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한문덕 목사] 주님께서 붙드시는 사람 – 2020년 8월 9일 평화통일주일

민수기 3416-29, 시편 3712-17, 요한복음서 1224-32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

고대에는 책이 매우 귀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종이를 만드는 기술이 없던 시절,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 고대 그리스에서는 나일강 변에 많이 자라는 파피루스라는 식물로 종이를 만들어 썼습니다. 파피루스지(papyrus紙)는 수생식물 파피루스 줄기를 얇게 갈라 표면은 가로로, 뒷면은 세로로 늘어놓고 전체를 강하게 두들겨 나무줄기에서 나오는 끈적끈적한 진액으로 서로 붙도록 한 후 건조시켜 만든 것입니다.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었지만, 습기에 약하고 곰팡이에 손상되는 등 오래 보관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담은 성경은 때때로 양가죽으로 만든 종이 즉 양피지(羊皮紙)도 사용했는데, 양피지는 양가죽을 벗겨 털을 제거하고 얇게 문질러 약품 처리를 한 다음 팽팽하게 늘여서 건조시킨 후 사용하였습니다. 양피지는 매우 질겨서 오래 보존할 수 있었고, 양면을 사용할 수 있으며, 틀렸을 경우 살짝 긁어내고 다시 쓸 수 있는 장점들이 있지만 만들기가 매우 어렵고, 무게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매우 비쌌는데, 양피지로 책 한권을 만들려면 새끼양 수십마리를 잡아야 했습니다. 중세시대의 경우 책 한권은 중산층 상인 석조 주택의 오분의 일 되는 정도의 가격으로 오늘날로 환산하면 노동자의 3년에서 5년치 연봉인 5천만원에서 1억원 정도입니다.

이렇게 책 한권 만들기가 힘들기 때문에 여기에 기록을 남기는 것은 매우 신중했고, 반드시 필요한 것만 넣어서 종이를 빽빽하게 가득 메웠습니다. 이렇게 귀하게 만들어진 책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은 매우 큰 영광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민수기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요단강 서쪽 땅을 분배하는 책임자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민수기에는 크게 세 번 열두 지파의 지도자 명단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1장에 나오는데, 이스라엘 군대를 지파별로 조직했고, 각 지파 부대의 지휘관들입니다. 그리고 13장에 가면 가나안 땅을 탐지할 지도자 명단이 또 등장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는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땅을 분배하는 지도자들의 명단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세 명단을 비교해 보면, 우선 세 명단에 등장하는 인물이 다 다릅니다. 우선 광야에서 이민족의 침입을 막고 사람들을 보호했던 군대 지휘관들과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갔던 지도자 명단은 한 명도 같지 않습니다. 이유는 40년의 세월이 흘렀고, 세대교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이들과,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땅을 분배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명단도 다릅니다. 오직 한 사람, 바로 유다 지파의 지도자 여분네의 아들 갈렙만이 같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명단이 나오는 순서도 다릅니다. 1장과 13장 군대 지휘관들의 등장과 가나안 정탐꾼들의 명단 순서는 12지파 시조들의 출생 순서에 따라 정해지지만,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는 각 지파의 땅이 놓인 지리적인 위치에 따라 정하되 대체적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는 방향입니다. 그런데, 맨 남쪽에는 시므온 지파의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명단에서는 유다 지파의 지도자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제일 먼저 적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명단들에는 민수기를 기록한 사람의 신앙적 관점이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공동체이든지, 시대에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세대 교체를 해야 합니다. 후손들이 윗 세대보다 더 능력 있고 훌륭하면 그 공동체는 발전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 공동체는 쇠락하는 것입니다. 광야 40년의 세월 동안 과연 이스라엘 공동체는 출애굽했던 세대보다 더 성숙하고 성장했을까요? 광야의 시간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나은 신앙 공동체로 거듭나게 했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그 기간 동안 출애굽 1세대는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1세대 지도자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런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닙니다. 민수기 25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싯딤에 머물며 모압 사람들의 딸들과 음행을 하였고, 모압 사람들이 섬기는 신에게 머리를 숙이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 일 때문에 하나님의 징벌이 내려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염병에 걸리고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됩니다. 이 일로 인해 백성의 지도자들의 목이 달아났을 뿐만 아니라, 2만 4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됩니다.

