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교만과 게으름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 (창세기 3:4-6)
성서가 인간의 타락을 말하는 것은 고통의 원인을 밝혀보고자 하는 노력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통당하는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자 함입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만드셨는지 궁금해 합니다만, 성서의 저자는 선악과가 지니는 역할에 더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의 존재를 통해 자신이 피조물임을 떠올립니다. 자신은 창조자가 아님을, 자신은 선과 악을 완전하게 알 수 없음을 기억합니다. 자신은 완전자가 아니요, 한계를 지닌 존재 즉 유한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각하는 인간에게는 생명나무의 열매가 허락됩니다.
칸트가 일찍이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인간의 앎의 한계를 밝혔듯이, 우리의 앎은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것에서 그 역할을 다합니다. 즉 우리의 앎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유한성의 자각은 언제나 그것을 넘어서려는 초월을 지향합니다. 초월의 지향은 현대 문명을 만들었고, 진보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초월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이 될 수 있고 되려는 또는 되었다는 교만은 인간을 고통으로 몰아넣습니다. 자신이 인간임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신이 된 이들은 타인을 하찮은 존재로 여기고, 그들을 무시하고 노예로 부립니다. 자신을 신으로 착각하는 이들은 결국 스스로를 망치고 인간을 망치고 자연을 망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트립니다.
하와는 선악과 금지 명령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듣지 못했습니다. 하와가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은 아담에게 금지 명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창 2:17). 하와는 아마도 아담을 통해 간접적으로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뱀이 유혹하기 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하와가 선악과를 따서 먹었을 때, 그리고 자신에게 나누어 주었을 때, 그것을 막지 않고 방기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계명을 지키는 일에 게을렀고, 하나님의 명령을 우습게 여겼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겪는 모든 고통은 사실 신 아닌 인간이 신처럼 행세하며 교만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며, 그렇게 만든 세상을 고치지 않고, 예방하지 않는 게으름 때문에 고통은 지속됩니다. 오늘 이 사실을 창세기는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오늘도 자연과 이 세계는 구원을 기다립니다. 구원을 간절히 바라는 피조물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겸손히 그리고 부지런히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청지기로 세상을 가꾸어 가는 것입니다.
기도 : 하나님! 우리가 교만하거나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겸손히 주님의 성실함에 동참하게 하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