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죄를 다스려야
주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빛이 달라지는 까닭이 무엇이냐?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빛이 달라지느냐?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창세 4:6-7)
구약에서 “죄”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는 그 이름답게 세상이 처음 시작되는 이야기들을 신화적 서술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죽음과 고통, 죄악에 관한 것도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했기에 하나님의 동산으로부터 쫓겨났고, 모든 관계가 깨지고 맙니다. 죽음이 들어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숨어야했고, 사랑하는 반려자에게 잘못을 떠넘겼으며, 자연은 엉겅퀴와 가시를 내었습니다. 기쁨이 되어야 할 노동이 수고가 되고, 신비의 감격이 되어야 할 잉태와 탄생이 극심한 고통으로 기억되었습니다. 그나마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삶은 더더욱 힘들었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다음 세대인 가인과 아벨은 이제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의 환심을 사려합니다. 하나님과의 좋던 관계가 깨졌기 때문에 제사가 필요해집니다. 그런데 하나의 제사만이 받아들여집니다. 이것에 질투와 시기를 느낀 카인은 결국 형제를 죽이고 맙니다. 경쟁심이 발동했고 상대적 박탈감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서는 가인이 아벨을 죽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주님의 경고를 통하여 얼마든지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죄”의 행위가 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인간에게 유혹은 하나님처럼 되려는 것을 통해서 왔지만, 그 다음 세대에게 유혹은 같은 인간과의 경쟁이라는 구도 속에서 발생합니다. 전능자가 될 수 없다면 다른 인간보다는 나아야겠다는 생각, 상생이나 협력, 공존이 아니라 남 위에 서야겠다는 생각으로부터 죄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죄인으로 태어난 존재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 누구든지 형제를 죽이는 살인자가 될 수도 있다고,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사람보다 돈을 중요시여기는 사회에서는 더욱 이런 유혹들이 많습니다. 불평등이 심해질수록 죄는 늘어날 확률이 높습니다. 인류가 죄의 가능성이 실현되지 않도록 잘 다스릴 수 있을지, 나 자신부터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기도 : 하나님, 우리의 눈이 하나님의 뜻을 향하게 하여 주소서. 남들과 비교하여 자신을 높이 세우려는 잘못된 길에 들어서지 않게 하소서. 과녁에서 빗나가 방황하다가 결국은 당신의 뜻을 어기고 죄를 범하는 일들이 없게 하여 주소서. 죄를 다스리고 마음을 살피는 성찰의 능력을 허락해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