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주 하나님이 남자에게서 뽑아 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여자를 남자에게로 데리고 오셨다. 그 때에 그 남자가 말하였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창세 2:22-23)
세상엔 많은 관계가 존재합니다. 마틴 부버는 그 관계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나와 그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나와 너”입니다. 전자는 내가 주도권을 쥐고 대상인 그것을 수단으로 삼아 이용하는 관계입니다. 후자는 평등하게 서로 목적으로 대하며 공생해야 하는 관계입니다.
사실 “나와 그것”의 관계는 모두 “나와 너”의 관계로 바뀌어야 합니다. 인간에는 인권이 있고, 동물에는 동물권이 있듯이, 모든 존재하는 것은 그 자체로 귀중하게 여겨져야 합니다. 수단화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피조물에는 창조주의 손길과 애정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창세기의 오늘 구절을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을 구분 짓는 이야기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이 이야기의 전체 맥락을 보면 사람은 사람 사이에서 진정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개인은 공동체를 통해 완성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동물을 아담 곁에 두셨지만 진정한 짝이 될 수 없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아담은 하와를 보고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이라고 말합니다. 남자와 여자를 뜻하는 히브리어 ‘이쉬’와 ‘잇샤’는 언어 놀이를 한 것입니다. 즉 동류(同類)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 이어 또 한 사람을 사람의 갈빗대로 만드십니다. 머리뼈나 발뼈로 만들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람은 서로 품어주는 존재이지, 위로 올려 보거나 아래로 내려 보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사람은 시(詩)적 존재입니다. 서로를 보면서 경탄해야 합니다. 산문(散文)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땅의 흙에서 나왔으나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차 있고, 그 안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탄성을 질러야 합니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기도 : 하나님, 우리에게 경건한 마음을 주소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서 신비를 발견하게 하소서. 나를 대할 때나 남을 대할 때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하소서.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도 그 마음이 배어 나오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