우상 숭배와 이교적 생활방식으로 인해 하나님의 평등 정신과 정의가 훼손 되었을 때, 이스라엘 자손들은 큰 고통을 겪게 되고, 그런 와중에 출애굽 1세대들은 전부 죽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이들의 뒤를 이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들은 출애굽 2세대들인데, 정탐꾼으로 갔던 이들 중 오로지 갈렙만이 신앙을 지켰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었기에 약속의 땅을 분배하는 자리에 있을 수가 없고, 갈렙을 제외하곤 전부 교체되었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을 받는 그 시간에 갈렙이 바로 가장 먼저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민수기는 각 지도자들의 명단을 기록함으로써 후세대에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를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도 앞으로 역사가 쌓여갈수록 이런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신앙 공동체의 역사를 만들어 가다보면 중요한 선택을 할 때가 있고, 그런 모든 결정은 후세대들에 의해 기억될 것입니다. 선배들의 좋은 신앙의 유산은 잘 이어받고, 실수와 잘못은 반복하지 않아야 우리 공동체가 든든히 설 수 있습니다.

[위기의 순간을 넘어라!]

제가 계속 강조하고 주목해서 말씀 드리지만, 지금 우리 생명사랑교회 또한 매우 급변하는 역사의 한 복판을 걷고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코로나 사태와 기후재앙 속에서 각국의 정치지도자들의 능력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동시에 각국의 시민의식 또한 새롭게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더욱더 각 나라와 시민들의 본연의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분명 다른 미래가 펼쳐질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모세와 함께 했던 1세대 지도자 여호수아와 그의 뒤를 이어가는 평신도 지도자 갈렙의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세상과 손잡고 돈의 유혹과 권력의 속임수에 넘어갔던 이들의 무리에 속하게 될지 지금의 환란이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위기와 혼란의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시대와 문제를 읽어내는 정확한 판단과 올바른 선택입니다. 그런데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쏟아져 나오는 각종 정보와 뉴스들이 진실해야 합니다. 지금의 위기에서 우리나라는 매우 잘 대처하고 있지만, 언론의 경우는 매우 문제가 많습니다. 그리고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유튜브들은 그 내용의 진위를 가릴 새도 없이 저마다 많은 정보와 의견들을 내고 있습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지, 무엇이 참되고 무엇이 속임수인지를 알아야만 지금의 위기들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지금의 현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내 놓으면서 부동산 3법과 임대차 3법과 같은 새로운 법안들을 국회에서 통과시켰습니다. 이 와중에 두 명의 국회의원이 “나는 임차인입니다.”라는 문장으로 말문을 열면서 이 법에 관하여 한 명은 찬성입장에서, 또 다른 한명은 반대 입장에서 찬반토론을 하였습니다. 두 명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국민들은 판단을 내려야 하고, 누가 더 옳은 얘기를 하는지 결정해야 합니다. 일반 시민들이야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자신의 이익에 따라 둘 중 한 명의 의견에 동의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국가와 정부의 정책을 판단하고 지지 또는 비판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을 보니, 악인은 의인을 모해하고, 악인들은 칼을 뽑아 치켜들고, 또 활을 당겨서, 비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쓰러뜨린다고 나와 있습니다. 실제로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나쁜 짓을 하는 이들은 언제나 있고, 이들에 의해서 올바른 사람들이 당하고,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이 증가합니다. 많은 정보를 알고 진짜 힘을 가진 이들이 좋은 마음으로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일하면 좋겠지만, 오히려 자신만 생각하고, 자신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온갖 악행을 꾸미기도 합니다. 불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의인은 언제나 당하는 것처럼 느껴지기에 정의를 실천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려는 사람도 자꾸 마음이 굳어집니다.

그러나 오늘 시편은 다른 말로 우리를 위로합니다. 주님께서는 악인을 비웃으시며, 악인은 스스로 제 발등을 찍는 일을 하고 제 자신이 뽑은 칼과 활로 오히려 자신을 망치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악인의 팔은 부러지지만 의인은 주님께서 붙들어 주신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믿어야 하고, 실제로 악한 일을 한 이들은 처벌을 받고, 옳게 살려는 사람들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최근에 전 법무부장관이었던 조국 교수가 지난 세월 언론과 유튜버 등의 온갖 거짓말과 허위 보도와 악의적인 발언들에 대해 일일이 정확한 법적 절차를 밟아 소송전에 돌입했습니다. 명확한 명예훼손과 거짓 뉴스에 대해 한국 최고의 형법학자가 언론과 유튜버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고 소송 예고를 하자, 지난 몇 달간 쏟아졌던 100만 건이 넘는 기사들 중 약 70만 건의 기사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자신들이 쓴 악의적인 보도가 곧 자신들에게 형사적 물질적 손해를 끼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이렇게 증거를 없애려고 했지만, 민주언론시민연합과 같은 단체들과 언론을 감시하던 시민들이 전부 사진으로 남겨 놓았기에 지난 기사를 삭제한다고 해도 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우리의 언론의 현 주소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대처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의기억연대 전 대표였던 윤미향 씨가 국회의원이 되자, 그동안 친일을 하며 민족의 정기를 어지럽혔던 이들이 정의연에 또 다시 엄청난 의혹과 거짓뉴스를 쏟아냈는데, 그 또한 대부분 언론중재위원회로부터 정정보도와 삭제 지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듯이 세 사람이 입을 맞추면 없던 호랑이도 생겨나는 법입니다. 많은 언론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또 돈에 눈이 어두운 유튜버들이 근거 없는 말을 지어내면서 마구마구 쓰레기 정보들을 쏟아낼 때, 이 모든 것을 분별할 눈이 없는 사람들이 정말로 많이 휘둘렸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똑바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우리들이 우리들 자신의 발등을 찍을 뿐만 아니라, 남을 못살게 구는 일에 동참하게 되고, 실제로 전체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실제로 실력도 있으면서 더 좋은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판단할 줄 알아야 하고, 또 우리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욕망의 추구와 세상 현실에 대한 무지함은 고통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올바른 욕망을 추구해야 하고, 하늘이 주신 지혜로 세상이 나갈 비전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중요한 기준들]

