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문명과 폭력
라멕이 자기 아내들에게 말하였다. “아다와 씰라는 내 말을 들어라. 라멕의 아내들은, 내가 말할 때에 귀를 기울여라. 나에게 상처를 입힌 남자를 내가 죽였다. 나를 상하게 한 젊은 남자를 내가 죽였다. 가인을 해친 벌이 일곱 갑절이면, 라멕을 해치는 벌은 일흔일곱 갑절이다.” (창세기 4:23-24)
아담의 7대 후손이자 최초의 살인자 가인의 6대 후손인 라멕의 자랑은 인류의 죄악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 보여 줍니다. 오늘 성서 본문을 히브리 글자 그대로 옮기면 라멕은 ‘나를 다치게 했기 때문에 한 남자를 죽였으며 나에게 상처를 입힌 한 소년을 죽였다.’입니다.
라멕이 아무 이유 없이 살인을 저지른 것은 물론 아닙니다. 자신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자신이 입은 상처를 살인으로 되갚습니다. 피해자에 머물지 않고 가해자가 될 뿐만 아니라 일흔일곱배로 갚아주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복수의 화신이 됩니다. 가인의 피살을 막기 위한 하나님의 경고가(창 4:15), 라멕의 폭력성을 자랑하게 하는 일개의 인용구로 쓰입니다(창 4:24).
그런데 창세기 4장 17절은 가인이 주님 앞을 떠나 에덴의 동쪽 놋 땅에 살 때, 도시를 세우고,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이라고 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도시는 자기의 내부에 생산지를 갖추지 못하기 때문에 자급자족할 길이 없어서 보통은 제국주의적인 확장 정책을 펼 수밖에 없습니다.(윤구병, <철학을 다시 쓴다>, 71p) 아마도 라멕은 제국주의적 인간의 표본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그의 아들 두발가인이 구리나 쇠를 가지고 온갖 기구를 만들게 된 것(창 4:22)이 아닐까 합니다. 제국을 확장하려면 청동이나 쇠로 만든 칼이나 창 등 전쟁 무기가 필요했을 테니까요! 라멕의 제국주의적 문명에서 예술과 음악(창 4:21) 또한 국가의 축제와 전쟁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쓰였을 것입니다.
과학기술은 전쟁을 통하여 놀라운 발전을 하였다고 하는데,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이 지향하는 문명이 같은 인간과 자연에 대해 폭력을 줄이면서 진보할 수는 없을까요?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린다는데, 과연 인류의 지적인 모험이 생명과 평화를 확대할 수 있을까요? 종교의 역할은 무엇이며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이들은 이럴 때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까요?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고, 가인은 하나님의 충고를 무시했고, 라멕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멋대로 오용합니다. 하나님과 자연, 인간의 관계의 틀어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타자의 지배를 정당화합니다. 이 시대 우리에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떻게 응답하고 어디에 헌신해야 할까요? 생각이 깊어지는 밤입니다.
기도 :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의 자유의지가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이루는 일에 쓰이게 하소서. 폭력의 확대를 문명의 진보로 오해하지 않게 하소서.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깊이 새기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