니, 요단 온 들판이, 소알에 이르기까지, 물이 넉넉한 것이 마치 주님의 동산과도 같고, 이집트 땅과도 같았다. 아직 주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기 전이었다.(창세 13:8-10)
========================
골로새서의 예수 그리스도 찬가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1:15-16)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시며, 만물 중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늘에 있는 것들이라는 말도 고대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신비의 영역을 가리킵니다. 현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확실한 것으로, 믿을 만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고대인들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두를 함께 살피려 했습니다. 신앙인은 땅에 있는 것들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도 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조차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자꾸 보이는 것으로만 이해하려 했고, 특별히 물질적인 복과 가시적 성과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오늘 롯은 아브람과 헤어지면서 눈에 보이는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땅의 분위기를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그 곳은 낯선 이를 환대(歡待)하며 함께 살려는 상생(相生)의 공간이 아니라, 적대와 배타, 혐오의 공간(창세 19:1-11, 특히 9절 참조)이었는데도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망하는 도시에 생활의 터전을 잡습니다. 한병철은 그의 책 -피로사회-에서 “근대를 열었다는 데카르트는 있음과 없음, 모두를 포괄하는 존재가 지닌 경이감을 회의(懷疑)로 대체한다.”고 하면서, 성과주의에 물든 현대인들은 “떠다니는 것, 잘 눈에 띄지 않는 것, 금세 사라져버리는 것, 긴 것, 느린 것”의 비밀에 무지하다는 것을 밝힙니다(피로사회 34p). 깊은 사색적 주의를 회복하라는 철학자의 조언은 보이지 않는 것을 자꾸 놓치는 신앙인들에게도 해당됩니다. 2021년에는 때론 눈을 감아야만 보이는 것들에 관심을 두기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신앙이 회복되기를 바래봅니다.
기도 : 하나님! 우리의 눈을 열어 주소서. 멈추게 하시고, 고요히 머물게 하소서. 보는 법과 듣는 법을 잃어 버린 우리들을 찾아 오셔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소서. 눈의 부산한 움직임을 중단시키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손발을 묶어 모든 존재하는 사물의 향기를 볼 수 있게 하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