목사의 설교는 우리 모두가 겪는 삶의 위기 앞에서 교인들이 지닌 신앙을 성찰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앞에 놓은 불편한 진실들을 회피하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주일 예배를 통해, 신앙교육과 서로 돌보는 친교를 통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그 자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 책임과 의무를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변화를 주도하는 실력도 필요하고, 옳고 그름을 잘 분별하는 바른 마음가짐도 필요하고, 굳건한 믿음도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서의 본문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공관복음서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계십니다. 공관복음서의 예수님은 십자가 처형을 앞두고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으시니,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여 주십시오”(마가 14:36, 마태 26:39, 누가 22:42)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고 고백하지만 다가오는 십자가 죽음의 공포와 고통 앞에서 매우 힘들어 하십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서는 다릅니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여야 할까? ‘아버지, 이 시간을 벗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할까? 아니다. 나는 바로 이 일 때문에 이 때에 왔다.” 예수님은 매우 확고하고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마음이 괴로운 것도 사실이지만 하나님의 아들로서 순종하고자 하는 열정이 그 공포와 두려움을 뛰어 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드러내십시오!” 이 기도는 주기도문의 첫번째 청원을 연상시키는데, 이 간구는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사로잡고 있는 하나의 원리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뜻을 따라 움직이지 않고, 자기를 보낸 이의 뜻을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행한 분이고, 이런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삶을 살았기에 다른 사람들은 천둥의 소리로, 또는 천사의 소리로 들었던 하늘의 음성을 오직 예수님만 정확하게 분별하고 계십니다. “내가 이미 영광되게 하였고, 앞으로도 영광되게 하겠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 전체에 걸쳐서, 성육신을 통하여 그리고 능력 있는 표적들에서 이미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으며, 이제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은 정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동일한 본질의 이쪽, 저쪽일 따름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삶과 죽음 전체에 걸쳐서 일관되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사십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의 영광을 구하신 적이 없습니다(요 8:50, 54). 예수님은 아무 것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으시고(요 5:19), 언제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만을 행하였습니다(요 8:29).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시고 아들은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기 위해 세상에 온 것인데, 그 뜻은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모두 살리는 것입니다(요 6:39).

선과 악이 혼재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몇 가지 삶의 기준을 정확하게 잡아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뭉뚱그려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만 더 세부적으로 풀어야 합니다. 첫째는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살리는 일에 나서야 합니다. 동시에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합니다. 삶은 일종의 명령이기에 살아내는 것이며, 살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살리는 방법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비판을 할 때에도 사랑의 마음에서 해야 합니다. 증오와 분노, 자신이 가진 불안과 공포에서 우리의 행동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넉넉히 품을 줄 아는 수용의 마음, 용서의 마음, 애틋하게 여기고 공감하는 사랑의 마음으로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생명과 사랑’ 이 두 가지는 그리스도인들의 행위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기준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습니다. 바로 ‘모두’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전체를 생각해야 합니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만이 아니라, 우리 교회만이 아니라 이 사회 전체, 이 지구 전체, 우주 전체에서 조망하는 안목을 반드시 지녀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어느 한쪽만을 편듭니다. 그리고 이것이냐, 저것이냐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합니다. 물론 결정적인 순간에 선택을 해야 하지만, 우리들의 삶의 자세는 이것도, 저것도 모두 품어 안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전체를 보는 눈을 반드시 키워야 합니다. 눈앞에 닥친 사람의 일을 볼 때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함께 고려하는 즉 이것도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당면한 과제들을 풀어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가진 한계를 인정하고 자신의 관점은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고려하여 모두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열린 마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늘 요한복음서 저자는 한 알의 씨알이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자기를 내어 주셔서 모든 사람을 살렸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비극이나 절망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영광이라고 요한복음서는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만을 위하여 자신을 온전히 내어 드렸기에 영광을 받을 수 있었고,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목숨만을 사랑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주권과 권리를 망각하거나 부정하고, 불완전한 자기 자신을 자신의 삶의 토대와 근원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멸망을 자초하게 됩니다.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은 오히려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을 부인하는 사람,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존재의 가장 깊은 차원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따르는 사람만이 영생에 이르도록 자신의 목숨을 보존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씨알 하나가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지점을 말씀드리고 오늘 설교를 마칠까 합니다. “씨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시지만 씨알 하나가 죽는다고 곧바로 많은 열매가 맺히는 것은 아닙니다. 씨앗 중에는 싹을 틔우지 못하고 말라서 부스러지거나 썩어서 사라져버리는 것도 있습니다.

떨어진 씨알은 적절한 물이 공급되고, 적당한 온도가 제공될 때 싹을 틔웁니다. 씨알은 싹을 틔울 수 있을 때까지 견뎌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열어서 물을 흡수해야 합니다. 자기 몸의 일부를 새로 나는 싹을 위해 영양분으로 내어 놓아야 합니다. 아마 이런 모든 과정을 예수님은 “죽으면”이라는 한 마디에 담으셨던 것 같습니다. 결국 “죽는다”는 것은 더 큰 생명으로 나아가기 위해 자기를 열고 때를 기다리며 타자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열매는 관계 속에서 일정부분 자기를 포기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생명이란 소통을 통해서만 성장하고 자라나고 열매를 맺고 풍성해집니다. 사랑이 나눌수록 커지는 원리도 이와 같습니다.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하거나 지나친 자기 사랑으로 타자를 멀리하면 자기 안에 유폐되어 결국 외톨이가 되고, 성장도 열매도 없게 됩니다. 성장과 열매는 한편으로는 자기를 사랑하되 동시에 자기를 미워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영생은 자기를 생명에게 내어 줄 때 가능합니다.

오늘은 우리 교단이 정한 평화통일 주일입니다. 남북이 함께 평화와 번영의 길로 가는 길도 서로 소통하며 더 큰 생명에 자신들을 열 때만 가능합니다. 지금 세상은 자꾸 자국 이기주의로 나아가려고 하는데, 이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닙니다. 코로나는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 지구적 문제이기에 함께 풀어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는 주님께서 붙드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악을 멀리하고 의를 추구해야 합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전체를 생각하며 행동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붙드셔서 여러 가지 일을 맡기시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주역으로 삼으시려고 합니다. 피하지 마시고 믿음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소명을 담대히 붙잡으십시오. 저와 여러분이 온전히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면 나머지 모든 것은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세상으로 오신 하나님! 인류의 영생을 위해 죽은 한 알의 씨알이셨던 예수님을 떠올립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주님을 통하여 알게 됩니다. 내어 주기보다 움켜쥐려고만 하는 세상에서 진정한 사람됨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주님을 통하여 알게 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그래서 홀로 서기보다 함께 나눌 때, 우리의 생명은 더욱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주님을 통하여 알게 됩니다.

하나님! 때가 악하여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고, 그 거대한 폭력의 희생물이 되었습니다만 오늘 우리는 나도 살고 너도 살리는 상생의 길을 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더 큰 생명을 위해 나를 넘어서는 용기를 허락하여 주소서. 세상의 교묘한 속임수들을 깨트리는 하늘의 지혜를 주시고, 밝은 눈으로 역사를 통하여,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보면서 당신의 뜻을 분별할 줄 알게 하소서. 언제나 당신의 뜻에 우리의 촉각을 세우게 하셔서, 세상의 요구가 아니라 당신의 지향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하소서. 주여! 우리 삶을 통하여 영광 받으소서.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감사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주님을 송축하고, 우리의 입술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방황을 이겨내게 하시고, 우리가 반항할 때에도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사랑할 사람들을 주시고, 아름다움은 누리게 하시며, 고요히 머물 장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삶의 놀라운 선물들, 우리가 배운 진리와 성취할 수 있던 선한 일들에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시간 주님께 우리 자신을 드립니다. 받아 주소서. 오늘 예배를 통해 받은 천국의 기쁨을 간직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바쁜 세상에서도 주님께서 허락하신 평안을 누리며, 주님께서 감당하라 명하신 소명을 이어나가겠습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으로 주님께 찬양을 드리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주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그 주님만 믿고 옳은 길로 정진하십시오.

* 축도

어둠이 깊을수록 주님의 별은 더 밝게 빛납니다. 우리의 어둠에서 주님의 빛을, 우리의 죽음에서 주님의 생명을, 우리의 슬픔에서 주님의 기쁨을, 우리의 죄에서 주님의 은총을, 우리의 가난에서 주님의 부요하심을, 우리의 그늘 골짜기에서 주님의 영광을 발견하게 하소서. 이제는 성부, 성자, 성령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이 온전히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께 붙잡힌 바 된 삶을 살아가는 생명사랑 교우와 지금 이 시간 함께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